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사)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의 칼럼으로 2013년 6월 7일에 쓰인 것입니다. 기경원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경영함으로 기업 현장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을 희망하며 설립한 단체입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올리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경영이나 리더십에 관련한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가히 기부 문화의 빅뱅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의 사회 공헌, 개인 고액 기부, 개인의 월정 기부, 온라인 기부 등 기부는 전방위적인 차원에서 폭발하고 있다. 대학, 의료 기관, 문화 예술 기관, 국제 구호단체, 시민사회단체 등 기부 문화를 촉발하는 기관들의 모금 활동도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한국을 기부 문화의 후진국으로 부를 수가 없다. 몇몇 국제 구호단체들의 모금 실적은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이다.

사회적 경제, 박애자본주의, 기업 공유 가치 등의 트렌드는 자선 문화의 생태계를 한층 넓고 깊게 만들고 있다. '나누는 삶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확산되는 것만으로 감동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어떤 나눔이냐?'를 묻는 시대다. 양적인 자선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혜로운 사랑의 물음이 우리 앞에 있다. 몇 가지 천착하고 답을 찾아야 할 분야를 짚어 본다.

1. 자선이 정의를 대체할 수 없다

구약성서에서 자선을 나타내는 '쩨데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언어적인 병목 현상을 경험한다.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쩨데카는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정의를 나타내는 '다카이오수네'로도, 자선적 기부를 의미하는 '엘레에모수네'로도 번역된다. 쩨데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자선을 말씀하실 때는 정의와 자선을 다 포함하는 의미의 쩨데카를 염두에 두셨다. 성경에서는 정의를 생략한 자선은 온전하지 않다. 현대 한국 기독교의 자선에 대한 접근에는 이 둘을 나누는 부자연스러운 분리 현상이 만연해 있다. 기업 공유 가치(Corporate Shared Value), 자본주의4.0 등의 논의는 기업 차원에서 바름과 배려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나누는 기업 이전에 바른 기업을 원한다. 바른 기업은 나누어야 하지만 나누는 기업이 다 바른 기업은 아니다.

2. 투명성과 윤리성의 요구가 무섭게 확산될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좋은 일을 잘해야 한다. 비영리단체의 책무성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더 엄중해져 갈 것이다. 미국의 경우 유대교의 윤리적 기준과 기독교의 윤리성에 대한 논의가 기부 문화의 세밀한 부분까지 촘촘하게 정리되어 있다. 100여 년의 치열한 논쟁의 산물이다. 기독교 단체를 포함한 비영리단체는 윤리성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다소간은 유보해 두었는데, 지금은 지배 구조의 후진성과 퇴행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기부자들은 자신이 기부하는 단체의 건강성과 지속 가능성에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회계적 투명성뿐만 아니라 기부와 관련한 다양한 윤리적 판단에 대한 요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아니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라는 놀라움이 커질 것이다.

크리스천 기부자들은 비영리단체에 대해서 까다로운 질문들을 더 용감하게 던져야 한다. 1) 지배 구조는 건강한가? 2) 사업의 사회적 효과는 어떠한가? 3) 회계의 투명성과 프로세스의 윤리성은 어떤 수준인가?

3. 국제적 협력과 전략적 조율의 필요성이 확대된다

국제 구호 분야에서 한국 단체에 대한 대체적인 평은 주로 '단독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몇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 1) 더 큰 사회적 효과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다. 2) 기술적 고립으로 조직의 역량과 윤리성 그리고 사회적 효과가 향상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영어로는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 'gift'가 독일어로는 '독(poison)'이라는 의미가 있다. 선물은 때로 그 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우리가 선의로 아프리카로 보내 준 헌 옷이 그곳의 섬유산업을 붕괴시키고, 아이티 지진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답지한 막대한 물량의 생수는 현지의 물 산업의 근간을 파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한국의 수많은 국제 구호단체들의 사업 역량이 모금 역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많은 단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열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기부자들은 그런 방향을 권고해야 한다.

최영우 / 도움과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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