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8월 25일 저녁, 안산시기독교연합회(안기연·이수부 회장)의 '안산시 복음화 대성회'가 열리는 안산제일교회(고훈 목사) 앞에 피켓을 든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희생자·미수습자 가족들과 장로회신학대학교 '하나님의선교' 소속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은 채 미수습자 9명의 이름과 조속하고 온전한 선체 인양을 요구하는 내용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섰다.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하자는 취지의 집회였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집회에 초청받지 못했다. 집회 전, 교회 인근 곳곳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교회 앞에 서 있어도 관심 받거나 환영받지 못했다. (관련 기사: 안산 찾은 김삼환 목사, "슬플수록 찬송 많이 불러야") 집회의 강사로 초청된 사람들이 작년 세월호 참사 때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오정현·김삼환 목사라는 점도 문제였다. 안산에 온 두 목사는 교회 앞에 서 있던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지 않았다.

셋째 날 강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였다. 오정현·김삼환 목사와 달리 이 목사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났다. 집회 시작 전 이 목사는 고 허다윤 양의 부모인 허흥환·박은미 씨와 조은화 양의 부모인 조남성·이금희 씨를 별도로 만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했다. 두 부부 모두 교회를 다니는 집사다.

▲ 집회 시작 전, 이영훈 목사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났다. 가족들은 손편지를 전달하고, 선체 인양을 하고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 함께해 달라고 했다. (사진 제공 굿피플 김정현 주임)

이 자리에서 가족들은 이영훈 목사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전달하고, '실종자 가족' 대신 '미수습자 가족'라는 표현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 목사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제일 힘든 상황에 있는 걸 안다며 가족들의 바람을 놓고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집회 시작 후, 강단에 오른 이영훈 목사는 설교 중간중간 세월호 미수습자 얘기를 했다. 그는 교인들을 향해 사망 여부도 확인하지 못해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 사람들이라며 미수습자 가족 얘기를 꺼냈다. 순간 교인들이 술렁였다. 짧은 탄식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듣는다는 듯 놀라는 교인도 있었다. 이어서 이 목사는 가족들을 만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오늘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세월호 가족 중 아직 모습을 찾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마무리되면 전국을 다니며 우리처럼 고난 당한 사람들을 품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미수습자 가족들은)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정부가 뭐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이웃들이 뭐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말해도 우리가 답할 말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가족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고난당한 사람들을 품는 일을 감당하기 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 이영훈 목사는 설교 중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얘기를 꺼냈다. 이 목사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혜택도, 지원도 못 받는다"고만 하고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거나 선체 인양을 해야 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신앙은 교인 모두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앞선 두 목사와 상반된 모습, 대형 교회 목회자로서는 생소한 모습에 놀란 건 미수습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이영훈 목사가 자신들을 만나 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목사가 미수습자 가족들을 언급해 주고, 가족이 제일 아픈 사람이라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또 가족들의 원하는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100마리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심정이라는 박은미 씨는 목사와 교인들이 관심 가져 주고, 함께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이영훈 목사를 만나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고 했다.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도 이영훈 목사를 만난 소감을 전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대부분 두루뭉술하게 얘기해요. 항상 양측의 입장을 신경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영훈 목사님이 '미수습자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그 마음을 우리는 모른다. 9명이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그 자리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얘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말 많던 안산시 복음화 대성회는 끝이 났다. 대형 교회 목사 한 명이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교인들에게 관심을 부탁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직도 더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잊지 않고 함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가족들은 심적으로 외롭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는 혈압이 250까지 치솟아 약을 먹어야 하고, 박은미 씨도 사고 후 지병이 악화 돼 투병 중이다. 그러나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무관심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얘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날로 지쳐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특별히 종교계에서 관심과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교계가 나서서 가족들과 함께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옆에서 편하게 이야기 들어 주고, 곁에 있어 줄 사람만 있어도 좋겠어요. 꼭 말씀을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만 주고, '괜찮아요. 아픈 거 알아요'라고 하면서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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