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시작된 신학 교수들의 저서 표절 논란은 독자로부터 SNS에서 시작됐다.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가 교수들의 책을 읽던 도중 해외 신학자들의 저서와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고,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일이 커졌다. 지금도 페이스북 '신학 서적 표절 반대' 그룹에서는 여러 독자들이 교수들의 표절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표절을 판가름하는 것은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제기된 경우는 남의 책을 제대로 된 출처 표기 없이 갖다 썼다는 걸 일반인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에 몇몇 교수는 사과문을 내놓고 출판사와 협의해 책을 절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있다. 총신대학교 김지찬 교수와 백석대학교 송병현 교수는, 자신들은 나름대로 원칙을 지켰고 표절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은 독자들이 개인 차원에서, 또는 페이스북 '신학 서적 표절 반대' 그룹이라는 헐거운 조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이다. 물론 이런 여론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표절 의혹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사견'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결국 학교나 학회 등 표절을 '공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기관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벌여 주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는 '신학 서적 표절 반대' 그룹뿐 아니라, 김지찬 교수의 저서에 문제가 없다고 성명을 낸 총신대 구약학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뉴스앤조이>가 표절 문제를 취재하면서 만난 현직 구·신약학 교수들도, "표절 반대 운동의 진정성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대립해서는 양측에 도움이 안 되니 공적 기관에 문제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개입 안 해…대학교 교원 징계 시효는 3년?

여러 사람이 표절 문제를 교육부에 제소하자고 했다. 이성하 목사는 지난 7월 25일 교육부에 표절 검증 여부를 질의한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7월 31일 이 목사에게 "정부 지원 사업이 아닌 연구 활동은 교수의 소속 대학에 연구 윤리 위반을 제보해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뉴스앤조이>는 김지찬·송병현 교수가 각각 소속한 총신대·백석대의 연구 윤리 규정을 찾아봤다. 백석대학교 '연구 윤리 규칙'에 따르면, "제보자는 산학협력단에 구술·서면·전화·전자우편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제보할 수 있으며 실명으로 제보함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익명으로 제보하고자 할 경우 서면 또는 전자우편으로 연구 과제명 또는 논문명 및 구체적인 부정행위의 내용과 증거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총신대 규정은 익명 제보가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나머지 내용은 백석대학교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렇게 제보한다고 해도 실제 조사에 착수할지는 미지수다. 규정에 따르면, 제보를 받고 이 건을 진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예비 조사' 단계에서는 '제보일이 시효 만료일로부터 5년을 경과했는지 여부'를 보게 돼 있다. 표절 등 연구 부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났다면 조사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위원회가 구성돼 표절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하나 있다. 사립학교법에는 교원의 징계 시효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오래된 저술에 대하여는 제재 방법이 없는 셈이다. 실제로 2014년 12월, 경희대학교는 소속 교수 1명이 논문을 표절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이 교수를 징계하기로 했다. 그런데 징계 시효 기준을 논문 작성 당시인 4년 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표절을 판정한 2014년 12월로 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된 바 있다. 앞서 2009년 목원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에서 한 교수의 논문 표절을 밝혔지만, '제보 접수일로부터 만 5년 이전의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접수하였더라도 처리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해 교수들이 반발하는 선례가 있었다. 앞서 이성하 목사의 질의에 회신한 교육부도 "정부 지원 사업으로 행해진 연구의 부정에 대하여는 시효가 없지만, 교수 개인적인 저술 등 연구 활동에 대해서는 소속 학교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총신대와 백석대에서 아직 표절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총신대의 경우, 교단 총회와 대립 상태에 있어 이사회가 파행 상태라 김지찬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룰 형편이 못 된다.

백석대는 송병현 교수의 표절 문제를 놓고 교수 회의를 하는 등 논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단계는 밟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석대 한 보직 교수는 8월 1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송병현 교수 문제를 총장도 알고 있고, 교수 회의에서도 다루긴 했다. 그러나 초점은 송 교수 개인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표절 윤리 규정 확립 등 포괄적인 움직임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홈페이지에는 연구 관련 윤리 규정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정의한 표절의 기준은 남의 글을 출처 없이 '7단어' 이상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 규정도 만들어진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홈페이지 갈무리)

학회도 세부 기준은 미비

공신력 있는 기관의 또 한 축인 학회는 어떨까. 2000년을 전후로 한국복음주의신학회와 한국기독교학회 등 신학 학계에서는 표절과 관련한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규정은 딱 한 가지다. '7단어 이상의 문장이 순서가 변경되지 않고 동일한데도, 따옴표나 각주가 없으면 표절이다'라는 내용이다.

현재 한국에는 두 개의 구약학회가 있다.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김지찬 회장)와 한국구약학회(차준희 회장)이다.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가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지찬 교수가 회장 재임 중이고, 표절 의혹이 제기된 전정진·이성훈 교수는 회장과 총무를 지낸 바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학자들이 모인 한국구약학회에서는 자칫 상대 학회에 소속한 교수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조심스럽게 현 상태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학회에서 현직 임원을 맡고 있는 A 교수는 사실상 학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교수 개인의 저작물은 학회에서 발행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회가 선제적으로 조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설령 학회가 표절로 판정해도, 회원 자격 박탈 이외에 딱히 제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