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사)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의 칼럼으로 2013년 3월 14일에 쓰인 것입니다. 기경원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경영함으로 기업 현장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을 희망하며 설립한 단체입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올리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경영이나 리더십에 관련한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과거라 부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제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래서 시간이라는 말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틀에서만 존재한다.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이지만 우리네 삶을 둘러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말로는 끄덕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화가 결코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한때 온 세상을 주름잡던 이렇다 할 글로벌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 한때 그것 없으면 사람 노릇도 못 할 것 같았던 필수품(예를 들어 휴대폰 전신인 삐삐)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 춘 지 오래지만 아무런 미련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흘러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멀어져 간다. 일찍이 전도서 기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니 앞으로 올 세대들도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리라"(전도서 1:11, 현대인의성경) "There is no remembrance of men of old, and even those who are yet to come will not be remembered by those who follow."(NIV)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이 채 안 된다는 연구 결과처럼 그 어떤 기업도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 사람도 기업도 시간이 흐르면 다 잊힐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과거는 왜 아직도 우리 인생에 그림자를 길게, 그리고 짙게 드리우고 있는가?

회계학에 매몰원가(sunk cost)라는 개념이 있다. 매몰원가란 한 번 지급한 비용은 이미 지급한 것이므로 다시 되돌리지 못하며, 미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원가를 지칭한다.

오래전 필자는 제주도에 출장갈 일이 있어서 이른 새벽 동네 정거장에서 공항버스를 30분이나 기다린 적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택시가 공항버스 요금보다 약간 비싼 가격으로 공항까지 가겠느냐고 물었으나 그때까지 기다린 30분이 억울해서 버스를 더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는데 기다린 30분이 일종의 매몰원가인 셈이다.

교과서적으로는 의사 결정을 할 때 매몰원가에 더 이상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의사 결정 시점에서의 미래에 유입될 효익과 미래에 지출될 비용을 비교하여 효익이 비용보다 크면 그 사안을 채택해야 한다. 위 필자의 예에서는 기다린 30분을 아쉬워하지 말고, 택시 기사가 의견을 타진하는 시점에서, 택시비라는 비용과 시간 내에 도착하여 제주도 출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효익만을 비교하여 의사 결정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매몰원가는 미래 의사 결정과 연관이 없어야 함에도 왜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매몰원가를 포함시켜 의사 결정을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까. 고속도로 건설을 예로 들어 보자.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사전 수요예측이 잘못되어 완공을 하여도 손해가 날 것이 너무 분명함이 밝혀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다면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식과는 반대로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고속도로를 완공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하므로 더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터이나 그중 하나가 정당화 이론(justification theory)에 의한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잘못된 의사 결정일지라도 이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의 판단이 옳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A라는 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본다. A사는 이미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새로운 제품의 출시가 임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경쟁 업체 B사에서 한 발 빠르게 더욱 발전된 신기술을 이용하여 신제품을 발표했음을 알게 되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A회사가 향후에 신제품을 출시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럴 때 A회사 최고 경영자는 어떤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가. 만약 완제품을 생산하려면 앞으로도 막대한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며, 경쟁에서도 불리할 것이 분명하다면 아쉽더라도 그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들은 이미 투자한 금액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오히려 더 투자함으로써 손해가 배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과거는 과거다. 이미 지나간 것이다. 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면 오늘이라도 해당 프로젝트를 내려놓고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선택이다. 기업 경영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누렸던 영화이든 과거에 당했던 치욕이든, 내려놓는 것이 먼저다. 그 다음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간, 주어진 능력과 자원을 가늠하여 남은 날들을 지혜롭게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가.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며 갈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로지 우리의 달려갈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할 최선의 길일 것이다. 남은 날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황호찬 / 세종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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