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10월 마지막 날, 아침 7시부터 30여 명의 사람이 서울역 앞에 모였다. 등산객들 사이에서 옷과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세월호를기억하는모임(세기모)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하는 팽목항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난 4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서울과 진도를 오가는 시간만 총 13시간. 진도 팽목항에서 보낸 시간은 2시간 반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서울과 대전에서 50여 명의 사람이 기도회를 찾았다.

"안산분향소 가는 길에는 많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보통 노란 바탕에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지난주에 갔다가 색이 바랜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것이 저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유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기억하고 되뇌지 않으면 빛이 바래듯 세월호 사건을 잊게 됩니다. 제 마음에 노란색을 칠해야만 잊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팽목항에 오게 되었습니다."

▲ 팽목항 주변에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가 적힌 노란 띠를 묶어 놨다. 세월호 사건이 난 지 564일 째, 색이 많이 바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길가는밴드에서 활동하는 장현호 씨의 말이다. 진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고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 외에 50대 집사, 목사, 대학생이 차례로 이야기했다.

"우리 아이가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합니다. 이 때문인지 광화문도 자주 찾았습니다. 늘 빚진 마음이 있었고 지난 4월 팽목항 기도회에 이어 이번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섬을 위주로 사역해 왔고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도, 팽목항에 많이 왔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계속 관심을 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님들이 이곳에도 오셔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잊게 되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세월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팽목항 포스터를 보자마자 열 일 제치고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 팽목항에 도착하면 노란 리본이 달린 십자가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기독교인이라면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들었습니다. 날마다 치열한 정치적 이슈와 논쟁들이 터지고 있는데, 세월호 사건도 그중 하나로만 취급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를 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분향소에서 만났던 유가족들의 말씀과 슬픔을 잊지 못했습니다. 다들 세월호를 잊어 가는데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군대 안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지만 전역하고 나서 세상에 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지만 나부터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아이들을 먼저 구출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교회 집사님이 이런 게 있다고 먼저 말해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세월호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의 말처럼, 빛바랜 마음에 노란 물을 들이려 기도회에 참석한 것이다.

오후 2시 반에 도착한 진도. 바람은 유난히도 매서웠다. '실종자를 가족의 품으로'라는 말이 적힌 노란 띠들이 쉴 새 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팽목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분향소로 들어갔다. 앞에는 영정 사진이 길게 놓여 있었다. 그 사이에는 '세월호 속에 아직 00가 있습니다!'는 문구가 적힌 액자도 있었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이었다. 영정 사진을 보던 참가자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단 앞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분향소에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학생들의 영정 사진이 빼곡하다. 아직 뭍으로 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은 사진 대신 '세월호 속에 아직 00이 있습니다!'고 써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참가자들은 분향을 마치고 0416팽목분향소 옆에 있는 컨테이너(강당)로 걸음을 옮겼다. '강당'에서 찬양과 말씀, 기도회,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가 이어졌다. 김신일 목사(마당교회, 성서대전)는 간담회 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억압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외면하십니까, 왜 우리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 잊을지라도 기독인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온 팽목항 기도회 참여자들은 집중해서 김신일 목사(마당교회)의 설교를 듣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김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몇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선체 인양'이었다. 세월호 안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사람이 있다. 단원고등학교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 고창석‧양승진 선생님, 일반인 승객인 권재근‧이영숙 씨와 권혁규 군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현재 '안전한 선체 인양'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간담회에서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는 권재근 씨와 권혁규 군의 가족인 권오복 씨와 단원고 학생인 조은화 양의 어머니인 이금희 씨가 참석했다.

사고 첫날부터 진도를 떠나지 않았던 권오복 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 권재근 씨의 형님 권오복 씨는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졌는데, 기독인들이 찾아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서울에서 오면 천 리 길인데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진도가 이렇게 먼지 몰랐어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수부 직원들은 작년 7~8월만 해도 인양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배의 높이가 6층 빌딩과 같고 폭이 22m인데, 어떻게 배를 인양하느냐고 했어요. 저는 어떻게서든 인양만 하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 조사하는 특조위 손발도 다 묶어서 선체 조사 활동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런 상태로는 진실을 못 밝힙니다."

권오복 씨가 이야기를 끝내자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564일째 4월 16일을 살고 있는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엄마입니다. 많은 사람이 왜 미수습자 가족은 정부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울화통이 터지지만 정부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 어떤 것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저희입니다. 왜일까요. 인양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겁니다."

▲"저쪽을 한 번 보세요." 은화 엄마는 참가자들에게 미수습자 가족의 근황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벽에 붙은 미수습자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저희는 한마디도 못하고 정부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내 딸 좀 꺼내 달라고, 내 딸 좀 유실 안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언제까지 내 딸이 바닷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세월호 속에 있을지 없을지, 찾을지 못 찾을지, 배가 올라올지 못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유실 방지책 세우고 인양해야 한다고,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먼저는 미수습자 가족이 유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미수습자 가족이 유가족으로 인정이 되려면) 인양을 해야 합니다. 정부는 내년 7월에 배가 인양될 거라고 이야기는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인양이 100% 될 거라 말하는 정부 기관, 국민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인양이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날마다 떨고 있습니다. 인양했을 때 세월호 안에 아홉 명이 다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홉 명이 다 나오지 못할까 봐 무섭습니다."

차분하게 말하던 은화 엄마는 유실 방지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리가 커졌다.

"왼쪽 바닥이 해저면에 닿아 있는 세월호 내부는 현재 물건이 가득 차 있는 상태입니다. 잠수사가 들어가도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현재 상하이 살비지(인양단체)가 말한 인양 방법은 배를 위로 드는 것인데, 배의 길이만 145m입니다. 배의 높이는 26m이고 제일 높은 부분은 46m입니다. 아파트 8층 높이 정도입니다. 아직 배의 밑부분에 있는 유리창이 깨졌는지 확인도 안 됐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배를 들면 어떻게 될까요. 깨진 유리창 사이로 물건이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하이는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 바깥에 그물을 치고 체인을 걸어 들어 올리겠다고 합니다. 유실 방지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거죠."

▲은화 엄마 이금희 씨는 해수부에서 내놓은 유실 방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씨는 참여자들이 이해를 위해 직접 페트병을 꺼내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던 참가자들은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세월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미수습자 가족의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 점이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참가자들은 "더욱 신경을 쓰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겠다" 등 제각각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졌다.

팽목항 기도회에 오지 못한 기독인들은 안산과 서울에서 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다. 안산은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안산정부합동분향소 개신교 부스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목요 기도회'가 있다. 서울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목요 문화제에 참여할 수 있다. 둘째 주 목요일에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진행된다. 교회 또는 모임에서는 '세월호 가족 간담회'를 신청할 수도 있다. 성서한국(문의: 02-734-0208)으로 연락하면 가족들을 연결해 준다.

▲ 팽목항에는 세월호를 표현한 구조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416세월호참사희생자팽목항분향소의 외벽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0416팽목분향소 외벽에는 '세월호 속에 아직도 내 가족이 있습니다'와 '졸업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인양해 주세요!'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분향소 실내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참가자들이 분향소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강당 안에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분향소에 '잊지 않을게'라는 문구와 노란 리본 스티커가 같이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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