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신뢰하는 삶 -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자인 로완 윌리엄스는 "우리 사회는 신뢰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영국 철학자 오노라 오닐의 말을 빌려, 지금 이 시대가 '신뢰의 위기' 상황에 있음을 지적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현실을 불러온다. 우리가 국제적인 정치·경제 구조에 묶여 있으며,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들려오는 부정의와 부패에 관한 소식이 이를 더욱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자조적으로 말한다면 "안타깝지만, 우리는 의심하는 법을 배워 버렸"(22쪽)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사도신경의 첫 번째 고백으로 넘어간다.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 <신뢰하는 삶 -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 로완 윌리엄스 지음 / 김병준, 민경찬 옮김 / 비아 펴냄 / 224쪽 / 1만 3,000원

신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심점이자 원동력

<신뢰하는 삶>은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에 대한 실천적인 해설서다. 저자가 2005년 부활절을 앞두고,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냈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나 비신자들까지 고려하고 있는 책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던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영미권에서는 탁월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10여 년간 성공회 수장으로 지냈고 학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으나, 저자의 책은 단 3권만 한국어로 번역·출간됐다. 그중 한 권이 이 책이다[나머지는 <기독교 영성 입문>(은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복있는사람)]. 책에서 저자는 '신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두 신앙고백의 의미를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신뢰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붙들 수 있는 구심점이자 원동력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내용의 기본 전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진정으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에 관한 앎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여러분에게 제도에 이름을 등록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느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실천적인 가르침, 교리의 원천은 일단 한번 신뢰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17쪽)

목차는 크게 여섯 개로 나뉜다.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 △위험을 무릅쓴 사랑 △온 세상과 시대를 짊어진 인간 △평화의 대가 △우애 가운데 함께 계신 하느님 △진실로, 사랑. 1장과 2장은 하나님, 3장과 4장은 예수님, 5장은 교회, 6장은 종말을 다루며 내용을 종합·정리한다.

진실한 교리 탐구와 진리를 찾기 위한 여정

로완 윌리엄스는 이 책을 통해 진실한 교리 탐구와 진리를 찾기 위한 여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의문, 불편한 질문들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을 만드는 긴장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는 모두 오늘날 같은 불신의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이제 곤란한 질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왜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께 확신을 두어야만 합니까? 하느님을 신뢰할 근거가 우리에게 있나요? (중략)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분명 그 목적을 헤아릴 수 없는 분, 그 뜻을 알 수 없는 분, 우리와는 완전히 떨어진, 우리를 초월하는 지성, 머나먼 곳에 있는 낯선 존재가 아닌가요?" (26~27쪽)

반대로,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아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거기 있으면서 우리를 도와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권위의 표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매우 위험한 환상이 아닙니까?" (36쪽)

저자는 될 수 있는 한 고려해야 하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그렇다고 소모적인 논증으로 지면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질문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신뢰'와 맞닿아 있다. 저자는 앞서 던진 불편한 질문들을 뚫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다시 정의하는 대목이다. 2장의 제목처럼 하나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 나간다는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전능함이란 극도로 불안정하고 부정의하며 믿을 수 없고 반역적인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신실하게,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는 무한한 힘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씨름하고 함께 협력하는 가운데,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끊임없이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 힘입니다." (41쪽)

이어서 저자는 모세, 아브라함 등을 포함한 성경 속 인물들의 삶과 아우슈비츠에서 극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보여 준 에티 힐레줌의 이야기를 통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여전히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에티 힐레줌은 20대의 젊은 유대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경건한 사람도, 전통을 따르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종교에 특별히 헌신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중략) 그녀는 1943년 11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아우슈비츠로 호송당하기 전 머무르던 베스테르보르크의 임시 수용소에서 당시 29살이던 그녀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도 하느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모든 것을 견뎌 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나라고 그 증인이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44~45쪽)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길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지점에서 균열된 현실을 찾아내 우리 앞에 꺼내 놓는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이렇다. 저자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서 울부짖는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의 궁극적 운명, 죽음이라는 비실재, 진리에서 잘려 나간 상태"(124쪽)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자기기만과 변명을 폭로할 예수의 진리가 우리 앞에 닥치리라는, 저 무서운 질문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140쪽)고 말하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5장에서 성서 읽기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이제 시급한 것은 성서를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함께 읽어야 한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170쪽)

저자는 누군가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그것이 설령 하나님의 손이라고 하더라도 두렵고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어둠 속으로 한걸음 내딛고 나아가는,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가운데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때, 그저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에 안주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에게서 단호히 몰아내는 가운데 예수의 말을 우리의 입술에 담아,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예수의 영을 모시고 하느님께 나아올 때, 진리를 향해 한 발 더 내디딜 때, 그리하여 '나는 믿습니다'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18세기 시인 헨리 본이 하느님의 '빛나는 어둠'이라 불렀던,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까지 고양된 온전한 인간이 되는 도정에 들어섭니다. 이 길은 온 생애에 걸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지만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결코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은총으로, 이 길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214~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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