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역사책을 편찬하게 되면, 왕공(王公)과 장상(將相), 영웅과 썩은 선비, 현인(賢人)과 간사한 인간 등 모든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들의 공과(功過) 여부에 대해 나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차라리 내가 남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49쪽)

▲ <일기를 쓰다 1> / 유만주 지음 / 김하라 옮김 / 돌베개 펴냄 / 332쪽 / 1만 1,000원

유만주의 <일기를 쓰다 1>(돌베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조선 후기의 가난한 선비이자, 구한말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고조부인 유만주가 1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 내려간 <흠영>이라는 장편 일기의 한 대목이죠. 그만큼 역사는 날것 그대로 기술해야 하고, 그걸 토대로 후대의 사람들이 바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죠.

이 책에는 유만주가 써 내려간 조선 시대의 역사는 물론이고 풍속과 예술, 독서와 문화, 기이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은 그의 역사관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학을 하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네 가지 요소를 강조하죠. 바로 역사를 고찰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자료 서적,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동지, 역사가임을 나타내 주는 관직, 역사서를 엮을 수 있는 문장력입니다.

왜 이런 것들을 고집하는 것일까요? 서적이 다양하지 않으면 의혹이 많아지고, 함께 공부하고 토론할 사람이 없으면 식견이 고루해집니다. 그리고 사관이 아니면서 역사를 편찬한다면 경솔하고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할 수 있고, 문장력이 넉넉지 못하면 말만 궁색해지는 까닭이겠죠. 그처럼 역사책만큼은 다양해야 하고, 마음껏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도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겠죠.

그의 책을 읽고 있자니, 요즘에 새벽 기도회 때 묵상하고 있는 열왕기상 1장이 눈에 선합니다. 다윗이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는 장면이 기록돼 있는데, 그 역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좋은 것은, 그와 관련한 연구 자료들이 풍부하다는 점입니다. 제 나름대로 솔로몬이 왕위를 받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 다윗이 70세가 되었습니다.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했죠. 몸의 기운이 다 빠져 나가고 있었죠. 그때 신하들은 잇사갈 지파의 땅 다볼산 근처의 수넴 여자 아비삭(אֲבִישַׁג,stray)을 다윗의 시녀로 섬기게 했습니다. 다윗의 또 다른 후처가 생긴 것이죠. 하지만 발기부전 상태였던 다윗은 그녀와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죠. 더욱이 그때까지 차기 왕도 낙점치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윗이 신체적으로 무기력할 때 다윗의 넷째 아들이자 학깃(חַגִּית,festive)의 아들인 아도니야가 치고 나서죠. 큰아들 암논은 살해당했고, 둘째 길르압은 어린 시절에 죽었고, 셋째 압살롬은 역모를 꾀하다 요압의 칼에 죽은 상황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왕위가 자신의 것이라 판단했죠. 그런 명분을 쥐고 아도니야는 40년간 다윗의 군대장관으로 활약한 요압 장군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데리고, 헤브론의 유다 족속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에느로겔의 소헬렛(זֹחֶלֶת,serpent) 바위에서 '왕의 출정식 잔치'를 벌이고자 했죠.

그러자 그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던 솔로몬과 그 측근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친위대장 브나야와 부하 장수들,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그들이었죠. 더욱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솔로몬을 지지하고 나섰죠.1) 그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던 중 선지자 나단이 나서서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בַּת־שֶׁבַע)에게 간청합니다. 다윗 왕에게 직언을 고하도록 말이죠.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모두가 화를 당할 판국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한 것이죠.

밧세바는 젊은 아비삭이 시중을 들고 있는 다윗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밧세바는 다윗에게 아도니야가 벌이고 있는 계략을 과장되게 이야기했고, 예전에 자기 침실에서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주겠다고 맹세(שָׁבַע,swear)한 일도 상기하죠. 만일 맹세를 지켜 주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솔로몬,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디디야'(삼하12:25)도 모두 대역죄인이 될 거라고 말하죠. 그때 나단도 다윗에게 나아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아룁니다.

모든 정황을 들은 다윗은 바로 그 순간 왕위를 솔로몬에게 넘긴다고 공포하죠.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를 불러 자기 노새에 솔로몬을 태우고 기혼으로 가게 합니다. 그곳에서 나팔을 불고, 온 백성과 더불어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치도록 명령하죠. 그렇게 다윗의 왕위는 '12살의 솔로몬'에게2) 넘어가고, 솔로몬은 그때부터 40년간(기원전 971~931, 왕상11:42)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죠.

솔로몬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솔로몬이 다윗의 열 번째 아들이긴 하지만, 불륜을 통해 태어난 자식으로 자랑스럽지 못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죠. 솔로몬에게서 일곱 명의 형들 사이에서 배다른 막내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 모습이 겹쳐지기도 하죠.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롭게 양치기하며 살던 다윗의 모습 말입니다. 솔로몬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하나님께만 기대며 살았겠죠. 그런 자신이 왕이 되었으니 그 얼마나 감개무량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도니야는 어찌하여 왕이 되지 못한 걸까요? 무엇보다도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교만함'이 가장 큰 원인이고, 왕위를 이어받을 명분은 충분했지만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워 주기까지 참고 인내하지 못한 '성급함'이 또 다른 원인입니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왕상1:6)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아버지와의 대화 부재'가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겠죠. 마치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의 대화 부재가 소통의 장벽을 불러오고, 뒷날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는 화근을 자초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가 하면 요압과 아비아달은 어떤가요? 요압은 사울 왕권이 무너지고 블레셋 세력과 부딪치던 시기에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 왕권을 정비하고 대외적인 평정을 이룬 인물이었죠. 아비아달도 다윗 시대에 대제사장 역할을 했고,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함께 했었죠. 더욱이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때에도 다윗에게 충성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아도니야와 결탁한 걸까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을 따르기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으로 실권을 잡을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에게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고픈 욕망이 있었겠죠. 그들은 실권자의 간신을 자처하거나, 실권 예상자에게 낙점받고자 하는 요즘의 정치 모리배들과 같죠.

어떤가요. 이렇게 여러 연구 자료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 나가면 그만큼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고, 이것을 토대로 토론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유만주가 이야기했듯이 후대 사람들, 곧 오늘날의 우리들이 충분히 다윗의 공과에 대해 평가할 수 있죠? 이런 평가를 통해 우리들과 후세대가 더 나은 삶과 역사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것이고요.

박근혜 정부가 드디어 국정교과서 확정 고시를 발표했습니다. 그를 두고 "통일 대비를 위한 사상 확립"3)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진행된 획일적인 사상 확립일 뿐이죠. 진정으로 통일을 대비한다면 날것 그대로 다양한 역사 교과서를 편찬케 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토론도 허용해야 하죠. 그래야 훗날 더 나은 통일 한국을 이룰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죠. 어쩌면 다윗이 왕위 선택을 그렇게까지 늦춘 것도 더 나은 통일 왕국을 꿈꾼 까닭에 있지 않았을까요? 제발 박근혜 정부의 관료들이 유만주의 일기장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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