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복음주의루터교(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ELCA)는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며, 미국의 여러 루터회 중 가장 교세가 크다. ELCA는 2009년부터 성 소수자를 성직자로 인정했다. 2013년에는 커밍아웃한 목사가 지역 교구 주교로 선출되기도 했다. 

ELCA에 동성애자 성직자가 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7월 18일 있었던 한 주교의 커밍아웃은 조금 특별했다. 북텍사스-북루이지애나 교구 케빈 케이너스(Kevin Kanouse) 주교는 고등학생 및 청년 4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있는 가장이다.

▲ 케빈 케이너스(Kevin Kanouse)는 미국복음주의루터교의 주교다. 북텍사스-북루이지애나 교구를 책임지는 그는 4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 온 평범한 목회자였다. 하지만 지난 7월 18일, 400여 명의 청년이 모인 자리에서 커밍아웃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케이너스 주교 페이스북 갈무리)

케이너스 주교는 그로부터 3일 후, 담당 교구 홈페이지에 리더와 평신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렸다. 그는 편지에서 40년 동안 평범한 결혼 생활을 이어 온 자신이 왜 동성애자라고 밝힐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동성애는 끔찍한 범죄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호모'·'퀴어'라는 단어는 '비정상적인', '계집애 같은'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고 배웠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주변 사람들이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두려워 나는 이 사실을 더 깊이 묻어 놨다"고 했다.

목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자신의 '천성(nature)'을 부정하는 데 한몫했다. 그는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싶었다. 하지만 케이너스가 젊었을 때만 해도 동성애자는 교인으로 인정받을 수도, 목사가 될 수도 없었다.

"목회를 향한 강력한 소명이 있었기에 교회에서 기쁨과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교회는 또 다른 면에서 나 자신을 숨겨야 하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교회에서는 늘 낮은 자존감, 자기 비하, 죄책감이 들었다."

케이너스는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살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 현재의 아내를 만났고 결혼했다. 이후 아들 두 명을 낳고 4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행복한 가정에 지역 교구에서 인정받는 목사였지만, 정작 그의 내면은 갈갈이 찢기고 있었다. ELCA가 성 소수자 안수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2009년, 그는 오히려 더욱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만약 찬성표를 던졌다가 알려지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논의 끝에 성 소수자 안수 여부를 물을 때 그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반대' 뒤에 숨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나는 겁쟁이었다. 내가 또 한 번 용서를 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동성애자인 그가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교단은 성 소수자를 성직자로 인정했다. 이후 그는 친동성애 성향으로 돌아선 ECLA를 떠나기 위해 논의하고 있는 교회를 다니며 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 구절 몇 개를 인용하는 모습이 문득 공허해 보였다.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케이너스 주교처럼 선천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강한 어조로 정죄하고 부정하는 그들의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 

그후 케이너스 주교는 수차례의 카운슬링 끝에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이런 나를 인정하십니다"라는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다. 

용기를 얻은 케이너스는 아내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놨다. 아내와 케이너스 주교는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고, 둘은 결혼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서로에게 헌신적이었던 결혼 생활이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고 우리 두 사람에게 최상이라고 했다. 

▲ 케이너스 주교는 담당 교구 홈페이지에 두 차례 편지글을 올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통을 겪고 있는 기독 청년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교구 홈페이지 갈무리)

40년을 함께 산 아내도 모를 만큼 철저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겨 온 케이너스 주교는 4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커밍아웃했다. 지역 교구의 고등학생과 청년들이 모인 여름 캠프였다. 

당시 말씀 주제는 마가복음 2장 1~12절 나오는 중풍병 환자의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고통을 겪던 중풍병 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은 것처럼, 젊은이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다른 청년들의 간증을 듣던 중, 케이너스는 문득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자기 혐오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케이너스 주교는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후 깨달은 바를 청년들과 나눴다. 그는 "하나님이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나의 죄는 지금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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