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일장신대학교 차정식 교수가 쓴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3년간 연구해 온 결과물이다. 공들여 지은 작품이었지만 차 교수는 이 글을 책으로 낼 마땅한 출판사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차정식 교수는 SFC(학생신앙운동·김동춘 대표간사)출판부를 알게 됐다. 마침 SFC출판부 편집장인 김성민 목사가 '짓다'라는 새로운 인문학 브랜드를 기획하던 때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에 속한 기관인 SFC는 '보수 교단의 선교 단체'라는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 인문·교양을 전문적으로 다뤄 보려고 했다. 서로의 필요성을 공감한 차 교수와 김 목사가 합력해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은 2015년 4월,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러나 이 책은 SFC출판사 소속 브랜드 '짓다'가 낸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됐다. SFC 출판위원들 중 고신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SFC 간사들은 "이게 SFC가 낼 만한 책인가, 자꾸 이렇게 SFC 지향과 크게 차이나는 엉뚱한 짓들을 하는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차 교수의 책이 '정통 개혁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일부 교단 인사와 SFC 간사가 김 목사를 비롯한 출판부의 움직임에 불편함을 느끼자, SFC 지도부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논란의 와중에 김성민 목사는 편집장직을 사임했다.

김성민 목사는 7월 22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심경을 밝혔다. 김 목사는, "주변에서는 SFC에서 좋은 책 냈다고 인정해 주는데, 정작 내부에서는 평가를 제대로 해 주지 않고 오히려 이념적으로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김성민 목사는 SFC 내에서 자신의 행보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SFC 내에 신학적 스펙트럼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통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이전부터 공동체 사역이나 사회 현안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진보적인 활동을 한다'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김 목사의 교회론을 의심한다거나, 그에게 신학적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책'이라는 유형의 결과물까지 만들어 낸 게 기폭제가 됐을 것이라고 봤다.

<뉴스앤조이>는 SFC의 핵심 간부에게도 이번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들어 봤다. 그는 말하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출판부 내부에서 암암리에 이런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쌓여 왔던 갈등이 이번 일이 계기가 돼서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성민 목사를 몰아내려거나, 보수 진영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문제를 키운 건 아니라고 했다.

그도 SFC의 기본 토대가 고신 출신의 정통 개혁주의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아무리 소수라 해도 교단 내에서 신학적인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책의 어떤 점이 교단의 정통 개혁주의 노선에 위배된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래도 차 교수의 책이 성경을 양식비평적으로 바라본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역사책' 정도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콕 집어 '어느 부분이 문제다'라고 이의가 제기된 적은 없지만, '공동체'를 강조하는 등 책의 전반적인 맥락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김동춘 SFC 대표간사도 이번 일을 대하기가 조심스럽고 난감하다고 했다. 그는 7월 23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성민 목사가 '짓다'를 만들고 인문학을 다루기로 했는데, 하필 첫 책이 신학 서적이었던 점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안 좋게 보인 것 같다. SFC출판부 내에서도 권연경 교수(숭실대)나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책도 내는 등, 나름대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SFC출판부' 이름으로 책을 냈으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첫 책을 진보적인 관점이 담긴 신학 서적을 내니, 보수적인 사람들은 SFC가 진보적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춘 대표간사는 "차 교수의 책에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설화'로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 있다. 이게 신학적으로 맞다, 안 맞다를 떠나서 고신 교단 내의 '보수적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SFC의 보수성'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차정식 교수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정통 개혁주의를 위배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쓴 글에 "자신들이 정해 놓은 모범 답안의 거푸집에 꼭 들어맞지 않는 것들마다, (정통 개혁주의라는) 노선의 권위를 빌려 콕 찍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단세포적 정신세계는 아무리 이해하려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괴물 단지 같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차정식 교수는 정통 개혁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처사'라고 했다. 그는 <뉴스앤조이> 기자에게 "내 책이 어느 부분에서 정통 개혁주의에 위배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차정식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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