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사)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의 칼럼으로 2013년 3월 14일에 쓰인 것입니다. 기경원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경영함으로 기업 현장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을 희망하며 설립한 단체입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올리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경영이나 리더십에 관련한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최근 국내 몇 공장에서 잇달아 사고가 발생했다. 그중에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성공적인 경영의 지표로 효과성과 효율성이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동일한 수준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안전이다. 안전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 한 순간의 사고가 조직의 생존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 조직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자연환경에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안전을 확보하는 데 가장 큰 적은 교만이고,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10여 년 전 미국의 Institute of Medicine에서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의료 기관에서 한 해에 적게는 4만 4,000명에서 많게는 9만 8,000명이 의료 과실로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GDP의 15%에 달하는 막대한 의료비를 사용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나라의 의료 기관에서 이처럼 많은 수의 사람이 의료 과실로 사망한다는 이 보고서는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는 자료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미국을 발칵 뒤집었고,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이 미국 의료계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후 제도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인증제가 도입되었고 개별 기관 차원에서도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적 개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개별 의료 기관이나 개인 수준에서 환자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문제는 숨겨진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서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 보고서의 제목은 <To err is human>이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스템으로 사람의 실수를 보완해 보자는 의도가 담긴 제목이다. 의료 과실의 원인을 서비스 제공자의 부주의나 실수로만 돌려 버리면 시스템에 숨어 있는 결함은 드러나지 않은 채 지나가게 되어 다음에 다른 사람이 또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 보고서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부끄러운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직의 일상적인 활동을 잘 수행하는 것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조직에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은 일상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사고의 발생은 조직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무시하는 조직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일상적 활동의 와중에 어떤 이유로든 조금씩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규칙을 어기는 사례가 증가한다. 효율의 향상, 비용의 절감은 안전에 대한 가치와 경쟁하는 최대의 가치이다. 효율과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다시 안전을 강조하게 된다. 그 사고가 다행스럽게도 치명적인 사고가 아닐 경우에 그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치명적인 사고라면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서 안전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때 사고의 위험은 높아진다.

조직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 그러나 어떠한 안전장치에라도 작은 결함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교롭게도 각 단계의 안전장치에 있는 작은 결함들이 동시에 나타나게 될 경우에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어 안전하다고 장담하던 곳에서도 확률은 낮지만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고 없이 운전을 해 온 사람은 부주의하게 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기보다는 무사고를 자랑하지 않고 늘 긴장하고 조심하였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는 안전 상황은 교만한 마음으로 안전을 확신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조직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하고 조심하여 초기 단계의 안전장치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곧 조치를 취하는 매우 동태적인 긴장 상태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기간이 지속되면 안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보다는 생산과 성장, 효율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어느 기간 동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안전과 같은 가치는 쉽게 잊힌다. 그렇기에 안전은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해야 한다.

사고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예상만큼 사고가 나지 않는 조직들은 문제를 최대한 조기에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는 확산을 방지하고 신속하게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하여 이들 조직은 '기쁜 소식'만 들려올 때도 의심하고 적극적으로 '나쁜 소식'을 찾는다. 이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려는 시도와 같다. 조기에 발견된 질병의 치료가 쉬운 것처럼 조기에 발견된 조직의 문제는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나쁜 소식'을 찾는 것이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을 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 차리고 일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으로는 결코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사람은 실수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일련의 장치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사람으로 하여금 실수하게 만드는 시스템적인 요소는 무엇인지 점검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조직의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삶을 성찰하듯이 경영의 안전에 대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성찰하여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김광점 / 가톨릭대 의료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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