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총신대 구약학 교수들은 '김지찬 교수 표절 의혹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독자가 중심이 돼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표절 반대 운동에,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대응한 첫 사례다. 그러나 총신대 교수들은 "면밀한 검토를 거친 결과 김지찬 교수는 문제없다"면서도, 어떠한 기준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는 고사하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들었다. (관련 기사: 총신대 구약학 교수들, "김지찬 교수, 표절 아니다")

총신대 교수들의 성명으로 김지찬 교수의 표절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진실 공방의 국면에서, 학회나 학교 등 표절과 관련한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관이 나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게 원칙이고 절차지만, 현재 어디 하나 나서는 곳이 없다.

<뉴스앤조이>는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가 제기한 김지찬 교수의 책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의 표절 의혹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기 위해, 다른 학교의 현직 구약학 교수 3명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표절 검증 부분은, <뉴스앤조이>가 보도했던 내용 중 김지찬 교수와 이성하 목사가 반론과 재반론을 주고받았던 쟁점 3건을 선정했다. 30건에 달하는 의혹 중 3건이지만, 이는 김지찬 교수에게 제기된 표절의 대표적인 유형들로, 이를 통해 다른 부분도 표절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음과 같다.

①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188~199쪽과, 배리 웹(Barry G. Webb)의 <The Book of the Judges> 154~159쪽
②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320~331쪽과, 리처드 바우만(Richard G. Bowman)의 <The Fortune of King David / The Fate of Queen Michal> 97~115쪽
③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452~461쪽과, 데이비드 하워드(D. Howard)의 <구약 역사서 개론> 219~249쪽

표절 논란이 불거진 부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문제가 된 부분뿐 아니라 그 내용이 속한 챕터 통째로 검토를 요청했다.

특별히 ③번을 놓고 김지찬 교수는 "하워드가 아닌 원출처, 에드윈 딜레(Edwin Thiele)를 인용했다"고 해명했기 때문에, 딜레의 <히브리 왕들의 연대기> 41~54쪽도 검토 자료로 포함했다. 며칠간 검토한 교수들은 <뉴스앤조이>에 답장을 보내 왔다.

①번 유형: 각주는 핵심 문장에만, 나머지는 출처 표기 없이 패러프레이즈

'사사기'의 사사 입다를 다루는 부분에서 김지찬 교수는 웹의 글을 인용했다. 김지찬 교수에게 제기된 표절 의혹은 대개 이 부분과 비슷한 양상이다. 김지찬 교수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핵심적인 부분에만 각주를 달고, 나머지는 일반 지식에 해당하거나, 내 말로 풀어 썼기 때문에(패러프레이즈)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세 학자의 답이다.

A 교수: 김지찬 교수는 196쪽 첫 문장에 각주 57을 달고 이후로는 전혀 각주를 달지 않았다. 57번 각주는 원저자의 문장을 자기의 표현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표시이며, 그 문장의 내용이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각주에 인용한 저자의 주장임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최소한 이하 단락들의 첫 문장에 ibid.(ibidem, 앞의 책 참조) 각주를 달아야 했다. 아니면, '이하의 글은 웹의 책 158쪽에 실린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 것이다' 정도의 표시라도 했어야 했다.

B 교수: 김지찬 교수가 쓴 부분은 웹의 책을 옆에 두고 이리저리 편집하고 패러프레이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 봐도 명백하게 웹의 책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인용을 생략해도 될 정도로 패러프레이즈하지 않았다.

C 교수: 196쪽에서 각주 57을 단 첫 문장만 올바른 인용이고, 나머지는 표절로 간주할 수 있다. 웹의 내용을 거의 문자적으로 옮기고 있다. 앞부분과 이어 봤을 때, 글의 흐름상 웹의 글과 김지찬 교수의 글이 일치한다. 구체적인 내용도 웹의 글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인 지식으로 볼 수 없다.

②번 유형: 첫 문장에만 인용 표시, 뒷 내용은 각주 없이

리처드 바우만의 글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무엘서' 부분도 앞 사례와 비슷한 유형이다. '사무엘하'에 나오는 다윗의 왕권 부분을 서술하며 김지찬 교수는 바우만의 글을 인용했다. 김 교수는 321쪽 각주 77부터 332쪽의 각주 92에 이르기까지 군데군데 바우만의 글을 인용했다는 출처를 달면서 그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세 교수는 다르게 봤다.

A 교수: 앞 사례와 마찬가지로 사무엘서를 해설한 326~327쪽의 경우 또한 문장마다 각주를 달고 ibid. 표시를 했다면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러지 않았고, 각주 83이 달린 문장 하나에 의존하고, 나머지 문장에서는 모두 바우만의 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삼았다. 이는 변명의 여지없이 표절이다.

B교수: 패러프레이즈는 맞지만,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아니다. 책의 흐름이 바우만을 (이전부터 계속) 따라가고 있더라도 일일이 각주를 달아야 한다.

C 교수: 표절로 단정 짓기 애매한 부분도 있다. 326쪽 맨 마지막 문단은 바우만 103에서 온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 내용은 성경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기에 일반 지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의 집과 다시 연결해 보려고 시도했다'는 부분은 바우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표절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③번 유형: '출처 표기'는 딜레, 글 내용 대부분은 '딜레의 글을 인용한 하워드'에서

 

이곳은 열왕기서의 기록을 토대로 연대기를 측정해 보는 대목으로, 김지찬 교수는 챕터 서두에 '딜레 41~54쪽'이라는 출처 표기를 해 놓았다. 김지찬 교수는 "조교가 요약해 준 딜레의 글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하워드의 글을 가져다 쓴 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실제로 이 단락에는 하워드의 글을 인용했다는 어떠한 표시도 없다.

출처 표기가 1차 자료인 딜레의 글로 돼 있지만, 실제 내용은 하워드의 글에서 가져왔다고 의심받는 경우다. 하워드는 딜레의 글을 참고해 책을 썼기 때문에 2차 자료에 해당한다. 이 부분 455쪽은 총신대학교 신현우 교수(신약학)도 "700쪽 중에서 최소한 한 군데는 분명한 표절이 있다"고 지목한 부분이기도 하다. 

A 교수: 이 부분은 '더욱 나쁜 표절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455쪽은 두말할 나위 없이 표절이다. 이 경우는 심지어 인용한 책의 각주 50과 그 내용까지 하워드를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신이 리서치하지 않은 정보를 마치 자신이 리서치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그 각주 93에 표기한 반즈의 책에는 페이지 수를 표시하지 않았다. '참고'라는 말도 없다.

C 교수: 453쪽을 보면, 표에는 아합의 아들을 요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딜레의 책 45쪽에서 온 내용이다. 그런데 김지찬 교수는 도표에서 요람으로 썼다가 본문에서는 이 왕의 이름을 '여호람'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호람'은 하워드의 표기 방식으로, 하워드 책 240쪽을 표절했다는 결정적 증거에 해당한다.

454쪽 2번째 문단을 보면 김지찬 교수는 예후와 아달랴를 연대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딜레는 요람과 아하시야의 죽음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연대를 계산한다. 이는 하워드가 예후와 아달랴의 등극 시점을 기준으로 잡은 것을 김지찬 교수가 가져온 것이다.

다음 문단도 마찬가지다. 김지찬 교수는 딜러드·롱맨의 <최신 구약 개론>을 인용했다고만 밝혔는데, 이 인용 이외의 문장은 모두 하워드의 글을 표절했다. 딜레는 단지 70인역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김지찬 교수와 하워드는 바티칸 사본과 루키아누스 개정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딜레는 요세푸스와 랍비 자료들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데 비해, 김지찬 교수와 하워드는 그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455쪽에서 하워드는 딜레, 타드모르, 반즈 모두에 대해 각주를 붙였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3개의 각주를 달고 있다. 반면 딜레는 하워드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 김지찬 교수가 하워드의 글을 가져다 쓴 증거다.

"표절 기준 모호했을 때의 관행? 각주 제대로 다는 게 관행이다"

세 명의 교수는 모두 김지찬 교수가 인용 기준을 너무 안일하게 적용하거나 자의적으로 적용했을 것으로 봤다. 단정적인 표현을 써 가며 김지찬 교수가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고 말한 교수도 있었다.

세 교수에게 자료 검토를 요청할 때는 '표절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던 때였다. '20년 전 기준을 지금과 똑같이 논해서는 안 된다', '한국적 기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뉴스앤조이>는 김지찬 교수와 비슷한 나이대인 세 교수에게, 김 교수의 표절 논란은 혹시 과거의 표절 기준이나 관행에서 비롯한 것은 아닌지를 물어봤다. 과거에는 좀 더 느슨하게 글을 썼다든지, 교과서는 각주를 잘 안 달아도 되는 것인지를 물었다.

A 교수는 "20년 전 관행이라는 게 어디 있느냐. 학계에서 관행은 각주 제대로 다는 것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교수)들을 가르친 외국의 스승들은 이런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학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B 교수는 "표절에 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바뀔 수는 없다. 사회적 용인의 정도는 지적될 수 있지만, 표절은 표절이다. 교과서라고 각주를 완화해서 달 수밖에 없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교과서가 전문적인 글이 아니라 종합적인 책이기 때문에 100% 소화해서 표절의 표가 안 나도록 써야 한다는 의미다. 교과서라고 인용의 기준을 달리 적용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A 교수는 이 문제가 학자의 양심과도 직결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뉴스앤조이>에 검토 결과를 회신하며 보낸 메일에, 기준과 관행을 논하기 전에 남의 것을 가져다 쓸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학자는 다른 학자의 사고와 업적을 철저히 존중해 주는 엄격성을 구비해야 합니다. (중략) 심지어 교실에서 들은 강의 내용이나 사적인 편지나 대화 내용이라도 남의 생각을 자기 글로 삼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각주를 달고 그 생각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학자의 기본적인 양심이요 도리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김 교수가 반대 논증을 펴거나 변명하기보다 차라리 수긍하고 인용한 문장마다 각주를 달기로 약속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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