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를 출간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주민을 섬기는 교회 10곳을 취재했습니다. 책을 많이 구입해 읽어 주시면 좋겠지만, 이런 교회들은 더 널리 알리는 게 좋겠다 싶어 매주 한 교회씩 홈페이지에도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읽어 주시고 주변에도 퍼뜨려 주세요.
- 편집자 주

■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 소개글
■ 김종희 대표의 머리글

■ 책 구입 바로 가기

꿈이있는교회(김제언 목사)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1동에 있다. 시화 공단, 반월 공단, 남동 공단이 지척이다. 이곳에는 이주 노동자가 많이 산다. 정왕1동 바로 옆에 있는 정왕본동은 거주자의 70%가 외국인이다. 김제언 목사는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80%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 주변을 돌아다녀 보면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한자로 된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홀로 한국 땅을 밟은 사람이 대부분이라 집도 원룸 다세대 주택이 90% 이상이다. 이 지역은 특이하게 보증금도, 부동산 중개료도 없다. 월세만 내면 되니 사람들이 뜨내기처럼 떠돌아다닌다. 정주 기간이 짧게는 3개월, 길어 봤자 1~2년이다. 청소도 하지 않은 채 3~4개월 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는 경우도 많다. 정주 의식이나 주민 의식이 없어 마을에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이곳에는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독거노인, 조손 가정, 한 부모 가정도 몰려 있다. 노인들은 정부에서 월 40만 원을 지원받아, 월세로 30만 원을 내고 나머지 1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매 끼니 밥을 챙겨 먹기도 벅찬 형편이라 아프기라도 하면 방법이 없다. 유흥 주점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도 많고, 대낮부터 술에 절어 있는 노숙인도 많다. 동네에서 한 달에 한 명꼴로 자살자가 나온다. 못사는 사람이 많은, 우울한 회색빛의 도시다.

꿈이있는교회는 이런 곳에 2009년 말부터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다. 출석 교인이 100명 남짓한 작은 교회지만, 꿈이있는교회가 정왕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주변 대형 교회들보다 더 크다. 이제부터 김제언 목사와 꿈이있는교회가 어떻게 지역을 변화시켜 가는지 알아보자. 

▲ 시흥 꿈이있는교회 전경. 꿈이있는교회는 지역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성장' 아닌 '부흥' 꿈꾸는 교회

꿈이있는교회의 비전은 '부흥'이다. 김제언 목사는 '부흥'과 '성장'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성장은 양적인 현상으로, 교인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부흥은 숫자가 아니라 신앙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교인 한 명 한 명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곧 부흥이다. 꿈이있는교회는 자기 교회만의 부흥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지역 교회 전체의 부흥을 꿈꾼다.

김제언 목사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도 부흥과 성장을 혼동하며 그저 성장만을 좇는 목사였다. 그러나 인생의 비극이 그의 목회관과 인생관을 바꿨다.

김 목사가 처음 정왕동에서 목회를 시작한 건 1996년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상가 일부를 얻어 교회를 개척했다. 지금 교회와는 이름도 위치도 달랐다. 시화 신도시가 형성될 당시였고 아파트 상가에 있어서 그런지 교회는 날로 성장했다. 많을 때는 장년 130명이 예배에 참석했다. 상가 귀퉁이에서 시작한 교회는 계속해서 예배당을 넓혔다.

그러나 근처에 대형 교회가 들어선 후 교세가 하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 김 목사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 장애를 입었다. 아들은 가슴 아래가 모두 마비된 상태로 6년을 투병하다가, 결국 2008년에 천국으로 갔다.

김제언 목사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성장만 좇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의미 있는 사역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2009년 말, 지역의 다른 교회와 통합하면서 지금의 꿈이있는교회가 되었다. 그때부터 김제언 목사의 제2의 목회가 시작됐다.

무료 급식부터 다문화 돌잔치까지

김제언 목사는 할 일 없이 방치되는 노인들을 돕고자 2010년부터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사역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희망시흥'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지만, 동업했던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2012년 '참사랑참생명'이라는 법인을 새로 만들었다. 꿈이있는교회 교인들은 법인을 후원하거나 직접 봉사자로 참여한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점점 커졌다. 참사랑참생명은 3년 된 법인치고는 제법 많은 일을 한다. 사역의 수도 그렇지만 내용도 실하다.

참사랑참생명의 사역은 크게 6가지로 나뉜다. 먼저, 매주 화요일 꿈이있는교회 예배당에서 '무료 급식'을 한다. 수년째 하다 보니 체계가 제대로 잡혔다. 적십자미미봉사단·한마음누리봉사단·미소신협 등 자원봉사 단체와 개인 봉사자들이 주마다 돌아가면서 일한다. 매주 노인과 노숙인 200여 명이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다.

어르신들을 위해 '시민학교'도 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당에서 노래 교실, 한글 교실, 댄스 교실이 열린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60~70명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래 교실을 수강하고, 오후에는 10여 명이 한글을 배운다. 수요일 오전에는 20여 명의 어르신이 댄스 교실에 참여한다. 한국 사람이 많지만, 중국 동포도 적지 않다.

다른 단체와 연계하는 '연합 봉사'도 있다. 시흥 센트럴병원은 교회와 협약을 맺고 꿈이있는교회에서 추천하는 환자들에게 백내장·녹내장 수술을 무료로 해 준다. 수술비는 병원과 참사랑참생명이 반씩 부담한다. 또,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꿈이있는교회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도 한다. 교인이든 비교인이든 꿈이있는교회를 통해 오는 환자들은 치료비의 10%를 할인해 준다. 리안헤 어 시화로데오점은 매월 한 번씩 이·미용 봉사를 한다. 북경대반점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짜장면을 대접한다. 짜장면은 아주 인기라서 많을 때는 700명이 몰리기도 했다.

참사랑참생명 다문화지원국은 매년 10월 첫째 주일, 예배당 옆 군서공원에서 '다문화 돌잔치'를 연다. 공단 이주 노동자와 중국 동포,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대상이다. 시흥시 평생교육실천협의회, 시흥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연계해서 모든 비용이 무료다. 2013년에는 11가정이, 2014년에는 14가정이 참여했다. 아기들의 생일 축하 행사와 선물은 물론이고 식사와 사진 촬영까지 책임진다. 참사랑참생명은 시흥시에서 주는 '다문화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역은 '마을 만들기'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동네 마당'을 여는데, 봄에는 '초한(楚漢) 대전'이라는 이름의 장기 대회를, 여름에는 가족 단위로 군서공원에서 1박 2일 캠핑을, 가을에는 다문화 돌잔치를, 겨울에는 마을의 1년을 추억하는 사진 전시회와 송년회를 개최한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벼룩시장도 열고, 관내 문화단체를 초청해 공연도 하고, 영화도 상영한다. 이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축제의 시간이다. 지난 5월 25일에는 벼룩시장, 초한대전, 해경 군악대와 시흥시 놀이패의 공연, 영화 '명량' 상영 등의 행사가 열렸다.

교회는 '늘새롬지역아동센터'도 운영한다. 지역 내 초등학생 38명을 돌보고 학습을 도와준다. 이 지역에는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밥도 주고 학업도 돕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사들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는 것이다. 한번은 할머니를 때려서 할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아이가 센터에 왔다. 조손 가정에서 자라면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선생님들의 섬김과 사랑으로 학교에서 영재반이 되는 일도 있었다. 

▲ 동네에는 노인들이 많다. 한글 교실에는 매주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참석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돈 많아야 사역할 수 있다고?

많은 사역을 하니 교회에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제언 목사는 "돈 없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료 급식 하나만으로도 고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한다고 알려지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서 기막힌 인연이 이어졌다. 지금은 무료 급식에 후원하는 업체만 6곳이다. 그중 정육 업체가 있어서 급식에 고기반찬이 빠지지 않는다. 쌀도 지원받는다. 참사랑참생명은 매주 약간의 반찬만 준비하면 된다.

다문화 돌잔치도 마찬가지다. 이 행사 한 번에 2,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이것도 대부분 여러 업체의 후원으로 채워진다. 안산 '와스타디움컨벤션웨딩뷔페'에서 점심을, '떡사랑'에서 떡을, '모아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모노폴리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이마트화원'에서 꽃을 후원받는다. 처음부터 모두 갖춰진 채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부족한 대로 진행하다 보니 뜻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하게 됐다.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김제언 목사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인연이었다. 한번은 마을에서 한 노숙인이 사망했다. 행려자가 죽으면 빈소도 없이 영안실에 있다가 화장되는 게 수순이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이 김제언 목사를 찾아와 빈소라도 구해 달라고 간청했다. 김 목사는 센트럴병원과 얘기해 빈소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노숙인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노숙인들이 김 목사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센트럴병원 원 장이 김 목사를 찾아와 협약을 맺은 것이다.

"노숙인들이 그런 거 해 달라고 하면 교회는 대부분 부담돼서 안 하려고 하잖아요. 교회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런 것도 주변 기관과 연계하면 다 되더라고요. 연이 없어도 가서 사정하다 보면 길이 열려요. 교회 이미지도 좋아지고요. 교회가 세상을 섬길 길은 분명히 있고 또 많은데 우리가 안 찾고 있는 건 아닌가, 꼭 인적·물적 자원이 갖춰져야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해요."

참사랑참생명은 돈이 많은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 딱 알맞게 후원이 들어온다. 사실 김제언 목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꿈이있는교회는 출석 교인이 100명 정도인 작은 교회다. 게다가 2010년, 지금의 예배당을 인수하면서 빚을 크게 졌다. 교인들의 헌금으로는 이자 갚기도 버겁다. 김 목사는 사실상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는다. 사례비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모두 헌금 하는 셈 쳐서 실제로 돈이 오가지 않는다.

그는 3년간 맨몸으로 부딪쳤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우니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만났다. 필요한 만큼 물질이 채워지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김제언 목사에게는 한 가지 신념이 생겼다. '하나님이 이 일을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망하지는 않겠구나.'

▲ 동네에는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매년 가을에 다문화 돌잔치를 연다. 돈이 꽤 들지만 여기 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예배당에서 트로트 마음껏 불러도 괜찮아요

많은 사역을 하면서 김제언 목사가 놀란 게 하나 있다. 봉사하러 오는 사람이 기독교 신자보다 비신자들이 더 많은 것이다. 지금도 봉사자의 30%만 교인이고 나머지는 비기독교인이다. 참사랑참생명의 대표가 목사이고 대부분의 일을 교회에서 한다고 알려졌어도, 후원하는 업체는 거의 비신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저는 기독교인만 봉사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외려 비신자들이 더 열심이더라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장에서 이런 모습들을 접하며 김 목사의 생각도 많이 열리게 됐다. 꼭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종교가 달라도 주민들을 섬기고 지역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손을 잡았다. 예전에 목회만 할 때는 목사들만 만났는데, 지금은 마을 주민들과 복지 단체 사람들, 후원 업체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난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담임목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교인 들과 주민들을 만난다. 신기하게도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다가와 마음을 열었다.

예배당에서 트로트가 울려 퍼져도 괜찮다. 한번은 노래 교실에 참가한 어느 할머니 집사님이 김제언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건 정말 재밌는데 겁난다고, 교회에서 트로트 부른다고 예수님께 혼날 것 같다고. 김제언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실 거예요. 만약 예수님이 혼내신다면 제가 벌 받을 테니 마음 편히 부르세요."

사역의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

마을을 섬기는 일 자체가 김제언 목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의 목적이 '영혼 구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같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김 목사에게는 그들을 더 적극적으로 전도하지 못했다는 부담감도 있다. 비신자들과 많이 만나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는 보수적인 신앙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전도는 단지 교세 불리기 차원이 아니다. 김제언 목사는 그동안 많은 개척 교회가 답습해 오던 전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비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작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전도. 이는 결국 자신과 자기 교회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교인을 양산한다. 그래도 교인이 많아져 생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도하는 게 목사들의 현 실이었다.

"저희 교회 이름이 꿈이있는교회인 이유는, 예수님의 꿈을 꾸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꿈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고, 구원은 곧 사람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죠. 저는 많은 교회가 이 '천국'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천국은 금은 보화가 깔려 있어서 그걸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아요. 천국은 우리의 일상과 똑같은 곳일 수 있어요. 노동이 존재합니다. 다만, 노동을 하고도 빼앗기거나 착취당하는 억울함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다스리시니까요.

천국을 꿈꾸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타적으로 산다는 거죠. 그런데 천국을 내가 더 잘되고 출세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나'와 '우리 교회'밖에 모르는 거예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이죠. 이건 '마귀들과 싸울지라'라는 찬양을 부르고 불같이 기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사회를 끌어안아야 해요.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김제언 목사는 봉사자들과 주민들을 전도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몇 명에게 넌지시 얘기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전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신뢰를 쌓는 기간이었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전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포교를 위한 봉사였느냐"고 비난받더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에게 참 사랑참생명을 비롯한 모든 섬김은 영혼 구원을 위한 통로 였다.



▲ 매월 마지막 주에는 '동네 마당'이 열린다. 주민들이 동네 마당에서 영화를 시청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조금씩 조금씩, 살맛 나는 우리 동네

엄밀히 말하면 참사랑참생명은 꿈이있는교회와 별개 기관이다. 마을과 관련한 모든 사역은 교회가 아니라 법인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참사랑참생명이 사역을 거듭할수록 꿈이있는교회의 이미지는 점점 좋아진다. 법인의 대표 가 김제언 목사인 것을 주민들이 알고 있고, 법인 활동이 교회 예배당에서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제언 목사가 2010년 정왕1동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교회에 반감이 심했다. 예배당에 돌이 날아와 창문이 깨진 적도 있었고, 앞마당은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로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주민들은 정주 의식 없이 떠돌았고, 마을에는 쓰레기가 넘쳐 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참사랑참생명의 노력으로 주민들은 조금씩 꿈이있는교회에 마음을 열었다. 일례로, 교회 바로 옆에 리어카 여러 대를 세워 놓는 아저씨가 있었다. 고물을 모아 파는 사람이었는데, 교회가 리어카를 조금만 비켜 달라고 해도 신경을 곤두세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교인들은 무료 급식 때마다 꾸준히 아저씨에게 식사를 전달했다. 이제 그 아저씨는 교회 일이라면 무조건 협조한다.

마을에도 조금씩 활기가 돈다. 한 달에 한 번씩 '동네 마당'이 열리니 동네가 북적북적해진다. 노래 교실이나 댄스 교실이 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교회 밖에서도 들린다. 우중충한 지역 분위기가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다.

지역 섬김, 목사가 행복해지는 비결

▲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 / 뉴스앤조이 편집국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192쪽 / 8,000원

김제언 목사의 사역은 계속 진화한다. 그는 지금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려고 시흥시에 인증을 신청했다. 마을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쓰레기 문제도 처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 한 가지 그가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형태가 새로운 목회의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개척 교회의 많은 목사가 교회를 생계 수단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김 목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앞으로 개척 교회 목사들이 이중직을 가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인이나 사회적 기업 등 주민들을 섬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목회에 힘쓰는 것이 지금 시대에 걸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런 일이 바로 목사가 행복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교회가 지역에 녹아들고, 목사가 주민들에게 녹아들어 함께 늙어 가는 것. 서로 인생의 동반자로 기대어 사는 삶이라면 더는 부족함이 없다. 한국교회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김 목사는 교회가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길은 많다고 이야기한다. 교회 문턱을 낮추면 낮출수록 주민들이 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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