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부처럼 획일적으로 국정을 만들기보다 (역사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채영남 총회장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로 바꿀 경우 국론이 분열이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은 꿋꿋이 소신을 밝혔다. 채영남 총회장을 제외한 예장합동 박무용 총회장, 예장대신 장종현 총회장, 예장고신 신상현 총회장은 모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14일 C채널에 방영된 '신임 교단장 좌담회' 자리에서였다.

10월 20일에는 예장통합 교단 차원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현 역사 교과서에 기독교 서술 분량이 적다고 얘기하면서도, 국정교과서에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경우 역사 해석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고, 다음 세대가 역사를 획일적으로 이해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예장통합 산하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 역사신학 교수 7명(임희국·서원모·박경수·안교성·이치만·김석주·손은실)이 합세했다. 신학대학 최초로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10월 24일, 교수들은 학교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국정화는 사고의 획일화를 초래할 전근대적인 조치이고 △역사 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태도이며 △한국 사회와 학계의 문제 해결 능력 및 자정 능력을 불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신대 학생들도 학교에 현수막을 걸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 촌철살인의 이 현수막은 SNS에서 회자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예장합동·감리회 등 주요 교단들과 신학 교수들이 침묵하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몇몇 신학교 교수들은 앞장서서 국정화를 지지했다. 한국교회에 실망한 많은 기독교인이 예장통합과 장신대 교수들의 성명서와 학생들의 현수막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 예장통합은 10월 20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른 교단들과 달리 입장을 밝혔다. 장신대 역사신학 교수들도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교단 안에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삐져나오는 불협화음, "나는 국정화 찬성한다"

그러나 예장통합에 속한 모든 사람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신학이나 정치적 성향의 스펙트럼이 넓은 예장통합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공개적으로 국정화를 지지한다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예장통합 서울동노회 전 노회장이자 노회장협의회 회장 정판식 목사(국일교회)는 10월 28일, "총회가 개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기도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다른 노회장들에게 보냈다. 메시지 내용을 보면 △한쪽에 치우친 발표로 국정화를 원하는 분들의 원성을 사고 있고 △마치 국정화로 인해 기독교 관련 기술이 줄어들었다는 논조로 유도하고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발표해 많은 교인에게 충격을 줬다고 나와 있다. 정 목사는 노회별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정판식 목사는 29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은 정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국론을 생각해서 자중해 왔는데, 이번에는 (총회 임원회가) 너무 성급하게 성명을 발표한 것 같다. (성명 발표로) 국론만 분열됐다"고 말했다.

정판식 목사가 노회장들에게 문자를 보낸 날, 장신대 김철홍 교수(신약학)는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서'에 대한 비판과 국정화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A4 용지 8장 분량의 글에서 자신의 경험을 절절하게 이야기하며, 국정교과서를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장신대 게시판 바로 가기) 

김철홍 교수는 역사신학 교수들의 성명이 독자의 투항과 복종을 요구한다면서 도가 지나치다고 했다. 성명서에 기존 역사 교과서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도 없다면서, 오히려 총회장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가 실증적이라고 했다. 또, 역사신학 교수들의 성명에 비춰 봤을 때, 국정화를 찬성하는 자신은 신앙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는 교수라고 했다.

그는 기존 역사 교과서가 사회주의적 이념에 물들었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를 직접 분석했다면서, 계급투쟁, 토지 집중, 반혁명 세력, 토지 국유화, 사회주의적 개혁, 통일전선, 무장봉기, 무상 의무교육, 무상몰수 무상분배 등 사회주의 용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가 상당히 이념적인데, 반복적으로 나온다. 내가 봤을 때 교과서를 집필하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넣는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사회주의적 역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철홍 교수가 쓴 글에 장신대 구성원들이 수십 개의 찬반 댓글을 달았다. "국정화 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의견부터 "다양한 역사 해석을 위해 국정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 장신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장신대 학내에 부착된 한 장의 플래카드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사진 제공 장신대 학우회)

"건전한 내부 토론은 고무적"

타 교단에 비하면 한국 사회 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한 예장통합이지만 내부의 혼선은 피할 수 없었다. 국정화 반대와 찬성 입장에 선 사람들은 서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김철홍 교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그에게 예의를 표하며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개진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예장통합 안에 이런 토론이 필요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장통합 이홍정 사무총장은 10월 29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국정교과서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것처럼, 교단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흘러갈 것이다. 비록 김철홍 교수가 교단의 입장과 반대되는 글을 올렸지만, 오히려 장신대 안에서 건전한 토론이 활성화되고 있다.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판식 목사가 문자메시지를 돌린 것은 정 목사 개인의 역할을 넘어선 행위다. 유감이다"고 했다.

▲ 정판식 목사가 노회장들에게 보낸 메시지. 총회가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낸 것과 관련해 노회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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