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어떤 교회를 하실 건가요?"

주일날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주 앉은 집사님이 좌우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이 분이 분립 교회에 오시려나?' 반가운 마음에 냉큼 대답하려는데, 잠시 멈칫했다.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를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동안 교회와 관련한 많은 책을 읽었고, 여러 개척 선배들을 만나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나름의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했기에 질문에 신속·정확·친절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 질문에는 모종의 전제를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라는 전제다.

교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니까 교인은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오해가 한국교회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 최근 교회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헤쳐 보면 결국 그 안에는 '목사의 오만과 교인의 방조'라는 고름덩어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므로 새로 시작하는 교회는 이 전제를 뒤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목사 주도의 개척'이라는 전제는 특별히 분립 교회에게 위험하다. 왜냐면 교인들의 상상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목사 혼자가 아니라 교인들과 함께 시작하는 교회 앞에 놓여 있는 질문은 주관식이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교인들은 나름의 답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목사가 먼저 이런 교회를 하겠다고 선언해 버리면 교인들 앞에 놓이는 질문은 객관식으로 변한다. "목사가 이런 교회를 하겠단다.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1번) 맘에 든다. 따라간다. 2번) 맘에 안 든다. 목사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가라 그래라."

교인들의 뜻을 모아 교회를 시작해야 한다. 목사가 독단적으로 앞서 나가면 안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떠오른다. '교인들 뜻대로 교회를 시작하겠다고? 목사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야?'

개척 목사에게는 의무가 있다. 개척 목사의 역할은 단순한 개척 프로세스 진행자, 그 이상이다. 아직 개척 멤버가 모이지도 않는데 누구의 뜻을 모아 교회를 시작한다는 말인가? 지금은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서 함께 교회를 개척할 동지들을 모을 때다. 교인들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 깃발을 들고 같이 가자고 해도 갈까 말까 한데, 알아서들 하라면 누가 가겠는가? 변화를 시도하되, 목사가 일을 주도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교인들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머리는 이상을 향하되 발은 현실에 둬야 한다.

개척 목사는 진실해야 한다. 뜻이 있으면 적절하게 밝히는 게 좋다. 음흉하면 안 된다. 결국 목사의 뜻대로 다 할 거면서 과정이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척, 교인들의 의견을 듣고 따르는 척 시늉만 하면 곤란하다. 교인들을 들러리로 세우면 안 된다.

개척 목사는 소명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모세처럼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바로에 대항하여 목숨 걸고 싸우며, 홍해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서 광야로 백성을 인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목사님은 어떤 교회를 하실 건가요?"

지금부터의 대답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교회의 생각이다. 이 대답은 3~6월 분립개척위원회의 토론과 7~9월 당회의 동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의 소견을 토론을 위한 밑그림으로 제시했고, 위원회와 당회는 이에 대해 하나님나라의 상상력을 열고 자유롭게 논의했다. 처음 내가 제시한 초안과 비교할 때 바뀐 점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변화를 수용했다. 내 뜻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분립 개척교회의 정체성은 모교회인 일산은혜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분립 교회는 모교회의 자식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지만 부모와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분립 교회는 모교회와 공통점을 있지만 동시에 자기만의 특징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 특징은 모교회와 달리 분립 교회가 새로 시작한 신생 교회이며, 규모가 작은 소형 교회라는 점에서 나올 것이다. 분립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으며, 각각은 어떤 인물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는 감동적인 복음주의적 예배다. 일산은혜교회는 남서울교회가 분립 개척한 교회로서 홍정길 목사의 복음주의적 신앙을 이어받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인정하는 전통적인 대속적 구원론이다. 분립 교회도 이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하여 예배할 것이다. 분립 교회의 예배는 모교회의 진지한 예배의 모범을 이어받되 더 뜨겁고 열정적인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 전통을 계승할 것이다.

둘째는 참여하는 하나님나라 선교다. 우리 교회는 분당두레교회 박철수 목사의 하나님나라 신앙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사회 전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순종하여,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공평과 정의를 선포하고 실천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분립 교회 또한 이를 이어받아 하나님나라 선교에 대해 교육받고 지원할 뿐만 아니라, 복음 전도와 사회 선교의 현장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셋째는 실천하는 성경 교육이다. 일산은혜교회는 김회권 교수의 하나님나라 신학에 근거한 성경 해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경 말씀에 대해 학습하고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분립 교회도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에서 배우는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실천하는 성경 교육이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 신앙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넷째는 친밀한 공동체 교제다. 모교회는 중형 도시 교회 속에서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최영기 목사의 가정교회 제도를 채택했던 교회다. 친밀한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분립 교회에서 더욱 현실화될 것이다. 분립 교회는 작은 교회이기에 친밀한 공동체를 만들기가 더 용이하다. 또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공동체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신앙 공동체에서 생활 공동체로, 교회 공동체에서 지역 공동체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다섯째는 민주적인 목회 운영이다. 일산은혜교회는 건강한 교회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님이 건강한 인격과 윤리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담임목사 개인의 인격과 윤리에 의존한 건강한 목회는 위험할 수 있다. 한국의 여러 교회들이 한때는 훌륭했던 담임목사 개인의 실수와 타락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러므로 분립 교회는 건강한 담임목사의 인격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교회 제도와 적극적인 교인의 참여에 근거한 교회가 될 것이다.

분립 교회는 포용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으로 모인 특별한 교회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노는 곳이지, 사자는 사자끼리 어린양은 어린양끼리 노는 곳이 아니다.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함께 뛰는 교회, 보수와 진보가 함께 웃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란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불편한 동거'를 의미한다. 어색하고 버겁지만, 다양성이 인정되고 아무도 소외당하거나 매도되지 않는 교회가 되고 싶다.

"집사님, 저는 그냥 평범한 교회 하려고요." 고심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감동적인 예배, 참여하는 선교, 실천하는 교육, 친밀한 교제, 민주적인 목회가 이뤄지는 교회가 무슨 특별한 교회겠는가? 그냥 평범한 교회지.

남오성 / 일산은혜교회 목사, 빅퍼즐아카데미 대표,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 일산은혜교회 전경. (사진 제공 일산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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