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함에 따라, 그동안 동성 결혼을 허락하지 않던 보수적인 남부에서도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게 됐다. 켄터키 주도 그중 하나다. 켄터키 주 로언카운티(Rowan County)는 인구 2만 3,000여 명이 사는 조그만 동네다.

이 작은 도시가 현재 미국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신분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등기소의 직원 킴 데이비스(Kim Davis) 때문이다. 킴 데이비스는 등기소 서기로 관내에서 결혼한 커플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업무를 담당한다.

문제는 이 지역에 살던 데이빗 무어(David Moore)와 데이빗 어몰드(David Ermold)가 등기소를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17년을 함께한 동성 커플이다. 그동안 비혼 관계였던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켄터키 주에서도 동성 결혼이 가능해지자 결혼 관계를 증명받기 위해 등기소를 찾았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데이비스는 4년 전, 개신교로 개종하고 독실하게 신앙생활하던 중이었다.

17년의 관계를 이제야 인정받나 싶었던 두 데이빗은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동성 커플들과 함께 소를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에서 결정한 것을 지역 등기소 직원이 이행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개인의 신념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우선하는 것은 미국 국내법 체계에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 킴 데이비스(맨 오른쪽)는 관내에서 결혼한 커플에게 증명서를 발급하는 일을 하는 등기소 서기다. 그는 최근 동성 커플에게 결혼 증서를 발급하지 않아 고소당했다. 연방대법원은 공직자로서 공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데이비스는 또 한 번 불복종하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 (<인디펜던트> 기사 갈무리)

동성 결혼을 반대하던 보수 개신교인들은 데이비스의 편을 들었다. 데이비스도 리버티카운셀이라는 기독교 변호인 그룹과 함께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이 적법하다고 했다.

8월 31일, 연방대법원은 데이비스가 아닌 동성 커플들의 손을 들어 줬다. 데이비스가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튿날,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들은 데이빗 부부는 다시 등기소를 찾았다. 등기소에는 이미 데이비스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간의 공방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결혼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찼던 데이빗 부부는 다시 한 번 절망해야 했다. 데이비스가 또 한 번 증명서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성애자만 차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동성애자·이성애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커플의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데이비스와 데이빗 커플이 대치하는 장면은 방송국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화가 난 데이빗 커플과 지지자들은 데이비스를 향해 "당신의 일을 하라(Do your job)"고 소리쳤다. 연방대법원이 명령한 내용을 누구의 권리로 이행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데이비스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라고 답했다.

킴 데이비스는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성 커플에게 결혼 증서를 발급하는 것은,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위반하는 것으로 지옥에 갈까 겁이 났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일부 언론은 그녀의 과거를 폭로하며 이중적인 모습을 문제 삼았다. <US뉴스>는 데이비스가 세 번의 이혼 경력이 있다고 했다. 자신은 세 번이나 이혼하고 네 번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람들이 결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위선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또 이런 행동이 일부 기독교인들이 보여 주는, 선택적으로 성경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데이빗 부부의 소송을 도왔던 헤더 위버(Heather Weaver) 변호사는, 개인의 신념은 존중하지만 공직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데이비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직에 있으면서 남에게도 같은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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