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난 10월, 한 기독교 방송이 주관한 프로그램에 100회 총회를 맞는 한국 장로교단 총회장들이 출현했다. 주요 장로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 몇몇은 방송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만 반대를 표했고, 예장대신 장종현 총회장, 예장고신 신상현 총회장은 국정화에 찬성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교회와 교인을 보유한 예장합동의 박무용 총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기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기독교 공정 서술해야")

며칠 후인 10월 20일,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에는 교단 소속 목회자의 글 하나가 실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글이었다. (바로 가기)

이 글은 박원홍 목사가 썼다. 박 목사는 한국사를 전공한 인문학도다. 목회를 하면서도 인문학 공부를 놓지 않았던 그는 국정화를 적극 지지한 일부 신학교 교수들과 교회사 연구 모임을 함께하기도 했다. 박원홍 목사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꿈의숲학교라는 기독교 대안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목사와 기독교인들이 인문학을 배울 필요성을 절감해 꿈의숲기독인문대학을 두 차례 열기도 했다.

본인이 속한 교단의 총회장은 공개적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단지에 반대 칼럼을 게재한 박원홍 목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뉴스앤조이>는 서면으로 박원홍 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인문학 공부를 꾸준하게 해 온 목사로서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에 앞장선 신학교 교수들과 총회장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 박원홍 목사는 한국사를 전공한 예장합동 목회자다. 그는 지난 10월, 교단지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시론을 썼다. (사진 제공 박원홍 목사)

교계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은 역사에 남을 오점

- 보수 교계 단체가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공동대책위(대책위)'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신학교 교수들이 함께했습니다. 특히 교회사를 전공한 박명수(서울신대)·박용규(총신대) 교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분들은 한국사는 물론 한국교회사 전공도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신학교 교수들이 자기 전공도 아닌 분야에 찬반 선언을 내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논할 수 없다'는 말은 옳은 지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공의 문제가 아니고 일반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로서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에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대책위나 일부 교회사 교수들이 정치인들에게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책위 인사 중 일부 교회사 교수들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역사 연구 모임도 함께한 사이입니다. 이분들은 제가 아는 한 본래 심성이 착한 분들이라 '지금 우리가 정부를 도우면 한국교회사(개신교)를 역사책에 더 많이 기술해 주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국정화에 찬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들의 결정은 소탐대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 만든 역사책에 기독교사를 밀어 넣었다고 칩시다. 세상이 우리를 평가할 때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역사를 왜곡한 개념 없는 집단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더 나쁘게 말하면 '장물의 지분을 요구하는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해 야합한 헤롯과 제사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한 목사들은 전두환을 여호수아 장군처럼 추켜세웠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창피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입니다. 교회사 교수들의 이런 행위는 한국교회사에 오롯이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신학도의 영예로운 스승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국정화 찬성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찬성한) 교수들은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기독교의 분량이 타 종교와 비교했을 때 부족하다는 논리를 폅니다. 국정화를 해서라도 기독교의 서술 분량을 늘리는 일이 중요한가요? 한국사를 공부하신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행 교과서에서 개신교의 서술이 빈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방법은 늘 원인 분석이 우선입니다. 집필자들이 왜 개신교는 적게 서술하고 천주교는 더 많이 기술하는지 냉정하게 자기평가를 해야 합니다.

학자들이 개신교에 느끼는 거부감이 첫 번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인데, 현재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근현대사를 기술할 때 이런 문제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역사 교과서 문제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온 국민이 '불복종운동'을 선언한 역사 쿠데타에 동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더 왕따가 될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개신교 역사를 더 많이 기술해 줄 것이라는 보장은 있습니까? 백 보 양보해서 혹시 두어 줄 더 넣어 준다고 합시다. 국정화 찬성은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대의를 저버린 집단, 시대정신 없는 집단으로 기억하게 하는 부끄러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역사책에 기독교의 역할이 더 많이 기록되기 바라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선교를 위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이런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지금은 국민의 편이 정의의 편입니다.

국정교과서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아

- 보수 기독교계는 이번 국정화 사태를 이념의 싸움이라고 단정한 듯합니다. 교인들을 통해 현행 역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이름 붙인 찌라시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교단의 교인들을 중심으로 기독인들이 여기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사님은 이런 현상의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시나요?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여기에 잘못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교리적인 문제도 아닌데 교회가 발 빠르게 나셨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청와대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오해받기 딱 좋은 행태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현재의 검인정 국사 교과서가 '악마의 발톱'을 숨기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고무·찬양한다고 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 보셨습니까?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제 입장에서 볼 때, 현행 교과서에는 우리가 우려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에 대한 정치나 일반 백성의 생활사 등은 평화통일을 꿈꾸는 국민이라면 더 많이, 더 상세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의 교과서 검인정 제도에서도 이념이나 역사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없습니다. 감시와 처벌의 수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결코 엉뚱한 책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늬만 검정이지 지금도 국정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교육부의 집필 기준을 꼭 따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여러 출판사에서 교과서가 나옵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자율화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도 맞습니다.

일부 보수 교단의 교회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합니다. 이들은 현실 파악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문제는 '국사'를 '가족사'로 착각한 정치 지도자의 오만과 경제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정부의 꼼수 아닙니까? 이런 정치 폭거에 한국교회가 들러리로 차출되었습니다. 참 초라해 보입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신중치 못한 행동입니다.

한국사 관련학자 99%가 반대하고 심지어 학생들까지 길거리로 나와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왜 한국교회는 역행하고 있습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고, 한국교회는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사회에 온통 불복종운동이 번지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잘못된 집권자의 야욕을 채우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어용 집단이라는 오명을 벗을 길이 없습니다.

세상살이 힘든 교인 이해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하자

- 목사님이 속하신 교단(예장합동)의 박무용 총회장마저 '국정화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찬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목사님은 오랜 기간 역사를 공부해 오신 분으로서 목회자들이 왜 신학 외의 학문을 공부해야 하는지 느끼신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목사들이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까요?

아마 그분들 중 지금은 속으로 후회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웃음) 이것이 뜨거운 감자가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모 기독교 방송사가 치밀하게 계획한 정치적 야합 행위입니다. 선량한 교단 총회장들을 교묘하게 속여 먹은 패륜 행위였습니다. 저는 그 보도가 나오는 순간 불쾌했습니다. '일개 언론사가 한국교회 전체에 모욕감을 안겨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들이 집단으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체면을 세웠습니다. 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목회는 일종의 종합예술입니다. 역사 해석에 다양성이 필요하듯 목회 역시 편협한 의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스님처럼 안빈낙도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겪는 영적 투쟁의 현장이 목회 아닙니까? 따라서 좀 더 폭넓은 의식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인문학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 지쳐 있는 성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이번 역사 교과서 문제만 해도 세상 사람들은 전쟁 혹은 쿠데타로 받아들이는 데 목회자들은 가벼운 '교육 논쟁'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와 같은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섬뜩하지 않습니까? 배부른 한국교회가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우스갯소리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집사들의 주장이 옳았습니다. 국회의원 이재오 집사(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 정두언 집사(시대에 역행하는 것), 남경필 집사(다양성이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한다)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보수 교단 목사와 황교안 총리(전도사) 그리고 황우여 장관(장로)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니 목사·전도사·장로의 막장 시대입니다. 참 망신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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