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분립합시다. 남 목사님이 맡아 주세요." 아닌 척했지만 무척 당황했다. 담임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뭐라고 답해야 하는데 갑자기 목이 막혔다. 컵을 집어 들었다. 물이 없었다.

3년 전 어느 날이다. 당시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이었던 나는 회의 차 여러 목사님과 함께 광화문에 있었다. 그 자리에는 지금 내가 섬기는 일산은혜교회의 담임목사님도 계셨다. 마치고 일어서는데, 시간 괜찮으면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았다. 잠깐의 한담이 오간 뒤, 묵직한 질문이 죽비처럼 떨어졌다. "남 목사님, 당신은 누구입니까?"

흠칫 놀란 것을 눈치 채셨는지, 잠시 멈췄다 말씀을 이으셨다. "남 목사님은 신학교 교수로, NGO 사무국장으로, 지역 교회 청년부 목사로 다양한 사역을 해 오셨는데, 과연 평생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많이 고민했던 문제였기에 즉시 답할 수 있었다. "저는 지역 교회 목사가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되받아치셨다. "그럼 교회를 개척합시다. 3년 뒤 일산은혜교회를 분립합시다. 남 목사님이 맡아 주세요."

개척을 하라고? 찰나의 시간에 수많은 상념이 휘감기더니, 유년의 기억에 멈췄다. 때는 1982년 9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돌연 교회를 개척했다. 부천 북부역 광장 앞 경양식 집 사장님이 갑자기 중동 주공아파트 앞 개척교회 전도사님이 된 것이다. 개척교회를 세우신 후 부모님은 돈 때문에 자주 싸웠다. 전 재산을 털어 교회를 시작했는데 교인이 거의 없어서 살림이 매우 쪼들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가서 일하겠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어디 사모가 세상 일을 하느냐"며 안 된다고 호통치셨다. 그때마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벌벌 떨며 꿈 없는 잠을 잤다.

개척교회 주일 예배의 흔한 일상은 이랬다. 아버지는 사회 보고 설교를 했고, 어머니는 대표 기도를 했다. 헌금 시간이 되면 우리 남매는 몇 되지도 않는 교인들 앞에 바구니를 디밀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꼴이 거지 같다고, 지하철 앵벌이 같다고. 왜냐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헌금을 해 줘야 우리 집이 일주일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안 싸우시려면 이분들이 헌금을 많이 해 줘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헌금 바구니만 보면 그 시린 기억이 기어올라 뒷목이 시큰하다. 그렇게 나에게 교회 개척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빈 물잔을 내려놓고, 커피 잔을 들었다. 쌉쌀하고 시큼한 아메리카노가 흘러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말씀드렸다. "네. 목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수락했을까? 담임목사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부목사 마인드가 작동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싫지만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지난 설날, 부모님께 신년 인사를 다녀왔다. 주공아파트 앞 개척교회 전도사였던 아버지는 어느덧 은퇴목사가 되었고, 개척교회 힘들어서 나가서 일하겠다던 어머니는 암으로 고생하는 할머니가 되어 나란히 앉아 계셨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벌써 40대 중반의 목사가 되었고, 내 품에 안겨 잠들던 동생은 서울역 앞 옷 가게 주인 아줌마가 되어 남편이랑 아이들과 함께 와 절했다. 세배를 마치고 아버지께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개척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는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그 고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본인이 세우신 교회를 아들이 이어가길 바라셨는데, 그걸 박차고 떠난 아들이 돌아와 개척하겠다고 하니 상심이 크셨던 것이다. "그러길래 내 말 듣지…." 아버지 눈가가 붉어졌다.

"아빠, 개척해? 그럼 우리 교회 또 떠나? 그럼 친구들하고 또 헤어져야 해? 개척 안 하면 안 돼? 개척은 왜 해?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세배드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래의 헌금위원들이 내게 물었다. 나는 답해야 했다. 왜 개척해야 하는가? 왜 교회를 분립해야 하는가? 분립 개척의 목적은 무엇인가? 네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는 선교적 목적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영혼을 구원하는 어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배가 필요하다. 배가 있어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교회가 있어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복음의 선박을 건조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려면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둘째는 전략적 목적이다. 교회는 복음의 씨앗을 세상에 뿌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씨앗이 잘 자라지 않는다. 왜냐면 토양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교회에서는 직접 파종해도 구원의 수확을 얻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바뀌었다. 전도의 환경이 달라졌다. 이제는 할 수 있으면 모종을 심는 게 낫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출발하는 게 더 좋다. 목사 개인을 통한 개척 모델이 실패하는 현실에서, 교회 분립을 통한 개척 모델을 대안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개교회적 목적이다. 자기 교회를 위하여 교회를 분립해야 한다. 교회는 그 속성상 성장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전도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모이면 교인 수는 증가하기 나름이다. 그러면 반드시 수반하는 부작용은 교회의 세속화와 교제의 붕괴다. 사람과 돈이 모이면 권력이 생기고 이로 인해 교회는 부패한다. 교인의 증가와 친밀한 코이노니아의 가능성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교회 분립이다.

넷째는 공교회적 목적이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교회를 분립 개척해야 한다. 개척이 힘들다고 지금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갈 교회는 없게 된다. 더욱이 거짓 목사, 가짜 교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바라는 올바른 신앙을 지켜 가는 남은 자들의 교회는 더욱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 당신이 건강한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그 교회는 당신이 세운 교회가 아닐 수 있다. 누군가 눈물 흘리며 헌신했기에 당신은 건강한 교회에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세대가 심은 사과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면, 이제는 미래 세대를 위해 새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일산은혜교회는 내년 3월 분립 개척할 예정이다. 지금 준비가 한창이다. 그 여정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한국교회에 유익하리라 생각하여 연재하고자 한다.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향하다가 하란에 멈춰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떠나… 가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2) 사마리아 선교에 성공하고 앉아 있는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 8:26) 광야로 가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분립 개척, 그것은 운명이다. 우리 교회의, 그리고 한국교회의 운명이다.

남오성 / 일산은혜교회 목사,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