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를 출간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주민을 섬기는 교회 10곳을 취재했습니다. 책을 많이 구입해 읽어 주시면 좋겠지만, 이런 교회들은 더 널리 알리는 게 좋겠다 싶어 매주 한 교회씩 홈페이지에도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읽어 주시고 주변에도 퍼뜨려 주세요.
- 편집자 주

■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 소개글
■ 김종희 대표의 머리글

■ 책 구입 바로 가기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수지, 판교로 이어지는 아파트 촌 일대에 동떨어진 섬 같은 교회가 하나 있다. 고기교회(안홍택 목사)는 교회가 위치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에서는 여느 교회와 달리 지붕 높이 솟은 십자가나 커다란 머릿돌, 화려한 간판을 찾아볼 수 없다. 문패가 있긴 하지만 50cm 정도 길이의 나무판에 이름을 새긴 것이 전부다. 그나마 가까이 다가가야 뚜렷하게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도로변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텐데, 교회를 알리는 간판 하나 없는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하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부인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굳이 큰 길에 안내 간판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교회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게 해 준 마을에 감사

교인이 1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교회. 안홍택 담임목사는 지역을 섬기는 데는 오히려 작은 교회가 더 유리하다고 한다. 교회 크기가 작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고, 그런 겸손함 덕분에 마을에서 교회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단체나 학교에서 교회로 찾아와 먼저 손을 내민다. 심지어 가톨릭·불교 신자, 무신론자, 다른 교회 교인들도 모두 고기교회의 친구다. 교회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교회가 있기 전부터 마을이 있었어요. 지역이 먼저 있었는데 교회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것이죠. 교회는 가진 것을 조심스럽게 마을과 나누는 거예요. 우리로서는 감사한 일이죠. 나눌 수 있게 우리를 받아 주니까요.

요즘 교회 건물들을 보면 너무 거만한 것 같아요. 주변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를 막 지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까 무조건 들으라'고 고압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예수님은 낮아져서 무릎을 꿇고 섬기셨는데, 반대로 가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요."

자연에 스며들어 지역과 소통하고 아낌없이 나누는 고기교회. 이 지역에서는 고기교회와 마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교회가 언제나 마을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안홍택 목사는 교회가 게토처럼 고립되지 않고 끊임없이 지역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때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교회 문을 완전히 개방하면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서 썩지 않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한 다. 이것이 고기교회가 지향하는 지역 섬김 사역이다.

단순한 신앙생활에서 맛보는 풍성한 은혜

고기교회에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 훈련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안홍택 목사의 목회 원칙은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일대일 제자 양육, 전도 폭발 세미나, 알파코스 등의 교인 훈련 프로그램이 없다. 오직 예배만 있다.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회가 전부다. 오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안 목사가 20여 년 동안 고수한 방식이다. 그는 한국교회에 넘쳐나는 프로그램을 경계한다.

"교인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개별적인 개입을 느끼거나 하나님과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에서 프로그램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니까 신앙이 아니라 인위적인 종교성이 생기는 것이죠. 한국교회가 프로그램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하지 않기로 정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밤토실'과 함께 자라나는 고기동 아이들의 꿈

고기교회가 진행하는 다양한 지역 섬김 사역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 도서관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안홍택 목사가 어린이 도서관을 시작한 건 순전히 지역의 필요 때문이었다. 이웃 주민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안 목사의 눈에 들어왔는데, 그건 바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는 고기동에 아이들이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 것에 주목했다. 이곳은 시내로 나가는 차편이 적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구 하나를 살 때도 반나절 이상을 이동에만 할애해야 한다. 안 목사는 그런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절대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고기초등학교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어 가며 교회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지역 주민들과 논의한 끝에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다. 안 목사가 2년 동안 직접 책 분류, 공간 배치 등 도서관 운영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좋은 도서관으로 선정된 곳을 탐방해서 고기동에 적합한 도서관의 모습을 그려 갔다.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는 참나뭇과 식물이 많은데, 특히 고기동에는 밤나무가 많다. 그래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도 가을만 되면 밤을 주우러 온다. 어린이 도서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도서관 이름을 떠올렸다. 동요 '산토끼'에 나오는 '토실토실 밤토실'의 밤토실이 이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밤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토실토실 밤토실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도 살릴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 투실투실 살이 찐다. 그러나 건강한 아이들은 토실토실하게 알토란같이 자란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건강하고 귀엽게 커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밤토실'은 고기교회 예배당 옆에 위치했다. 담임목사 사택으로 쓰던 공간이었는데 보수, 수리를 거쳐 근사한 어린이 도서관이 되었다. 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활동하던 지인이 어린이 도서 300권을 증정하면서 시작했다. 양질의 정보를 담은 책을 선별해서 공공 도서관 분류 방법에 맞춰 배치했다. 교회가 운영한다고 전문성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5년 현재, 밤토실이 소장한 책만 1만 권이 넘는다. 전집과 낡고 헌책은 피하고, 최대한 양질의 책을 비치했다. 도서관 도우미가 교대로 돌아가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운영한다. 전체 도우미 10명 중 3명이 고기교회 교인이다.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게 디자인된 어린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책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놀기도 한다. 그러다 지치면 책을 읽는다. 또, 도서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읽은 책으로 인형극 놀이를 하거나 책에 나온 곳을 여행한다. 도서관에서는 '밤토실 백일장'이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글짓기 대회도 연다.

도서관에 관련된 모든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http://cafe.naver.com/bamtosilibrary)에서 볼 수 있다. 공지 사항과 교육 및 강좌를 안내하면 지역 주민들은 댓글로 수강 신청을 한다. 2014년 겨울 방학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그림책으로 세상 보기' 수업을 진행했다. 그림책을 보면서 문화 다양성, 인권, 평화, 환경, 국제 협력 다섯 가지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참가비는 5회에 5,000원이다. 재료비 2,000원만 받고 '동화 속 인형 만들기'를 하는 수업도 있고, 방학 중에는 매주 목요일을 '영화 보는 날'로 정해 지역 어린이들을 초대하는 행사도 연다.

어린이 도서관이라고 어린이들만 이용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학부모들도 '글쎄다'라는 어른 문학 동아리를 만들어 책 모임을 한다. 자녀와 도서관을 찾은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교제하고, 자발적으로 동아리도 만든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다채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인 셈이다.

고기교회는 도서관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임대료, 전기료, 전화비 등의 비용을 전부 감당한다. 도서관의 모든 행사는 동네의 도서관 도우미와 봉사자들이 주도해서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도서관 앞에 교회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교회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어린이 도서관을 애정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도서관이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헌장에서는 아무 때나, 아무 조건 없이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스스로 얻어 가는 곳을 도서관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밤토실' 도서관은 모두에게 개방된 곳, 차별이 없는 공간이죠. 도서관만큼은 빈부의 차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누구나 이곳에 모여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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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찾는 교회

지금 고기교회 근처에는 큰 식당이나 카페가 여럿 있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도 어디 가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그냥…가게'다. '그냥…가게'는 말 그대로 그냥 와서 앉아 있다가 차 한잔 마시고 갈 수 있는 가게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만 운영하는데 이곳에서는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다.

안 목사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되 대가를 지불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두 자본 가치에만 집착하는 시대에 마음을 주고받는 자리가 지역에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냥...가게'에서 값없이 거저 받는 하나님 은혜의 원리를 살리고 싶었다.

찻집이 '그냥...가게'의 전부는 아니다. '그냥...가게'는 생필품을 기증받아 서로 나누기도 한다. 이곳을 방문한 주민들은 옷이나 생필품을 서로 교환하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입던 옷이라 해도 비교적 깨끗한 옷만 기부받는다.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공간에 대한 애정 표현인 셈이다. 이곳의 수입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고기교회에는 그동안 다양한 동아리가 필요에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곤 했다. 가야금, 기타, 사물놀이, 요가, 등산, 강령탈춤을 비롯해서 인형 극단, 천연 염색, 목공반 등 종류도 많았다. 하지만 근래 많은 교회에서 여는 문화 교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기교회 동아리는 강사의 재능 기부로 운영된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모이는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도 교인보다 는 마을 사람들이 더 많다.

일례로 목공방 '래'는 안홍택 목사가 직접 가르친다. 전통적인 장부 맞춤 방식의 목공 기술을 전수한다. 재료는 원목을 쓰는데 참가자는 재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방을 개방하고, 공방은 참가자들의 회비로 운영한다.

2015년 5월부터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공공의 장터, 공장'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교회 마당에 장터를 연다. 손으로 만든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 수 있다. 빵, 쿠키, 천연 반찬 등 음식 종류부터 손으로 직접 만든 향초, 가죽 액세서리, 비즈 공예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이 장터는 5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첫 번째 토요일에 고기교회 마당에서 열리고 있다. 장터에는 고기교회 교인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급자족, 마을 경제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표어에 동의하는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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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지역 어린이들의 자연 놀이터

고기교회의 전체 부지 2,000평 중에 예배당(18평), 큰 방(식당으로 사용, 20평), 밤토실도서관(40평), 작은 방(교회학교 모임 공간, 8평), 사무실(6평)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연이다.

예배당 뒤편 습지에서는 올챙이, 가재, 반딧불이, 도롱뇽 등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왜가리와 청둥오리, 백로 등도 찾아온다. 교회는 이런 자연 공간을 어린이들에게 개방해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역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저 와서 즐기고 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회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달 2번씩 예배당 뒤쪽 녹지에 '처음자리'라는 생태 교실을 연다. 강사는 농촌에서 나고 자란 권사님이다. 교회 습지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설명하고 배우는 시간이다. 1회 진행할 때마다 지역 아이들 15명을 모집한다. 동네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생태 교실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린이들은 도심에서 잘 볼 수 없는 자연을 접하면서 생태 환경의 소중함을 배운다. 작은 논을 만들어 모심기부터 시작해 추수까지 쌀농사를 체험하기도 한다. 겨울에는 얼음 썰매장을 운영하는데, 재래식 나무 썰매를 직접 만드는 시간도 있다.

주변에선 예배당을 크게 증축하거나 남은 땅을 개발하라고 하지만 안 목사는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그는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교회 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일부러 하나도 바꾸지 않았어요. 바꾸지 않았다기보다는 지켰다는 말이 맞습니다. 교회 마당에 있는 돌담이나 우물은 제가 처음 왔을 때 모습 그대로입니다. 개발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마당에 앉아 있으면 사계절이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요, 작은 일이지만 거기에서도 창조 질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녹색 나뭇잎이 무성하다가도 찬바람이 불면 하나씩 떨어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녹색의 풍성함만 동경하며 성장만 바라면 오히려 열매가 없는 거죠. 성장을 향한 집착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어디를 보더라도 다 성장을 향한 열망만 있습니다."

인근 주민과의 호흡, 섬김 사역의 밑거름

고기교회는 약 80여 명의 교인이 다니고 있다. 그중 지역 주민이 45%, 외지에서 온 사람이 55%다. 교회가 바람직한 사역 모델로 알려지다 보니, 고기교회를 찾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평일에 교회를 찾는 이들 은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 주민들은 교회를 마치 사랑방처럼 드나든다.

교회가 고기동에 자리 잡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현재는 마을 위쪽으로 도로가 생겨서 지역과 왕래가 쉬워졌지만, 25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외부로 나가는 길은 단 하나였고, 하루 동안 다니는 버스는 세 대 뿐이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이미지 때문인지, 1990년 안홍택 목사가 고기교회에 청빙 받았을 때는 교회와 지역 주민 사이에 별다른 소통이 없었다.

고기교회와 지역 주민의 관계는 1995년 서울남부저유소 건설을 기점으로 변했다. 정부는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성남시에 서울남부저유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지역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전 녹지가 있던 곳 30만 평에 송유관을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강행했다. 성남 지역 시민 단체와 주민들이 반대 운동에 나섰는데, 6개월 정도 후에 안홍택 목사도 동 참했다.

저유소 건설 반대 운동은 2년 반 동안 이어졌다. 레미콘이 마을에 들어서면 안 목사가 동네 할머니들과 같이 도로를 막아섰다. 새벽 예배를 마치면 승용차를 끌고 건설 현장에 들어가 덤프트럭을 막는 일도 다반사였다. 레미콘을 막기 위해 한겨울에 할머니들과 함께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인부들이 호스로 물을 뿌려 온 몸 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어야 했다.

▲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 / 뉴스앤조이 편집국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192쪽 / 8,000원

안 목사가 자칫 과격한 투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저유소 건설 반대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싸움에 지친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운동의 선두에 안 목사가 있게 됐다.

사실 안홍택 목사와 주민들의 투쟁은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립이 길어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공사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유소 건설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설계도에서 미흡했던 안전장치를 보완하는 데 합의했다. 다행히 기름이 새거나 냄새가 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랜 투쟁 후, 동고동락한 안 목사를 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자 동네 사람들이 교회와 안 목사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그때부터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웃 주민들은 지역 현안을 상의하기 위해 안 목사를 찾는다. 한 번 쌓인 신뢰가 지역 섬김 사역을 펼치는데 소중한 마중물이 된 것이다.

신뢰가 쌓이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게 쌓인 신뢰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고기교회는 앞으로도 그렇게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소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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