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자이다.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책 제목부터 읽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분의 정원에서 부르는 노래>(샬롬가정교육문화원). 바나바훈련원 초대 원장을 지낸 이강천 목사가 쓴 책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쓰고(시) 찍은(사진) 책이다. 이강천 목사가 많은 책을 썼지만 그의 책 중 이건 좀 특별하다.

벌써 오래 전이다. 이강천 목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생활을 하면서 손에 잡은 것이 카메라였다고 한다. 앵글로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잡다 보니 사진작가가 되었고, 그 신비함과 황홀함을 운문으로 기록하다 보니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작가의 말' 중). 부러울 일이다. 책 표지에는 그의 시를 '영성시'로 명명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어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특별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시를 쓰는 것이요, 또 작품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강천 목사는 이것에 부름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귀한 소명자이다.

이 책은 270여 쪽에 모두 8부로 나뉘어 각부 15수씩 도합 120수의 시를 담고 있다. 눈이 시릴 만큼 깨끗한 사진도 120장, 아니 딸린 아기 사진과 각 부 소개 면의 사진까지 합하면 140여 장이 첨부되어 있다.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 <그분의 정원에서 부르는 노래> / 이강천 지음 / 샬롬가정교육문화원 펴냄 / 270페이지 / 1만 5,000원

시험과 연단 그리고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기간 등. 등재된 시가 120수이니 40을 세 번 반복한 셈이다. 이 책에 담긴 시와 사진은, 작가가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신비를 찬양한 것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그는 책 초입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고난이 유익이라는 성경 말씀을 깊이 체험한' 결과물임을 고백하고 있다.

시가 있고 시화집(詩畵集)이 있다. 시화집은 그림에 시를 붙여 놓은 책이다. 한 사람이 아닌 시인과 화백이 힘을 합쳐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알기로는 시와 사진을 한 책에 담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인 예술가가 그만큼 드물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시 사진집은 두 사람(시인과 사진가)이 하기 힘든 작업이란 말도 된다.

이강천 목사가 이번에 이 일을 해냈다. 이 책에서 시를 읽으면서 곁들인 사진을 보노라면 하나님의 신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창조 섭리의 신비로움을 완미하는 즐거움! 시적 언어로 그리고 카메라 앵글로 담아낸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전도를 나가다 보면, 불신자들로부터 가끔 하나님을 보여 주면 교회 나가겠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럴 때면 초대교회 때의 교부 이레니우스(Ireneaus) 이야기를 꺼낸다. 즉 의심함으로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더라는.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런 예화가 그렇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앞으로 나는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이강천 목사의 <그분의 정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시 사진집을 읽어 보라'고 권할 것이다. 그분(하나님)께서 빚어내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고 사진으로 옮겨 놓은 것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의 외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짧게는 40자('겨울 숲 풍경')에서 길게는 305자('일곱 날의 빛 같아라')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곁들인 시에서 시인의 언어 조탁도 독자를 황홀하게 만들지만, 매 수마다 고백되는 자기 겸손과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읽는 이의 믿음까지 점검하게 만든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 한 목회자는 시편의 번역 작업에 종사하면서 어느새 시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목회자들의 떠돌아다니는 신앙시를 접할 때마다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신앙시의 진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아가 진정한 신앙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강천 목사의 시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의 시는 절제된 감성에 잘 다듬어진 언어, 거기에다 어디서 출발했든 하나님의 따뜻한 품에 안기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시를 정독하지 않는다. 가볍게 읽기에 좋은 것이 시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럴 수 없었다.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풀과 꽃 그리고 새와 땅 등 우리의 산하를 정치하게 음미하면서 읽으려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연 아름다움과 신비의 보고(寶庫)란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특권 중 하나는 시적 조어권(造語權)이다. 단어를 문학적으로 다듬어 내는 권한. 이강천 목사도 이 '시 사진집(詩 寫眞集)'에서 그것을 맘껏 행사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빛 그림'(사진), '빛결치는'(빛이 물결 일어나는 것같이), '덩쿨'(덩굴+넝쿨), '아닐네'(아니라네) 등의 어휘를 들 수 있겠다.

문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몫이다.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와 맘몬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깝게 하기에는 버거운 영역이 문학이고 시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만만한 장르가 아닌가 한다. 높은 데가 아닌 낮은 데를 늘 바라보는.

이강천 목사는 '청빈'이라는 시를 통해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온 노 시인의 고백이다.

쌓아둘 것도 없고
움켜 쥘 것도 없다

높은 체할 것도 없고  
오르려 할 것도 없다 

다 내려 놓고 흐르면서
노래할 일 뿐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음에서 오는 병으로 육신이 고통받고 있다. 영적 침체는 믿는 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 이럴 때 이강천 목사의 <그분의 정원에서 부르는 노래>를 읽으면서 마음을 치유받기 바란다. 청징한 사진도 정서를 안돈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자들을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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