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신분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시작한 건 불과 50여년 전이다. 흑인보다 조금 늦게 이민 온 아랍인들은 2000년 9·11 테러 이후 지금까지도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는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편견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이 통했던 걸까. 미국에 사는 무슬림들이 어려움에 처한 흑인 교회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6월 17일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의 총격 사건이 시작이었다. 20대 백인우월주의자가 성경 공부를 위해 교회에 모인 흑인 9명을 무차별 총격으로 죽인 후, 미국은 인종 차별 논란으로 들끓었다. (관련 기사: 성경 공부하던 교인들에게 총기 난사, 담임목사 등 9명 사망) 이후 열흘 동안 남부 지역에서만 8개의 흑인 교회가 불탔다. 그중 네 곳은 방화로 결론 났고, 두 곳은 누전 등 전기 문제였다. 나머지 두 곳은 아직 원인을 조사 중이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흑인 교회에서만 화재가 발생한 걸로 보아 인종차별에 기반한 증오 범죄로 추정하고 있다. 

흑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교회가 불타 버리자 이를 딱히 여긴 사람들이 교회 재건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이슬람교인들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인종차별무슬림공동회의', '뉴욕아랍미국인협회', '우마와이드' 이렇게 세 단체가 연합해 화재 피해를 입은 흑인 교회들을 돕기 시작했다. 

▲ 7월 3일 미국 무슬림 단체 세 곳은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지난 6월 인종차별 추정 범죄로 화재 피해를 입은 흑인 교회를 돕기 위해서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 갈무리)

이들은 7월 3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사랑으로 응답하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교회 방화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흑인 교회를 재건하고, 함께 증오에 맞서자고 호소했다. 주최 측은 라마단이 끝나는 7월 18일까지 모금할 것이며 달성 목표는 1만 달러(약 1,164만 원)라고 했다. 

무슬림이 흑인 기독교인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은, 신앙인으로서 예배당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알기 때문이다. 글을 올린 파티마 나이트(Faatimah Knight)는 "모든 예배 장소가 피난처다.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세상이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될 때 예배당은 안식을 주는 곳"이라고 했다.

유색인종으로서 느끼는 동질감도 흑인 기독교인을 돕는 데 한몫했다. 반인종차별무슬림공동회의는 흑인 교회 방화가 인종차별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무슬림 또한 미국 사회에서 비슷한 차별을 겪고 있다고 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나미라 이슬람(Namira Islam)은 "증오 때문에 불에 탄 교회를 도와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행동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금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이슬람계를 대표하는 이맘 자이드 샤키르(Zaid Shakir)는 라마단 기간이기에 다른 신앙인을 돕기 더 수월하다고 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은 평화의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샤키르는 "라마단 기간 동안은 무슬림들이 매일 모스크에 방문하기 때문에 예배당이 주는 마음의 평안을 더 잘 경험할 수 있다. 때문에 다른 신앙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으로 응답하라'는 원래 1만 달러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모금이 끝난 7월 18일, 총 2,016명이 참가해 10만 460달러(약 1억 1,660만 원)가 걷혔다. 나미라 이슬람은, 방화로 피해 입은 네 곳의 교회 중 두 개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슬람은 이번 행동으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고 했다. 증오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범죄에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함께 대응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서로를 외면했던 두 종교가 더욱 긴밀하게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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