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장로교가 전파된 지 100년이 지났다. 그동안 장로교는 분열을 거듭하며 군소 교단까지 합쳐 수백 개가 되었다. 2015년 9월, 전국 각지에서 개최된 장로교단의 총회에는 몇몇 교단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원래 한 몸이었다가 1976년 분열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과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예장고려)는 40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됐다.

반면, 충분한 대화와 소속 구성원을 설득하는 작업 없이 통합을 강행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예장대신)은 통합 후에도 두 교단으로 남았다. 통합에 반대하는 예장대신의 목사들이 교단 잔류 및 사수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귀 막은 지도부가 자초한 통합 실패

예장백석과 예장대신은 교세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단 통합을 이뤄 냈다. 예장백석 장종현 총회장과 예장대신 전광훈 총회장이 주도했다. 작년 총회 때도 두 교단 지도부는 총대들에게 통합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설득에 나섰다. (관련 기사: [백석1] 백석-대신 통합, 기립 박수 만장일치 결의)

두 교단 지도부는 통합을 기정사실화하고 모든 논의를 이어 갔다. 각 교단의 통합추진전권위원회가 통합 조건 등을 조율했다. 하지만 교단 통합을 반대하는 예장대신의 목사들은 이 과정에서 예장대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작년 총회 이후 통합에 긍정적이었던 예장대신의 임원진 중에서도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장백석이 서명한 통합 확인서가 예장대신이 제안한 것과 다르다 △두 교단의 신학 노선이 다르다 △전광훈 목사는 절차를 무시하고 통합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반대파는 예장백석이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는 것에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예장백석의 여자 목사가 어떻게 여자 목사 안수를 불허하는 예장대신의 목사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예장백석과 장종현 목사는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의 부산 개최에도 앞장섰다며 WCC와 로마 교황을 인정하는 교단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 예장대신은 통합 총회가 개최되기 1시간 전, 50회 총회를 소집했다. 예장백석과 교단 통합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통합에 반대하는 총대들은 총회 개최 3일 전, 이메일로 총대권 박탈 사실을 통보받았다. 총회가 개최되던 9월 14일, 총회 회의장 입구는 예장대신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막아서서 총대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들여보내 줬다. 예장대신 총대들과 용역들이 실랑이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장대신 내 반대파의 목소리가 거셌지만, 통합 총회는 예정대로 개최됐다. 반대하는 목사들은 총회 직전, 총대권을 박탈당하거나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광훈 총회장은 반대파의 의견을 듣지 않고 통합안을 통과시켰다.

두 교단의 통합 총회에서는 ‘한국에서 세 번째 교단’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교단 창립 후 다른 교단들과 반복되는 통합을 거치면서 5,500여개 교회로 성장한 예장백석은 또 한 번의 통합을 거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교단이 되었다.

그러나 예장백석과 통합에 반대하는 목사들은 교단에 잔류해 '대신'이라는 이름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총회 회관 매각을 놓고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가 주도권 싸움을 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 후에는 예장백석의 서울 방배동 총회 회관을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 1순위로 해야 할 일로 총회 회관 매각을 꼽은 만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매각할 것인가를 놓고 양측이 정통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 교단, 제자리 찾아 가는 것

예장고신과 예장고려도 이번 총회에서 통합을 결의하고 통합 총회를 개최했다. 여기도 작년부터 통합 이야기가 나왔다. 예장고려의 일부 원로들을 중심으로 교단 통합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전 대화를 통해 통합 조건을 맞춰 나갔다.

'고려파'로 불리는 두 교단은, 통합의 필요성에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예장고려는 2013년 교단 분열 사건을 겪으면서 교세가 많이 줄었다. 1976년, 서울 경향교회(석기현 목사)와 석원태 목사가 예장고신을 탈퇴해 예장고려를 결성했다. 총회 직영 신학교인 고려신학교도 석 목사와 경향교회가 운영을 도맡아 왔다. 2013년 석원태 목사가 불륜 의혹에 휘말리면서 그가 원로목사로 있던 경향교회는 교단을 탈퇴했다. 고려신학교도 함께였다. 교회만 탈퇴한 것이 아니라 석 목사를 따르는 몇몇 노회가 탈퇴해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고려를 창립했다. (관련 기사: 교단은 탈퇴, 신학교는 접수한 경향교회)

교단 직영 신학교를 잃은 예장고려는 새로이 신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교육부 인가 문제도 있었고, 교수 수급도 쉽지 않았다. 6개 노회로 총회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예장고신 탈퇴에 앞장섰던 석원태 목사도 없으니 통합 논의가 한결 수월했다.

예장고신은 그동안 신학적으로 노선이 같다면, 얼마든지 타 교단과 연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예장합신)과도 통합을 논의하다 작년 총회 때 교류만 이어 가기로 방침을 바꿨다. (관련 기사: [고신4] 예장합신과 합치기보다 교류에 집중)

예장고신은 예장고려와 통합을 성사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배려했다. 1976년, 교단 분열 당시 문제됐던 '신자 간 사회 법정 소송 가결안'을 포기했다. 예장고려의 노회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에 행정 개편을 통해 예장고신의 지방 노회로 편입할 예정이다. 과거 예장고려 소속 고려신학교 출신 목사들은 예장고신 소속 고려신학대학원 목사들과 같은 기수로 병합한다. (관련 기사: 예장고신-예장고려, 40년 만에 다시 한 교단)

예장고신 교단 관계자는, 세를 불리기 위한 통합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번 통합으로 누군가 이득을 보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 계산된 통합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고 했다. 교단 신학의 뿌리인 고 한상동 목사가 세운 고려신학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단들이 연합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통합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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