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벽시간에 사무엘하 12장∼17장을 읽어 가고 있습니다. 중년의 안정기에 접어든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까지 죽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죄의 후유증을 예고하죠. 그게 12장의 내용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3장부터 진행이 되죠.

다윗은 7년 6개월간 헤브론에서 살면서 맞이한 6명의 처첩과 6명의 아들, 33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할 때 얻은 13명의 아들과 딸 다말, 그 밖에 여러 소실과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그중 큰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죠. 그 일로 2년간 벼르고 있던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양털 깎는 잔치를 벌여 암논을 죽이고 외조부 그술 왕에게 도망쳐 3년을 지내게 됩니다.

14장에서 정치적인 욕망에 가득 찬 요압 장군이 나서서 다윗과 압살롬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합니다. 요압은 그것을 위해 압살롬을 왕궁으로 불러들였죠. 그러나 다윗은 2년간 압살롬의 얼굴도 보지 않습니다. 그때 요압이 또다시 중재해 부자지간에 만남을 주관하지만, 15장에 이르러 압살롬은 4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 문제에 끼어들어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죠. 급기야 헤브론으로 내려가 쿠데타를 일으키죠.

한편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따라붙고자 한 이들이 있었죠. 블레셋 가드 지역의 망명자 600명과 그 인솔자 '잇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레위인들,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 하지만 다윗은 제사장들을 본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후새를 압살롬에게 보내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효화하도록 하죠. 물론 그런 충성스런 신하들과 달리 16장에서는 사심(私心)을 채우고자 한 므비보셋의 종 '시바'와 다윗을 저주하며 욕한 사울의 친족 '시므이'도 등장합니다.

그즈음 예루살렘을 찬탈한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인 아버지의 아내들을 옥상에서 범하죠. 그것은 이전의 다윗의 책사였다가 지금은 압살롬의 지략가인 '아히도벨'의 계략이었습니다. 17장에서는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1만 2,000명의 군사를 내주면 다윗의 뒤를 추격해 동행자들을 처단하고, "다윗 왕을 쳐 죽이고"(삼하 17:1) 돌아올 거라고 말하죠. 물론 그의 계략은 시행되지 못합니다. 

"밧세바의 친조부인 아히도벨이 우리아를 죽인 다윗을 죽여 입안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삼하23:34, 11:3 참조)" (218쪽)

▲ <다윗 실록: 구약의 기록들이 노래하는 다윗 일대기> / 고영길 지음 / 홍성사 펴냄 / 312쪽 / 1만 3,000원

고영길의 <다윗 실록>(홍성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을 '위대한 왕'이라 부른 이유를 추적해 보고 또 본받고자 사무엘서와 열왕기, 역대기, 그리고 시편에 기록된 내용들을 토대로 다윗의 스토리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하여 엮은 책이죠. 이 책을 통해 아히도벨이 왜 그토록 다윗의 목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1)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책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 문제에 관여해 그들의 마음을 훔칠 때를 다윗의 나이 60세 쯤으로 추정합니다. 그때 다윗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가정의 상황이나 재판, 심지어 국정 운영에도 소홀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죠.

10대 시절 다윗은 고독하게 양치기를 하면서 자립정신을 키웠고, 20대에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골리앗을 쓰러뜨린 일로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다녔습니다. 다윗은 30대에 유다 지파의 왕으로 등극한 후 모든 지파의 왕이 되고자 안간힘을 썼고, 40대에 주변 지역 정벌을 통해 왕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50대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어 밧세바를 범했고, 그 죄로 인한 후유증을 60세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히도벨과 다윗의 관계를 읽으면서 또 한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버드나무말씀연구회 이상준 씨가 번역한 <야살의 책 1>(이스트 윈드)입니다. 현재 외경(Apocrypha)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 책은 랍비 엘리에셀(Rabbi Eliezer)이 그의 연대기를 기록할 때 사용했습니다. 2세기 무렵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서로 널리 활용되었다고 하죠. 1613년에 이르러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히브리어판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야살의 책'은 '이스라엘의 전쟁시'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과 영문판2)을 대조해 보면 단순한 야사(野史)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가인과 아벨 외에) '세 딸'이 태어난 사연, 가인이 7대손 두발가인의 화살에 맞아 죽은 사연, 노아가 5년에 걸쳐 방주를 만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 노아의 아들들인 야벳과 함과 셈의 며느리가 실은 므두셀라의 아들인 '엘리아김의 세 딸'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특히 함의 후손 니므롯이 큰 성을 세우고 왕으로 군림할 때 그의 군대장관으로 활약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였다는 점은 참 특이합니다.

"아브람이 동굴에서 나왔을 때에 그가 노아와 그의 아들 셈에게 가서 주의 가르침과 그의 길을 배우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머물렀고 누구도 아브람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브람이 노아와 그의 아들 셈을 오랫동안 섬겼다. 아브람이 노아의 집에 39년 동안 있었다. 아브람이 3살 때부터 주를 알았고 그가 노아와 그의 아들 셈이 그에게 가르친 대로 그의 죽는 날까지 주의 길을 걸었다." (75쪽)

아브라함은 태어날 때, 모세와 예수님처럼 큰 위협을 당했는데,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피해 숨겨 키운 곳이 바로 노아의 집이었다고 기록하죠. 그곳에서 노아의 신앙심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장성한 후에 니므롯과 맞서다가 다니엘처럼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죠. 그 역시 천사를 통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불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 <야살의 책 1> / 이상준 옮김 / 이스트윈드 펴냄 / 291쪽 / 1만 원

이 책의 초반부에는 족보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요. 후반부에는 야곱의 아들들이 가나안 부족들과 줄기차게 전쟁을 치른 장면도 소개합니다. 물론 91장에서 마무리하는 영문판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부족들을 정복한 과정으로 끝을 맺고 있죠. 그와 같은 전쟁 무용담을 여호수아(수 10:13)와 다윗(삼하 1:8)이 적극적으로 인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요즘에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하듯 그것은 부친의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달리 보면 그 일은 부친의 족보를 새롭게 쓰려는 일과 다를 바 없는 짓이죠.

그런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조차도 그 일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과연 제정신일까요? 사무엘하에 등장하는 다윗과 아히도벨의 모습만 제대로 읽어도, <야살의 책>에 기록된 니므롯과 아브라함의 관계만 잘 들여다봐도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날것 그대로 역사를 다양하게 배우는 세대야말로 미래를 알차게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대에 웃기는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제발 이쯤에서 멈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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