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7일, 미국에서 인종 혐오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교회에 모여 성경 공부하던 흑인 9명이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청년 딜런 루프(Dylann Roof)가 쏜 총에 숨졌다. 피해자들은 일과를 마치고 성경 공부 모임을 하던 중이었다.(관련 기사: 성경 공부하던 교인들에게 총기 난사, 9명 사망)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겨 준 이번 사건은,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미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사건이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바이블벨트(Bible Belt)라고 불리는 보수 기독교 지역의 시작점이다. 바이블벨트에 속한 주들은 미국에서 기독교인 분포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찬성했다. 성경 구절을 근거로 흑인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 지역은 기독교 근본주의에 근거해 낙태와 동성 결혼 반대에도 앞장섰다. 무차별 총격이 일어나도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주민이 이 지역에는 많다.  

이런 지역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청년이 흑인 9명을 총으로 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사건 후 가장 큰 화제는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하겠다고 한 것이다. 21일, 피해자 가족 중 몇몇은 보석 여부를 심사받기 위해 재판받는 딜런 루프를 만났다. 화상을 통한 원격 만남이었다. 루프는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피해자의 가족은 딜런을 "용서한다"고 했다. 그에게 어머니를 잃은 한 여성은 "당신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빼앗았다. 나는 더 이상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됐지만,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에서 있었던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딜런 루프(Dylann Roof). 그는 체포된 후 흑인을 혐오했기 때문에 사건을 일으켰다고 고백했다. 사건 후 있었던 약식 재판에서 그는 유가족들로부터 "내 살점 하나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아프지만,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라는 말을 들었다.(NowThis 동영상 갈무리)
 

담임목사를 잃은 교회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무차별 총기 난사 후 처음 맞는 주일예배에 교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교회 주변에 모여든 추모객들도 #charlestonunited(하나 된 찰스턴)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도회를 열었다.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다 함께 피켓을 들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들은 "혐오는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하게 한다"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루프가 흑인 교회를 택한 것은 그만큼 흑인 공동체에서 교회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AP>는 역사적으로 흑인 교회가 흑인들의 삶에서 모퉁잇돌 역할을 해 왔다고 보도했다. 노예 생활로 자유롭지 못한 몸과 마음을 교회에 와서 위로받고 달랬다는 것이다. 노예해방 운동과 흑인 인권 투쟁의 중심이 된 것도 교회였다. 그래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잦은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를 공격한 사실보다, 어쨌든 '교회'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더 초점을 맞췄다. 루프가 경찰에 잡힌 후 인종 전쟁을 유발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했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은 인종차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총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을 미리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klin Graham)은 평소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인을 공격하는 건 '악마적인 행태',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기독교인을 공격한 백인 딜런 루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대신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은 총기를 규제하는 법을 더 만든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 이번 사건은 미국 남부 지역의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공공 건물에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 게양 여부를 놓고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엇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의견이 엇갈렸다.(<이코노미스트> 기사 갈무리)

이번 사건은 엉뚱한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딜런 루프의 사진에 등장한 '남부연합기(The Confederate Battle Flag)'가 그 대상이었다. 남부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를 인정한 남부 13개 주의 연합을 의미하는 깃발이다. 이 깃발은 흑인과 백인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백인에게는 자랑스러운 남부의 문화 유산이지만, 흑인에게는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를 나타내는 깃발일 뿐이다. 

사건이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 건물에 이 남부연합기가 걸려 있던 것이 논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남부연합기 계양 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원과 침례교 목사이자 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는 남부연합기를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부연합기가 인종차별의 상징이라기보다, 남부의 역사가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남침례교(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종교와윤리자유위원회 위원장 러셀 무어(Russell Moore) 목사는 두 사람과 의견이 달랐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인 아이들을 노예로 삼을 때 이 깃발을 사용했다. 또 인권 운동을 하던 흑인 교회와 목회자와 가정을 테러하고 십자가를 불태우는 데도 이 같은 상징을 사용했다. 십자가와 남부연합기는 공존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결국 6월 22일, 니키 헤일리(Nikki Haley) 주지사는 남부연합기를 주에 소속된 모든 건물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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