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아내는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해 본 적도 없지만 할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진하기 짝이 없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럼 내가 요리 배워서 하면 되지 뭐. 중2 때 꿈이 만화책에서 본 '요리왕 비룡'이었으니까.'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현실을 깨달았다. 매일 집 밥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수고인지…. 결혼해서 제대로 집 밥을 얻어먹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는 말이 점점 공감되더니,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역시 인간은 이기적 동물인 건가?)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에게 '요리왕 비룡'의 영이 임해서 엄청난 요리들을 쏟아 냈다. 보기만 좋은 게 아니라 대단히 맛있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게 먹다 보니 몸무게가 무려 8킬로그램이나 늘었다. 날마다 풍성한 메뉴의 집 밥을 먹는 게 결혼 생활 최고의 행복이었다.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리고 입덧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냉장고는 선악과가 되었다. 아내는 집 중앙에 있는 냉장고는 열지 말라 했고, 여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어떻게 냉장고를 안 열고 살 수 있겠는가? 아내가 방에 조용히 누워 있을 때 몰래 냉장고를 열곤 했는데, 아내는 마치 구약의 선지자가 재림한 듯 골수에 사무친 불에서 나오는 외침으로 크게 외쳤다.

"냉장고 문, 닫아!!!!!!!!!!!!!!!!!!!!!!!!!!!!!!!!!!!!!!!!!!!!!!!!!!!!!!!!!"

그때부터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집 안에 계신 아내가 먹고 싶은 것만 사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집 밥에서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나가서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었다. 그렇게 약 2주 정도 생활했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다. 기운도 없고, 가만히 있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피곤하기까지 했다. 집 밥만 먹다가 외식을 하고 배달 음식을 먹다 보니 몸에 반응이 온 것이다. 화학 조미료와 영양소가 충분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집 밥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 아내가 해 주는 집 밥을 먹으니, 밖에 나가서 사 먹거나 배달 시켜 먹는 음식에 눈이 안 간다. (사진 제공 김정주)

풍요로운데 왜 내 영혼은 궁핍할까?

설교의 홍수 시대가 된 지 좀 되었다. 2G 폰 방주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 이런 홍수에 잠겨서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본인의 입맛에 맞게 설교를 쇼핑할 수 있다. 그중 어떤 교회, 어떤 목사님의 설교는 '그 교회 그 목사님 설교'로 브랜드화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가 갈급할 때에, 말씀에 대해 더 알고 싶을 때에 다양한 메뉴들이 있는 셈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이전 세대들은 누리지 못한 큰 유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그렇게 많은 설교들이 넘쳐 나고, 메이커 목사님에 메이커 설교라는 말까지 생겨났는데, '과연 내 영혼은 풍성한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좋은 목사님의 좋은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내 영혼은 여전히 궁핍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설교가 '집 밥' 설교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목사님의 설교라고 한들 내가 그 교회에서 목양을 받고 있지 않는 한, 그 목사님의 설교는 집 밥일 수 없다. 밖에서 사 먹는 밥이나 배달 음식처럼 편리하게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 그 설교가 집 밥은 아니다.

집 밥 설교는 무엇일까?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목양을 받고 있는 목회자에게 듣는 설교 아닐까? 그 설교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설교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각 교회 목회자의 신학적인 성향이나, 학문적인 깊이, 영성의 색깔에 따라서 설교의 모양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속한 양 떼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일 때에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뿐만이 아닌, 그 양 한 명 한 명에 대한 진한 사랑과 눈물을 동반한다. 그 진한 사랑과 눈물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함께 뒤범벅이 될 때 그것은 다른 배달 설교와는 비교되지 않는 훌륭한 집 밥이 되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짠 음식과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등등. 그래서 밥 한 끼를 차리려도 단순히 '맛있는 밥'이 아닌, 나를 '살리는 밥'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기에 밥을 차리지만 사실 그건 밥이라 부르고, 사랑이라 이름하며 먹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한 교회의 목회자는, 한 부서의 목회자는,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 양 떼들의 영혼 상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놓여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동안 삶의 궤적이 어떠하였는지, 어떠한 기도 제목을 갖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는지 등등. 그래서 설교 한 편을 준비하더라도 단순히 '좋은, 맛있는' 설교가 아닌, '살리는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과연 그런 목회자로서 훈련받고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가?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깊이가 부족할 수 있다. 언변이 달릴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메이커화한 목사님들의 설교보다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섬기는 양 떼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화려한 메이커 목사님들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목사님도 자신의 성도들에게는 최고의 목회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품게 된 양 떼들의 영혼의 속사정 하나하나가 목회자인 내 마음에 맺히게 될 때, 그 마음은 알이 배게 된다. 조금만 생각해도 마음통이 심하다. 많이 생각하면 마음이 으깨어지는 것 같다. 양 떼들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전능 사이에서 버둥 치다 보면 눈물이 숙명과 같이 흐른다. 바로 그 흐르는 눈물에 설교를 잠기게 할 때, 비로소 양 떼를 위한 목회자의 성육화한 진리로서의 설교가 완성된다. 화려하지 않고, 탁월하지 않아도 그 설교에는 살리는 능력이 있다. 그 설교는 목회자의 눈물로 지은 집 밥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목회자로 훈련받고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이러한 집 밥과 같은 설교를 우리의 영혼이 먹을 때 비로소 배달 설교로 채워지지 않던 우리의 영혼이 채움을 받고 건강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날아오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밥심으로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을 이기며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 우리 아이들에게 '집 밥'처럼 '살리는 밥'을 지어 먹이고 싶다. (사진 제공 김정주)

냉정과 열정 사이

이번 여름에는 두 번의 섬김의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부산에 있는 어떤 교회 청소년부 여름 수련회를 섬겼고, 한 번은 우리 교회에서 내가 맡은 부서인 교회학교 여름 성경학교를 섬겼다. 목요일 금요일은 부산 청소년 집회, 토요일 주일은 여름 성경학교여서 힘든 일정이었다. 둘 다 많은 기도로 준비하고 집 밥과 같은 설교를 하려고 힘썼다. 우선 부산에 설교를 하러 가서는 그곳의 청소년들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 깜짝 놀랐다. 말씀을 듣는 태도도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서로 호흡을 맞춰 가며 준비해 온 설교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시간이었다. 전한 말씀에 관해서는 몇 가지 기도 제목을 내놓고 기도를 잘 인도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다른 기도 제목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기도를 하는데 내 마음에는 다소 냉기가 흘렀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나를 강사로 초청해 주신 목사님께 기도회 인도를 부탁드렸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 목사님 안에 있는 한증막 같은 온기가 흘러나오면서 기도회 시간은 은혜로 넘쳤다. 저건 정말 '집 밥'과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은혜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도 그리하였다. 설교는 그러저럭했지만 기도회 시간에는 어제와 똑같이 내가 인도할 때는 냉정, 형님 목사님이 인도하실 때는 열정이었다. 모든 집회가 마무리되고 다음 날 새벽에 기차를 타고 올라오며 나는 그 냉정과 열정 사이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마침내 본향과 같은 우리 교회에 도착해 내게 맡겨진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보았을 때, 그 열정과 냉정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 언어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언어보다 더 확실한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준비한 프로그램이 하나둘 진행되고 마지막 저녁 집회를 앞두고 조용히 본당에 앉아서 기도할 때에 부산에서는 그렇게도 나오지 않았던 뜨거운 눈물이 마음을 적셨다. 맡겨 주신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 이 영혼들을 살려야 한다는 정언명령보다 더 강한 숙명,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이뤄 낼 수 없다는 좌절, 그 철저한 좌절 속에서 나오는 처절한 절대 의존, 성령의 능력의 부어짐 그리고 확신. 저녁 집회 때 설교를 위해 아이들 앞에 섰을 때, 아이들은 다소 산만했지만 그 녀석들도 알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한 무언가에 붙잡혀 있기에 그 분위기를 바로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45분 정도를 원고도 없이 그야말로 '복음'에 대해 설교했다. 아이들이 침도 꼴깍하지 못하고 긴장하고 있음을 주변의 공기로 느낄 수 있었다. 초딩이었음에도 지금 선포되는 복음의 논리에 의해 마음이 불붙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 명도 딴짓하거나 떠드는 아이가 없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치고 기도회를 인도했다. 부산에서 그렇게 냉정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아이들을 향한 기도로 넘치고 툭 치면 무엇이든지 던지고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울었다. 그날 그 시간에 하나님은 나를 확실한 '집 밥'으로 사용하셨다.

부산에 있는 아이들도 참 좋았고 좋아했지만 단시간에 사랑해 내기에는 그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달랐다. 오랜 시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해 내고 있었기에 거기서 나온 집 밥은 달랐다. 그게 냉정과 열정 사이의 비밀이었다.

집 밥이 그립다

집 밥이 맛있으면 배달 음식에 눈이 안 간다. 집 밥이 맛있으면 밖에 나가서 밥을 먹는 게 돈이 아까울 때가 많다. 신천지를 보면서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집 밥을 못 먹어서 배가 너무 고파서 밖에 나가서 뭐 먹을까 고민하며 방황하다가 잘못된 음식점에 들어가게 되고, 살리려고 만든 음식이 아니라 자극적인 화학조미료 잔뜩 넣어서 혀를 마비시키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음식인데 그걸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고, 그 맛을 못 잊어서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아내는 요리를 할 때면 최상의 재료만을 사용했다. 화학조미료도 넣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손이 많이 갔다. 어느 때는 한 끼를 차리기 위해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숙연해지곤 했다.

나는 나 스스로 설교를 준비할 때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 설교를 잘하는 것은 아무 쓸 데가 없다. 설교를 잘하려는 이유는 살리기 위해서다. 그 일을 위해서만 잘하는 것이 쓸 데가 있는 것이다. 최상의 재료가 되는 싱싱한 본문을 설교에 사용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첨가하는 화학조미료들을 일절 뿌리지 말고, 오직 재료인 본문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을 첨가해야 한다. 그 한 끼의 설교를 통해 한 사람의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설교자 역시 살아나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단순히 교회로 '집합'시키는 목회자가 아닌, '집 밥'을 할 줄 아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집 밥이 그립다. 계란 프라이 하나,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 시금치나물, 흰쌀밥…. 가족끼리 끼니때 되면 오손도손 모여 앉아 먹던 그 삼시 세끼 집 밥이 그립다.

집 밥을 못 먹어서 굶고 다녔던 시절에 흘렸던 눈물을, 집 밥을 못 먹어서 지금도 굶고 다니는 영혼들을 생각할 때 흐르는 눈물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 눈물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찬밥이어도 늘 따스하기만 했던

집.밥.이.그.립.다.

▲ 김파전의 2030 미생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그림 제공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2030들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라는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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