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법제화했다. 미국의 한인 교계도 이 결정을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난 7월 5일, 미국 와싱톤한인교회에서 시무하는 김영봉 목사가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문은 이틑날 <뉴스앤조이>에도 실렸다. (관련 기사: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

설교문에서는 성서학자이자 목회자로서 김영봉 목사가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교회가 있는 버지니아 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전부터 동성 결혼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만큼 교인들에게 동성 결혼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는 일차적으로 설교를 듣는 미국 한인 교회 회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그러나 이 글은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설교문도 '동성애 절대 반대'를 외쳐 온 기독교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김 목사가 쓴 글이 명확하게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선천적인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성애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그들에게 김 목사의 설교문은 고려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설교 학교 특강 강사 등으로 한국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김영봉 목사를 7월 16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김영봉 목사는 미국 와싱톤한인교회 담임목사다.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자 7월 5일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이라는 설교문의 길이나 내용으로 볼 때, 갑자기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이 주제로 설교하게 됐나?

미국은 오래 전부터 동성 결혼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교인들이 살면서 실제로 겪는 부분이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성 소수자를 만난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동성애자일 수 있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 동성 부부가 입양한 아이일 수 있다. 학부모 모임을 갔는데 내 아이 친구의 엄마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 이전보다 더 자주 만난다. 일상이 된 셈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인 중 딸이 레즈비언인 경우가 있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딸이 어느 날 동성 연인과 결혼한다고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중간에 끼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나에게 물어 왔다. 나는 '신앙적으로는 나도 인정 못 한다. 그러나 남편 분처럼 아예 안 보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 결혼식에 가시라'고 했다. 가서 딸에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오라고 했다. 

또 한 번은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이 '게이도 구원받아요?'라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시작한 질문이 나중에는 강도가 심해지면서 게이를 조롱하기까지 이르렀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 당황했다. 후에 그 선생님은 이 문제에 대해 교사들이 같은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교역자에게 건의했다.

마침 교회 안에서 '동성 결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원래 올해 가을쯤 동성 결혼과 관련해 교인들이 참여하는 그룹 스터디를 할 계획이었다. 최종 입장은 아닐지라도 교회가 하나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연방대법원 발표가 났고, 교인들이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해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설교를 들은 교인들 반응이 궁금하다. 

교리적으로 엄격한 배경을 가진 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너무 두둔하는 것 아니냐, 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고맙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렇게 예민한 문제를 다뤄 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잘 모르겠는데, 미국에서는 한인 교회가 이 주제를 공공연하게 다룬다는 것이 쉽지 않다. 교인들의 대다수는 내가 한 설교 내용에 공감했다. 자신들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잘 정리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 동성 결혼은 이제 현실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부분인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맙다는 말인가?

그렇다. 미국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오간다. 그러나 아직 한국 기독교는 동성 결혼과 관련해 들을 수 있는 설교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김동호 목사처럼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말해도 악플이 판을 친다. 이민 한인 교회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분명 동성애자를 많이 만나고 친구 중에도 있을 수 있는데도 이런 부분은 설교에 담지 못한다. 주로 동성애자를 강력하게 정죄하는 설교만 선포된다. 교인들은 내 설교를 듣고 현실을 반영한, 다른 목소리를 내 줬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 설교문이 교인들에게 선포된 것 외에, 온라인에 노출되면 독자층이 다양해진다. 교인 외에 따로 염두에 두고 쓴 그룹이 있나.

앞으로 여러 목회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인데 목회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는 미국에 있는 이유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찍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잘 정리해서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목사들이 동성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 설교문에 달린 댓글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유형이 비슷하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동성애', '사탄의 조종' 같은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무조건 동성애는 '죄', '나쁜 것', 이를 행하는 사람은 '사탄에 사로잡힌 자'라고 한다. 이렇게 발언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이 달라서 대화를 이어 가기 어렵다. 자기 믿음이나 신념 체계, 신앙관을 너무 맹신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된다. 한국에 오기 전, 젊은 교우 한 분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 살아 계실 때 많은 분들이 치료를 위해 기도에 동참하셨다. 그런데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는 LA에 사는 어떤 분이 그분의 사망 소식 밑에 이런 글을 달았다. '죽은 자는 천국에 가서 이제 곧 다가올 대환란을 피할 것이다. 그가 떠난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 글을 읽고 좀 충격받았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목회하면서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무언가를 너무 확신하고 평균 이상으로 몰두하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다. 자신이 믿는 것에 머리를 쑤셔 넣고 이게 맞는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면서 속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적으로 지나친 확신은 중독이다. 교인들 중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사람도 있고 이 땅의 모든 행동을 마귀가 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말끝마다 '이 악한 세대'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어떤 하나에 몰입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 안에서만 안심하고 만족한다. 그런 것으로 나를 붙들어 주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심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 김 목사는 동성 결혼이 법제화했다고 해서 일부다처제나 소아성애도 합법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동성 결혼 합법화는 그만큼의 사회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교계는 앞으로 '동성애는 죄'라는 설교도 못 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기독교가 탄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동성 결혼이 합법화했으니 앞으로 수간·일부다처제·소아성애 등도 정상처럼 여겨지는 건 시간 문제일 거라는 주장을 편다. 정말 그런가?

수간이나 일부다처제의 문제는 사실 잠깐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동성애 문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동성애자가 있다는 공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소아성애자들이 자기들도 '취향'인데 인정해 달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다. 일부다처제나 수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강단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시대가 오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목회자들이 먼저 '동성애는 죄'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건 어떨까. 은혜 안에서 죄를 극복해야지 율법주의적으로 죄 하나만 지어도 지옥 갈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율법주의 시각에서 죄를 이야기하고 동성애를 정죄한다. 그래서 동성애자들도 그런 얘기를 하지 말아 줬으면 하고 목회자들에게 기대하는 것 같다. 

기독교인이라면 본능적인 거부감을 바로 자기 입장으로 표명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비이성적이고 근거 없는 감정이라면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짙은 거부감이 생긴다면, 왜 이런 거부감이 드는지 그 원인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고민한 후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동성애는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한 사람들이, 동성애는 분명히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해도 동성애 성향이 고쳐지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되는 억압과 불평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보니 지금의 결과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비판할 때, 아무리 내가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더라도 실제 그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 미국은 이제 성 소수자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전향 치료'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심리학회는 과도한 전향 치료로 생기는 부작용을 인정했다. 작년 12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하기 원했던 10대 소년은 부모가 전향 치료를 강요하자 자살했다. (관련 기사: 소녀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죽음) 과거 전향 치료에 앞장서던 기독교 단체들도 문을 닫고 있다. 목사님은 어떤 입장인가?

설교문에서, 선천적으로 동성애를 타고난 사람이 있기 때문에 '타고난 동성애'라는 표현을 썼다. 이 부분은 동성애자들이 고쳐지지 않는 것을 이미 목격했기 때문에 쓴 것이다. 하지만 한 아이가 아주 어린 나이에 동성이 좋다고 하거나 다른 성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걸 바로 인정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이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굉장히 유동적이다. 그런데 요즘 미국은 너무 빨리, 또 쉽게 성 정체성을 단정하고 인정해 준다. 현재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도 성 전향 치료를 금지하고 있고 실제로 여러 주에서도 못 하도록 막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이 불편하다.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어린 나이에 동성애자라고 인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어떤 것이 정말 이 아이를 위한 일인지 고민하면서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도 안 될 때, 그럴 때는 그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명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탈동성애 치료 등 외부적인 요건을 가해서라도 동성애자를 무조건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탈동성애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고쳐질 수 없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다 고치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 앞으로 동성 결혼에 대한 논란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계속될 것 같다. 찬반 양쪽 진영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경험으로 봤을 때 동성애는 '예스' 또는 '노' 사이에 제3의 길이라는 게 없다. 토니 캠폴로(Tony Campolo) 등도 중간 입장에서 양쪽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결국 막판에 한쪽을 선택했다. (관련 기사: 팀 켈러 vs 토니 캠폴로, 동성 결혼 찬반 대립) 나도 아직 고민 중이지만, 설교문에서는 분명하게 '노'라고 의견을 낸 것이다. 다만 '노'라고 외친 사람들 중에도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똑같이 '노'를 외쳤다고 해서 모두 다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주의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스'를 외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예스'를 외쳤다고 해서 모두가 동성애는 아름답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쳐지지 않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차원에서 '예스'라고 외치는 것이다. 

양쪽 진영 다 중간 지대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정한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이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설득해 주었으면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동성애에 혐오감을 표현하며 정죄하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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