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세의 일기로 별세한 기독교 사상가 르네 지라르. (<스탠포드뉴스> 기사 갈무리)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철학자이자 인류학자, 동시에 신학자였던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11월 4일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르네 지라르는 '인문학의 새로운 다윈'이라고 불렸다. 그는 20세기 기독교를 변증적으로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한길사)·<희생양>·<폭력과 성스러움>(민음사) 등 서른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르네 지라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모방 이론(la théorie mimétique)'이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은 타자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존재다. 인류 역사에서 갈등과 폭력이 일어나는 것도 인간에게 있는 모방 욕망 때문이다. 폭력은 모방 욕망을 따라 계속해서 확대되고 사회를 붕괴 위험에 처하게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폭력의 욕구를 돌릴 희생양을 찾는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보기에 성경은 폭력으로 점쳐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는 20세기, 프랑스 철학계에서 배제했던 유대-기독교 문서들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했다. 여러 저작에서 그는 유일신이 있는 종교, 기독교야말로 모방이 낳는 폭력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 주장했다.

지라르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더 오래 생활하고 더 크게 인정받았다. 1923년 아비뇽에서 태어난 그는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급진적 사회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94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라르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그랑제콜(고등교육기관)로는 최고인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라르는 이 과정을 끝까지 마치지 않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고등문서학교(Ecole des Chartes)에 들어가 파리에서 생활했다.

1947년 미국으로 옮겨 간 이후 그는 듀크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쳤고 스탠포드대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5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고 명예로운 학술 기관 아카데미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종신회원으로 선발되었다. 종교인류학이라는 독창적인 연구 세계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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