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뇌 영혼 신> / 말콤 지브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IVP 펴냄 / 312쪽 / 1만 5,000원

지난 3월,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주관한 인문학 아고라 '아름다운 삶과 죽음' 첫 번째 강연이 있었다. '통섭'으로 유명한 한국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한 일화를 꺼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삶을 설명하다 보면 가끔씩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는데, 그 학생들은 하나같이 "삶이 진짜 그렇게 허무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최 교수 자신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는 유학 시절 공부하다가, '내가 무엇을 하든 DNA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인식에 다다르게 됐다. 순간 엄청난 허무주의에 휩싸여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근대 이후 과학의 발견은 인간의 존재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다소 과장해 말하면, 이제 하루하루가 다르게 학문의 지각변동을 경험하는 시대가 됐다. 과학의 발견은 성경이 보여 주는 자연관이나 생물관, 인간관이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아주 제한적인 그림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그리스도인은 과학과 신앙이 부딪치며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난처함과 그에 대한 대답은 저자가 인용하는 피터 엔스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등을 돌려도 우주의 기원과 생물의 기원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설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고대 근동이라는 맥락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9쪽)

"정직한 질문은 더 깊은 믿음으로 가는 성경적인 길"

<마음 뇌 영혼 신>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심리학이다. 저자인 말콤 지브스는 인지과학과 신경과학, 심리학, 종교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기독교인 학자다. 저자는 우리가 앞에서 제시한 의문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위해 치열하게 사고하여 '검토된 신앙'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한 질문은 더 깊은 믿음으로 가는 성경적인 길이야. 애톨 딕슨(Athol Dickson)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경험을 나눴지. '어린 시절 나는 교만한 사람만이 감히 주님께 질문할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러나 때로는 질문을 하는 것이 겸손한 일임을 배웠다. 질문 안에는 내게 답이 없고 하나님께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질문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238쪽)

부제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심리학과 신앙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취한 관점은 대단히 전략적이다. 말콤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벤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놓고, 그 인물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대화체 형식으로 글을 썼다. 이 책에서 벤이 말콤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실제적이다. 학생들이 실제로 저자에게 제기했던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때까지 연구해 왔고, 고민하면서 모아 왔던 관련 데이터를 총망라하여 질문에 답한다. 300쪽가량의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읽을거리와 참고 문헌, 주제 색인 등으로 40쪽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렇게 많은 정보를 담아내고 있지만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독자를 확실하게 정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어떤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첫머리에서 밝힌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제가 믿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요.…저는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듣고 있는데, 딱 한 번 들었는데도 신앙적으로 다소 위축된 기분이에요. (중략) 수업 교재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유전과 경험에 기인한다고 쓰여 있어요. (중략) 교재를 읽을 때면 기분이 좀 이상해져요. 목구멍이나 가슴에 무언가 걸린 것 같아요. 저의 모든 것이 유전이나 경험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자유의지 개념과 충돌하는 것 같고, 내가 그런 우연의 일치들의 조합일 뿐이라면 나는 정확히 누구'인가' 묻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신경 쓰이는 것은, 그런 생각이 완벽하게 옳은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13~14쪽)

이와 비슷한 포맷을 취하고 있는 책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 천문학자 우종학 교수가 쓴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이다. 그러나 우종학 교수의 책과는 구별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마음 뇌 영혼 신>이 심리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쓰인 책이라는 사실이다. 비전공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저자가 다루는 내용은 학문적으로 최신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전공자로서도 수차례 눈을 비비고 주목해야 할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하다. 책을 읽다가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거나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이 사실을 꼭 알아 두어야 한다. 저자가 주로 어떤 질문들을 다루고 있는지는 목차가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목차 일부를 옮겨 보면 이렇다.

'심리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마음과 뇌는 어떤 관계인가, 모든 게 뇌 안에 있나, 그러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나의 뇌에 '신 영역'이 있는가, 종교적 신앙은 21세기 민중의 아편인가, 영성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학의 설명으로 종교를 부정할 수 있는가' 등등.

어쩌면 비전공자들도 얼마든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질문들이다. 아쉽게도 역자 후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앞선 지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저자가 논의를 진행하면서 다윈주의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나의 기대는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책, 다른 이에게 기대했어야 할 일이었다. 유신진화론 입장의 학자가 자기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의 운신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것이 이 책에서 기대해야 할 내용이었던 것이다." (311쪽)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새 정보, 새로운 통찰, 새로운 문제 제기를 접하고 번역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대화체 전개 방식이나 구성만 보고 초심자용으로 쉽게 풀어 쓴 개론서라고 생각했다면 그보다 훨씬 상세하고 깊은 논의를 만나게 될 테니 각오하시라." (311쪽)

역자는 당부하는 것 같은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심리학에서도 인지과학, 신경과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하며(물론 심리학 전반에 이와 같은 내용이 깔려 있다), 관련 연구에 천착하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다. 비전공자가 읽으면 온갖 개념의 향연에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다. 그리고 역자가 지적하듯이 저자의 위치는 유신진화론에 가깝다.

"지식의 밀물은 부정확한 지식을 정리해 주는 잠재적인 도우미"

그럼에도 비전공자들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효용은 분명히 있다. 지식에 대한 태도다. 저자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간단한 한두 가지 주장으로 바꿔 버리는 언론과 일부 학자들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최근의 과학적 발견들과 복잡한 심리 현상을 하나의 요인으로 정리해 버리려는 환원주의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신 유전자'가 발견됐다거나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확정됐다는 등 호들갑을 떤다.

저자는 이런 환원주의적 경향이 심리학의 영역에서 유독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성경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신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논박하는 4장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신 유전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신중하고 세심하게 논증을 펼친다. 이렇듯 이해의 벽돌을 촘촘하게 쌓아 가는 저자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사고의 끝까지 가 보려는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어떤 성경 구절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다음 둘 중 하나를 내세우는 경우를 접하거든 바짝 경계해야 해. (1) 과학과 성경은 직접적으로 충동한다. (2) 과학이 틀렸음을 성경이 입증했다 혹은 성경이 틀렸음을 과학이 입증했다." (133쪽)

"명심해야 할 반복되는 메시지가 있어. 이데올로기적 의도에 맞추기 위해 복잡한 과학적 사안들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거야. 생각 없는 환원주의는 경우에 따라서 부담스러운 과학적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게으름의 소산이 될 수도 있다." (166쪽)

한마디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몸소 실천한 것처럼 검토하고, 또 검토한 끝에 더욱 더 견고한 신앙의 반석 위에 서면 그만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지식의 밀물'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복잡한 과학 이론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이 신앙과 과학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완전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고민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는 역할은 감당할 수 있겠다. 책 말미에 있는 저자의 마지막 충고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하지만 나는 지식의 밀물을 부정확한 구닥다리 지식을 정리해 주는 잠재적인 도우미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중략)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는 지식과 그분의 우주를 이해하는 도구인 지성을 통해 주시는 지식이 궁극적으로 충돌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 (중략) 물론 둘이 조화를 이루기까지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테고 치열하게 사고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지식의 밀물을 환영해야 마땅해. 그것에 힘입어 우리가 속한 피조 세계의 경이로움을 새롭게 통찰할 수 있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경이롭게, 멋지게 지으셨'(시 139:14, 우리말성경)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260~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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