▲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 / 미야타 미츠오 지음 / 양현혜 옮김 / 홍성사 펴냄 / 264쪽 / 1만 6,000원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피정'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성공회 신자가 아닌 개신교인들에게는 이 단어가 다소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피정'은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영적으로 쇄신하기 위해, 일상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한곳에서 조용히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일정 시간을 들여 일상에서 물러나는 게 대단한 손해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주일날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개신교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일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독서를 통한 피정을 권하고 싶다. 마침 적당한 책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지난 9월에 출간한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홍성사)이다.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는 거창하게 소개하면 동화 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비평서로 독서 피정을 할 수 있나?' 되물을 수도 있겠는데, 이 책은 일반적인 비평서가 아니다. 동화 속 이야기에서 삶과 신앙을 건강하게 이어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길어 올리는 책이라고 말하면 알맞겠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묵직한 물음에 저자는 동화를 통해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답해 나간다. 마치 '동화의 숲'을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릴 적에 봤던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참된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삶의 정수를 잔잔하게 느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는 챕터별로 <헨젤과 그레텔>, <생명의 물>, <벌거벗은 임금님>, <모모>, <대부가 된 죽음의 신> 총 다섯 편의 동화를 주 텍스트로 삼는다. 마지막 6장에는 어떻게 신앙의 비유로 동화를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편‧역자는 책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장은 인간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자기 발견'을 위한 여행임을, 2장은 자기 발견이란 필연적으로 '구원'의 문제에 맞닿아 있음을, 3장은 자기 발견과 구원은 '진실의 거울'과 마주해야만 가능해짐을, 4장은 여행이 펼쳐지는 우리 삶의 궤도인 '시간'이란 무엇인지를, 5장은 자기 발견의 여행길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궁극적 한계인 '죽음'을 어떻게 돌파해 갈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6장은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게 되는 이유를 정리한 글로 마무리해 보았습니다." (262쪽)

이 책은 동화에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찰들을 끄집어내고, 신앙적인 메시지를 양념처럼 곁들이는 방식으로 쓰였다. 저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내용으로 동화를 읽어 가는지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 몇 부분만 책에서 가져와 보려고 한다. 아래는 저자가 널리 알려진 동화인 <벌거벗은 임금님>을 독해하는 대목 중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 나오는 황제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자신을 어떤 가치나 역할로 고정해 두고 자신을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며 또 위대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 우리 자신의 자아의식, 그것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황제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 황제 이야기를 나와는 무관한 다른 사람 이야기인 양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없게 됩니다." (124쪽)

저자는 강박적으로 옷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황제의 모습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우리 자신을 향한 이야기였음을 지적한다. 늘 낮은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을 때 수치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면 이런 악순환을 끊어 버려야 한다. 저자는 앞서 옷에만 신경 쓰는 황제가 옷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황제 자신의 인격 깊은 곳에 감춰진 '그림자'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같은 상황에 있다면 '벌거벗은' 진실과 대면하고 그림자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각자에게 부여된 이 삶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하나님이 보내 주신 선물로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감당할 것을 결의하"(128쪽)라는 메시지를 곁들인다.

저자가 그림 형제의 동화 <대부가 된 죽음의 신>을 통해 인간의 삶을 잠식해 오는 죽음 문제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실존을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할 것인지 동화 텍스트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풀어 설명한 다음,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려면 인간이 '유한자'라는 것과 언젠가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칼 바르트가 강조했던 죽음에 대한 신앙적 메시지를 전한다.

"바르트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에 더하여 '메멘토 도미니'(주를 기억하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라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에 의해서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바르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고 생명을 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죽음을 넘어서 무덤 저편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220~221쪽)

역자의 지적에 따르면, 저자는 동화가 신앙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동화의 주인공이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위의 존재'로서 인생의 역정을 간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행보가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이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초월적인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과 동화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구원을 받는 방식 또한 기상천외할 정도로 다양하다. 어쨌든 저자는 이 점이 동화가 성서와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앞서 살핀 <벌거벗은 임금님>의 경우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동화에 등장하는 모자라고 연약한 주인공들이 결국에는 독자의 자기 성찰을 돕고, 더 나아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의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 점이 바로 성서의 소식과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크게 자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략) 그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 충만하도록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자'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도 동화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 근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251쪽)

저자가 인용하는 신학자 도로테 죌레의 말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동화는 인간이 어떻게 은총의 빛 아래에서 살고 행동하고 또 탐구의 여행에 나서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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