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확인한 박용규 교수가 "강의를 앞두고 통화하는 바람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면서 국정교과서에 대한 자신의 공식 입장을 10월 21일 아침, 문자로 알려 왔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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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제도는 한 종류의 교과서에 정부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인 까닭에 정권이 원하면 얼마든지 역사를 좌우, 개폐할 수 있는 위험한 제도입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지난 10월 8일,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전 국사편찬위원장)가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쓴 공개편지 내용 중 일부다. 이 교수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집필·편찬·수정·개편까지 정부 뜻대로 하는 독점적 교과서이며,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만열 교수의 지적처럼, 현 정권이 교과서를 만들면 친일·독재를 미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정부가 2015년 발행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보면, 이것이 단순한 우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제가 의병을 대량 학살한 것을 '의병 토벌'로,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은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쓰여 있다. 일제의 쌀 '수탈'은 '수출'로 나온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단 총회장들과 일부 신학교 교수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기독교인과 시민의 공분을 샀다. 특히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 교단 신상현 총회장이 "현 검인정 교과서가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고, 고신대학교 이상규 교수가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에 이름을 올린 것에 허탈해하는 기독교인이 많았다.
예장고신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자긍심을 가진 교단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친일을 미화할 수도 있는 우려 속에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했을까.
<뉴스앤조이>는 10월 20일, 신상현 총회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것은 내 개인 의견일 뿐 교단의 입장이 아니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게 왜 친일 논란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발행된 초등학교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기존 교과서에 문제가 더 많다. 공산당 이야기도 들어 있지 않은가.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바로 알자는 것이지, 누구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고신대 이상규 교수와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기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우리 입장을 대표하는 기독교교과서포럼의 박명수 교수(서울신대)에게 확인하라"고 피력했다. 박명수 교수는 수년 전부터 역사 교과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역사학계에 개신교를 공정하게 평가해 달라고 주문하고, 타 종교만큼 분량을 늘려 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에도 이름을 올렸다.
고신 교단 전체가 국정화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강영안 이사장은 다른 의견을 보였다. 강영안 이사장은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국정교과서를 추진해 소모적인 분쟁만 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해석을 위해서는 기존의 검인정 제도가 낫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로 갔다가 좌로 갔다가 할 것이다. (기독교 서술) 분량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지지한다? 일종의 미끼라고 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기독교가 근현대사의 정치·문화·예술·의학 등에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다 알지 않는가. 물론 제대로 기술이 안 됐을 수도 있으나, 단순히 분량을 늘려 달라고 하는 것은 어린애가 사탕 하나 더 달라는 것처럼 유치한 일이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교수 명단에는 신사참배 문제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교회를 연구해 온 박용규 교수(총신대)의 이름도 있었다. 그동안 박용규 교수는 <한국교회사> 1, 2권과 주기철·강규찬 목사, 조만식·장기려 장로 등을 배출하며 민족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평양산정현교회의 역사를 다룬 <한국교회와 민족을 깨운 평양산정현교회>, <강규찬과 평양산정현교회> 등을 집필한 바 있다.
<뉴스앤조이>는 박용규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국정교과서에 친일 미화 우려가 있는데 그간 연구해 온 것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정권을 비호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교과서에는 기독교 공헌이 너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짧게 답했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청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신대 이상규 교수와 마찬가지로 "박명수·이은선 교수와 같은 입장"이라고만 했다.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현 검인정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서술 내용이 적고, 기독교와 관련된 팩트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명수 교수는 "역사학 집단들이 폐쇄적이다. 다양한 의견을 내놔도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국정교과서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역사학계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 서술 분량이 적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할 소지는 여전하다. 양화진문화연구소 지강유철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제에 항거하다 순교하거나 신사참배 대신 폐쇄를 선택한 교회를 옹호하는 글을 써 온 역사신학 교수가, 친일 행적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것이 어용이 아니면 무엇이겠나"라고 올려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한신대 연규홍 교수(교회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검인정 교과서가 완벽할 수 없다고 본다. 편향되거나 왜곡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토론과 학문적 작업을 통해 바로잡아야지, 정부가 나서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 내용이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다면, 연구해서 반영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많은 비난에도 보수 기독교계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뉴스앤조이>는 역사 교과서 개정과 이번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박명수 교수와 10월 21일 인터뷰하기로 했다. 어떤 논리와 신앙으로 국정화를 찬성하는지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