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목적을 성취하려고 한다. 정치가는 정치가로서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기업가는 기업가로서 더 많은 성공으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품과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최선의 방도를 찾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같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여러 가지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대학생과 직장인, 교사, 상인들, 그리고 심지어 가정 주부들까지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일을 수행하는 방식에도 모두가 공감하는 길이 있어 그 목적이나 방법이 정당하지 못할 때에는 비난이 따르고 바른 방법으로 성취했을 때는 칭찬과 존경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분명한 목적과 명확한 실행 방법을 가지고 있다. 구원받은 죄인으로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이 같은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최우선에 자리에 모시고 있는가?' 이다.
  
그러나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최우선에 자리에 모시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현실이다.

누구를 위한 연합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가? 최근 대한성서공회와 함께 한국 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인 한국찬송가공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자면 배교한 한국 교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세우나 하나님은 없고 말씀을 내세우나 말씀은 없고 화합과 일치를 내세우고 사랑을 내세우나 질시와 비난과 탐욕만 가득 차 있는 배교한 자들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찬송가공회는 1981년 우여곡절 끝에 대형 교단을 중심으로 기존의 3종(합동, 개편, 새찬송가)의 찬송가를 하나로 통일하자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많은 구조적이고 운영상의 문제를 안고 출범하여 1983년 통일찬송가를 만들었다. 찬송가공회는 출범 당시부터 판권으로 인한 수익금의 배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명분만 내세운 연합기관이었기에 내,외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연합의 동기가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몇몇 대형 교단들 차원에서 이루어진 편의주의적인 모습이 강했고 거기에 이익을 위한 출판사들과 교단 정치꾼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실제로 찬송가 시장은 엄청난 규모이다. 추정컨대 연간 약 100억원 정도이며 찬송가로 인한 시장의 창출 규모는 거의 1,000억원에 이른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과 성경을 가르쳐 하나님의 일꾼을 양성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도록 하여야 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한국찬송가공회를 만들고 통일찬송가를 만든 사람들은 이러한 증거가 어디에도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찬송가공회가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현재의 통일찬송가는 그 가사에 있어 비성경적인 내용들로 인해 부적절한 곡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은 비성경적인 가사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고 마귀를 물리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찬송가공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17년 동안 잘못된 것을 수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부적으로 이권 때문에 보이지 갈등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의 사역에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소위 교계의 지도자임을 내세워 공회의 위원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17년 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단지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해 왔다.

수년 전부터 찬송가공회는 새로운 찬송가를 펴내기 위해 준비를 해 오던 중 드디어 금년에 출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평신도협의회와 한기총 등 몇몇 단체들이 교인들의 경제적인 부담과 시기의 부적절성을 들어 반대를 표시했고 급기야 찬송가공회의 회장 선출시 장로가 아닌 목사가 해야 한다며 순번에 따라 한 교단에서 추천한 장로가 아닌 다른 교단의 목사가 회장이 되자 이것이 각 신문들에 기사화 되어 찬송가공회의 문제점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찬송가공회는 왜 새로운 찬송가를 펴내려고 하는가?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찬송가가 많은 부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찬송가를 제작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찬송가의 판매로 인한 수익금은 엄청난 액수가 된다. 그래서 찬송가공회는 새로운 찬송가의 출간에 즈음하여 직영 공급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대한성서공회와 같아지기를 갈망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는 성경의 판권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어 그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교계에 충분한 로비와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 그 예로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성경을 대체하기 위해 <표준새번역>과 <개역개정판>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보급이 저조하자 교단의 총회장들을 불러 접대를 하는 등 교단을 상대로 이 성경들이 교단 차원에서 사용결의를 하도록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와 같이 찬송가공회는 새로운 찬송가를 기점으로 직영체제를 갖추고 독자적인 판권을 확보하여 그 수익금을 토대로 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새로운 찬송가를 펴낼 수 있고 찬송가공회도 새로운 찬송가를 얼마든지 펴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찬송가를 펴낸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찬송가는 반드시 한 가지만 사용해야 된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찬송가공회가 문제가 되고 새로운 찬송가의 출간과 찬송가공회의 문제가 공론화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더 좋고 더 많은 찬송가를 가지기를 원한다. 순수하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을 통해 아름다운 찬송가가 많이 만들어져 마음껏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화합과 일치라는 명목하에 하나의 찬송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찬송가가 만들어져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단의 결정과 목사의 결정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새로운 찬송가를 사용해야 한다. 찬송가공회와 교단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며 출판업자들은 자신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앞 뒤 가리지 않고 로비를 하는 등 더욱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결국 돈 때문에...

우리는 이일을 통해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 성경적 원칙을 버린 연합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과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그 시작과 끝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찬송가공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위해 교인들과 교회와 교단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찬송가를 원한다면 즉시 찬송가공회는 해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함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권위를 교회 위에 두는 것은 죄악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자신들의 배를 위하는 거짓 목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악을 묵인하고 방치하며 타협함으로써 악을 조장하기도 한다. 말씀에 비추어 죄를 지적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목자가 악에 편승하고 죄를 사랑으로 덮어 주라고 하며 성도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누가 하나님의 일꾼인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보고 죄라고 말하고 잘못되었다고 가르치며 악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런데 악에 동조하고 묵인하며 조장하는 목자와 교계의 지도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이다.

셋째, 목사가 결정하거나, 교단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맹목적인 교인들의 맹목적인 신앙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찬송가가 나오면 이 찬송가가 올바른 것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공회에서 만들었으니, 교단에서 승인했으니, 목사님이 추천했으니 훌륭한 것인 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경적 기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목사의 말과 다른 사람의 말에 권위를 두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공회와 교단과 목사의 말이 성경에 비추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먼저 확인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거꾸로 되어 버렸다. 이는 모두 성도들의 성경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순종과 열성을 복 받는 수단으로 가르치며 교인들의 무지로 이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찬송가공회의 실태를 보면서 이미 배교한 이 나라의 기독 기관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저버리고 있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성경적 기준과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어디에서든 견지해야 하며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여 진리의 지식에 이르러야 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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