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박 아무개 수석장로. 14년간 재정을 관리해 온 그는 세 장의 유서를 남겼다. 하나는 가족에게, 나머지는 김삼환 목사와 장로 3명에게 썼다. 박 장로는 유서에서 "횡령이나 유용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목사님, 사모님, 횡령이나 유용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사죄합니다.")
초대형 교회 수석장로가 세상을 등지자 갖은 의혹들이 피어올랐다. 그중에는 박 장로가 김삼환 목사의 1,000억대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명성교회 전 교인 윤재석 씨와 <예장뉴스> 편집인 유재무 목사는, 김 목사가 비자금으로 해외에 부동산 투기를 하고, 목회자 등을 상대로 사채업도 하고, 각국 정상들을 만나 돈을 건넸다고 보도·광고했다. (관련 기사 : 김삼환 목사 비자금 의혹 제기한 명성교회 전 교인 기소)
명성교회는, 박 장로가 비자금이 아닌 교회 '적립금'을 관리했으며 액수는 800억 원이라고 해명했다. 김삼환 목사는 대리인 장로들을 통해 윤 씨와 유 목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8월 26일 동부지방법원에서 윤 씨와 유 목사의 2차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 신분으로 윤 씨와 유 목사가 참석한 가운데 명성교회 부목사와 장로들도 공판을 지켜봤다. 김삼환 목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피고인 측은 유서에 등장한 명성교회 장로 3명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이날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이 아무개 장로가 출석했다.
검사의 신문으로 공판은 시작됐다. 검사는 △김삼환 목사가 각국 정상을 만나 돈을 건넸는지 △교회가 목회자 등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는지 △김 목사가 해외 부동산을 취득한 사실이 있는지 △특별 새벽 기도회 헌금 관리 및 사용처 등을 물었다.
이 장로는, 그동안 김 목사가 외국 정상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돈을 건넸는지는 모르며, 개척하는 부목사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상황에 따라 빌려준 적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재정 지출은 당회 협의 하에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또 김삼환 목사는 해외 부동산을 취득한 사실이 없고, 특별 새벽 기도회 헌금 액수와 사용처는 교인들에게 전부 공개한다고 답했다.
박 장로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공개한 이유도 밝혔다. 이 장로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교인들에게는 자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검사 신문은 30분도 안 돼 끝났다.
피고 측 변호인은 재정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던졌다. 신문 과정에서 교회 측이 밝힌 이월금(적립금) 800억 원에 대한 새로운 내용도 드러났다. 앞서 CBS 보도에 따르면, 명성교회는 박 장로가 관리한 적립금은 '공개적'으로 적립한 돈이며, 각 부서에서 결산할 때 10%씩 적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 명성교회 수석장로 자살…'비자금' 때문?)
이 장로는 이월금을 공개적으로 적립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월금의 존재를 아는 구성원은 김삼환 목사와 5~10명의 장로뿐이라고 했다. 현재 명성교회 장로는 80명이다.
이 장로에 따르면, 명성교회 재정은 '본 재정'과 '이월금'으로 나뉘어 있다. 2013년 1월부터 박 장로가 이월금을 관리했다. 그러나 교회는 제직회나 공동의회에서 이월금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 즉, 일반 교인들은 이월금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이야기다. "왜 이월금을 공개하지 않았느냐"는 변호인의 물음에, 이 장로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변호인이 관련 질문을 계속하자, 이 장로는 "기소도 안 된 내용을 왜 묻는지 모르겠다", "답변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방청객은 "헌금이 바르게 쓰여야 교회가 은혜롭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월금의 용도는 통일·선교였고, 적금 형식으로 관리해 왔다고 이 장로는 말했다. 하지만 일부는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장로는 건축하고 부지를 사는 데 이월금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울 문정동 법조타운 부지 매입, 하남 새노래명성교회 건축, 구 예배당 리모델링 등에 썼다는 것이다. 이 장로는 "남은 돈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명성교회는 1997년 10월 당시 금란교회 곽 아무개 장로에게 이월금 중 30억 원을 빌려줬다. 연 이율은 15.6%에 달했다. 김홍도 목사가 보증인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이자만 해도 4억 6,800만 원이나 되는 고액의 이자가 어디로 갔느냐"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장로는 "이월금 재정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 장로는 "과거 김홍도 목사와 김삼환 목사가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지만, 곽 장로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숨진 박 장로가 부탁한 자료 '폐기'
앞서 박 장로가 장로 3명 앞으로 남긴 유서에는 "저의 차 트렁크에 자료가 다 들어있으니, 힘드시겠지만 하나하나 정리해 주세요. 자료가 일부 분실되어서 불편하시겠지만… (절대 횡령이나 유용하지 않았습니다.)"이라고 나와 있다.
박 장로의 죽음과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일 수도 있는데, 정작 명성교회는 이 자료를 '폐기'했다. 변호인이 폐기한 이유를 묻자, 이 장로는 "보니까 먼지가 뽀얗게 쌓인 4~5년 전 재정 자료였다. 대부분 사본이었고, 교회 각 부서마다 원본이 있어서 (폐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판은 2시간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기자는 이 장로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월금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 장로는 외부 시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돈 쌓는데 열심이라는 비난과 여기저기서 돈 빌려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것을 염려해 공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공개했다면 '비자금 논란'에 휘말릴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는 말에, 이 장로는 "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월금이 얼마 남았냐고 묻자 "몇 분의 일도 안 남았다"면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수백억이 넘는 헌금을 박 장로가 관리했고, 박 장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내던졌다. 교회는 자체 조사 결과 "재정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수습했다. 이 장로도 박 장로가 왜 죽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공판은 10월 21일 수요일 오후 4시 30분에 열린다. 박 장로가 유서를 남긴 장로 중 나머지 2명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