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는 조심스러워 말을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요하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다. 슬픔을 당한 이들을 돕는 것은 어렵다. 위로라고 하지만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무관심하면 서운해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나 또한 목회를 하면서 죽음을 당한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무관심한 적도 있고, 교과서식 답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많은 이들은 이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고통은 타자가 공유할 수 없는 고립과 정신적 소외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고립과 소외는 타자로부터 일어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고통당하는 그 사람에게 내재한다. 고통을 당하는 순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왜?'라는 물음인데, 이 물음에는 '왜 나만 당해야 하는가?'와 '하필이면 내가 당해야 하는가?'라는 원망이 스며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타인들로부터 배제당하고, 고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높고 두꺼운 분리의 담을 쌓는다. 그 담을 허물고 치유의 공간으로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스스로 지금 나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말해 주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해 보았다. 당사자인 나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 <슬픔학개론> / 윤득형 지음 / 샘솟는기쁨 펴냄 / 248쪽 / 1만 4,500원

"삶은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슬픔은 표현됨으로 치유된다!" 문장이 가슴을 울린다. 죽음은 삶을 진실하게 만들어 준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태어날 때는 주민등록순이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일 때가 많다.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황한다. 죽은 당사자는 말이 없지만, 남겨진 유가족들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는 아픔으로 남겨진다. 죽음도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는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일러 준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인식시켜야 할지도 알려 준다.

저자는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원 기도를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가 던졌던 질문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였다(26쪽). 하나님은 바위처럼 요동하지 않는다. 때론 무정하고 비정하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절망과 실의(失意)는 삶의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집착하게 만든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고 하거나, 하나님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위로는 오히려 상처를 주고,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과 슬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에게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위로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략) 혹은 적당한 말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그저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라고 말하는 것 또한 삼가는 것이 좋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만도 못하다." - <슬픔학개론> 26쪽

차라리 입을 다물고 손을 잡아 주는 것이 훨씬 낫다. 수년 전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울고 있는 성도를 향하여 집례 목사는 "집사님 그만 우세요. 천국에서 만날 텐데 왜 그리 슬퍼하십니까?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축복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경험 속에도 비슷한 사례가 읽힌다(87쪽). 교리적으로 죽음을 풀어 나갈 때 슬픔을 당한 자들은 큰 고통을 당한다. 인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뻔한 공식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럼에도 소위 믿음이 좋다 하는 이들은, 대체로 죽음은 곧 천국이니 슬퍼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공식을 대입한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완벽한 위로는 불가능하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37쪽)." 또한 '극복의 대상'도 아니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38쪽). 있는 그대로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애도(哀悼)의 과정인 것이다.

저자는 모두 7장으로 나누어 슬픔의 문제를 다룬다. 대체로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문제를 다룬다. 거대한 슬픔에 노출된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해 주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슬픔의 치유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슬픔의 치유 전문가답게 슬픔의 이론적인 부분에서 죽음을 어떻게 직면시킬 것인가, 자녀들에게 죽음을 교육하고(3장), 병원과 사회 속에서 삶과 죽음을 나누는 방법(4, 5장) 등을 세세하게 알려 준다.

151~152쪽에 소개된 알렌 울펜 박사의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 11가지 원칙은 슬픔을 공유하기 낯설어 하고 방법을 몰라 당황하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1). 슬픔을 해결해 주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야 하고(2),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4). 해석자가 아닌 증인 되어 주라(5). 이끌지 말고 곁에 있어 주라(6). 말로 채워 가지 말고 침묵의 거룩함을 발견하라(7). 혼란과 혼동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상황을 그대로 존중하고(9), 가르치려 하지 말라(10). 즉 신영복 교수의 조언대로,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성장의 논리에 함몰되어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하고 소외시켜 온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이젠 앞만 향해 달려가는 급행열차가 되지 말고 천천히 주변을 되돌아보는 완행열차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에게 주는 최고의 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영적 돌봄을 추구하는 목회자와 교사, 구역장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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