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이성애를 지지한다고 하면 뭔가 어색하죠. 이성애는 지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이기 때문이죠. 누군가의 성적 지향에 대해 지지와 반대라는 말을 한다는 게 그만큼 허망하고 말이 안 된다는 것이죠. 이성애자들은 묻습니다, 동성애와 이성애는 다르다고, 동성애는 이성애처럼 자연스러운 성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이죠. 왜 그렇게 말할까요? 역사를 들출 필요도 없이 동성애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하나의 성적 지향인데 많은 이성애자들은 그들을 이상하고 불온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동성애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이성애자인 저도 한때는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죄인이라도 사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차별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금은 비겁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었죠. 그때 저의 신앙적 양심엔 그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곁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 중엔 분명히 동성애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이해나 정보나 지식이 없었죠. 단지 언론이나 영화나 드라마 혹은 교회에서 언급되는 정도 수준이었죠.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성애자인 내가 굳이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건 내 일도 내 가족의 일도 내 친구의 일도 아니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동성애자 한 분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날따라 그 뉴스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치 왕따로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던 한 학생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지막으로 제 몸을 던져서 세상을 향해 호소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 많이 아팠구나, 힘들었구나, 괴로웠구나, 슬펐구나…. 제 목숨을 지킬 수 없을 만큼 자존감이 무너지고 존재가 찢겨진 그가 할 수 있는 선택, 아니 세상으로부터 밀려나 벼랑에 몰려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슬픔의 깊이에 닿을 순 없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만큼 인간에게 큰 고통도 없을 겁니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었다는 게 그리도 크게 욕을 먹고 부정당해야 할 만큼 잘못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이성애자인 나를 향해 왜 동성이 아닌 이성을 사랑하냐고 한다면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문득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그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고 허망한지 알게 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 거지, 이성이 이성을, 동성이 동성을 사랑한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에 이르렀지만 신앙적으론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동성애는 무슨 엄청난 죄처럼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생각이 올바른 것인지 또 질문을 해야만 했죠. 그러면서 교회에서 동성애가 왜 죄인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레위기에 나오는 말씀, 바울의 편지 등에 등장하더군요. 조금 놀라웠던 건 교회에서 동성애가 어마어마한 죄처럼 얘기가 되었지만 성경에는 생각보다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에 등장한 이야기는 결국 해석의 문제로 다가오더군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보다는 당시 잘못된 성 문화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역시 레위기에 등장하는 말씀도 문화적인 이유가 큰 것 같았습니다. 바울 역시 유대교 문화권에 있던 사람이 그리스의 문화를 접했을 때 오는 충격과 놀라움이 더 커 보였습니다. 당연히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와 도덕적 입장에서 보면 이상하고 기이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관계의 문제점 때문일 수도 있었겠죠. 예컨대 그리스의 성인 남자와 소년의 동성애가 매우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바울이 보기에는 그 안에 불평등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가진 건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읽다 보니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다른 성적 지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기록이 담긴 복음서엔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관련해서 매섭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동성애가 그토록 엄청난 죄라면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말씀을 하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복음서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선 동성애에 대해 광의의 해석을 시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진 않았지만 예수님의 메시지엔 동성애가 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식으로요. 그건 너무나 자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동성애를 겨냥해서 짜 맞춘 억지 해석에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결국 광의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기대서 동성애를 어떻게든 죄로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어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천만 번을 양보해서 동성애가 죄라고 한다면 교회가 구약성경이나 바울 서신에 담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예를 들어서 레위기15장에는 남자와 여자의 부정함에 대해 나오죠.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이상하고 괴이할 만큼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죠. 그런데 지금 교회에선 레위기 말씀에 대해 별로 언급도 없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바울 서신에 나오는 여자와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고 교회에서는 수건을 쓰라고 하는 등 문자 그대로 보면 차별적인 말씀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죠. 그 외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으로 보면 도무지 납득하기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보수 개신교는 성경은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죠. 그런 배경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말씀으로 동성애를 정죄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 같은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도 적용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너무나 일관성 없는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자신들의 가치관이나 입장에 배치되고 불편하면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내세우고, 교회의 성장이나 세력화에 불리하거나 교인 수가 줄어들 것 같으면 문자적으로 보지 말라는 식입니다. 매우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레위기 20장 13절에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죄값으로 죽는 것이다”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말씀이 지지하고 있으니 죄 없으신 목사님들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개신교 국가인가요? 신정국가인가요? 개신교의 가치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입니까? 대한민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치관과 종교와 취향을 갖고 살아갑니다. 누구의 가치가 더 우선하고 옳고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정치와 사회체제로 선택한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조정을 하면서 가치를 만들어 가고 운영을 합니다. 그 안엔 다수의 요구도 있지만 소수의 입장을 배려하고 용인합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권리를 빼앗고 인권을 외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효율을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가치의 전시장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가치는 때로는 대결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존중하며 나아갑니다. 그것이 존중되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회는 시민 의식이 실종된 사회이며 민주 의식이 저급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의 민주 의식과 시민 의식 수준이 너무나 낮다고 생각합니다. 왜 개신교적 가치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재단하고 유린하십니까? 동성애가 그렇게 나쁜 것입니까?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의 현장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외면하던 교회가 우리 사회에선 약자일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그 위치를 벗어나가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동성애자를 저지하기 위해 손을 잡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슬픕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무엇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동성애 때문에 저출산이 왔습니까? 동성애 때문에 경제가 어렵습니까? 동성애 때문에 취업이 어렵고 청년들이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까? 동성애 때문에 OECD에서 빈곤한 삶을 사는 노인이 가장 많나요? 동성애가 무슨 전염병인가요? 마치 동성애가 전염병인 것처럼 생각하는 공포가 목사님들 안에 있어 보입니다.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넘쳐 날 것이고, 동성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동성애가 범람해서 성적으로 타락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습고 유아적인 생각인지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선진국을 보십시오. 그 나라가 에이즈가 창궐해서 온 국민이 지금 메르스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한민국처럼 공포에 저당잡힌 삶을 살고 있나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나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의 나라에서 동성애자가 넘쳐나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나요?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자 분들한테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무슨 성적 지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나요? 목사님들은 내일 갑자기 이성애자에서 동성애자로 바꾸실 수 있나요? 동성애자와 접촉하면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될 거라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도 동성애자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과 고뇌와 좌절과 부정과 고통을 겪습니다. 이성애자처럼 별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동성애는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거라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죠. 그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분들의 고통과 슬픔을 아시는지요. 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토록 힘겹고 고통스럽게 선택해 가야 할까요? 더러는 그것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살아가지만 가슴 한 구석엔 구멍이 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모욕적인 일일까요? 만일 목사님들이 이성애자인데, 그 세상이 동성애자가 다수이고 이성애자가 소수라면 어떨 거 같으세요? 그 사회도 지금의 우리처럼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과 부정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어떨 거 같으세요?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전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만일 누가 이성애자인 저를 동성애자로 바꾸기 위해 치료하려고 한다면 정말이지 황당하고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네, 정말 그중에 한 사람 정도는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요나 목사님일 텐데요. 그분에 대해 제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섣부른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례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식물인간이나 뇌사로 있다가 깨어난 사람이 있으니까 식물인간이나 뇌사도 결국 의식을 찾아서 회복될 것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 경우는 유의미한 데이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뒤바꿔서 이성애자였다가 동성애자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타락이라고 하실 테죠.

목사님들은 현대 과학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실 테지만 현대 뇌과학이 밝혀 낸 것 중에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가 제 아무리 성적 취향을 바꾸라고 윽박질러도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뇌과학자 디크 스왑이 쓴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성 정체성은 임신 후반기 어머니 자궁 안에서 확정된다. 여아와 달리 남아는 이 시기 고농도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단계에서 인간의 성 정체성은 뇌 구조 속에 고착되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죠. 출생 후 환경은 여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동성애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들은 이런 뇌과학자의 이야기가 달갑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객관적인 과학적 자료를 애써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건 너무도 게으르고 안이하고 얄팍한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다원화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비록 자신과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건 그들의 표정과 눈빛과 삶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겐 동성애자인 지인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냥 사람입니다. 저와 또 목사님들과 비슷한 욕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고, 때로는 수줍고 과잉되지만 이성애자들의 과잉과 수줍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숨을 쉬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하고, 취업 때문에 걱정하고, 토익 점수를 울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친절하고 싶어하고, 사랑에 설레고 이별에 아파하고, 낯선 것에 대해 경계심도 있는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 놓고 사랑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즐겁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목사님들은 그들이 무슨 꼬리가 달린 괴물이거나 일거에 수많은 사람들을 전염시킬 바이러스라고 생각하시나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김동호 목사님이 세월호의 노란 리본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세월호 유가족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신 김동호 목사님은 자신의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속내를 다 알 순 없지만 그 만남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의 가치관과 입장에서 보면 퀴어 축제를 불편해하는 마음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목사님들이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퀴어 축제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비슷한 생각과 욕망과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한 사람이요. 그들과 마음을 툭 터놓고 만나서 대화해 보면 어떨까요? 목사님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고 고통을 마주해 보셨으면 합니다. 더불어서 그들이 내뿜는 생명의 활기도 느껴 보셨으면 합니다. 그곳엔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사랑했던 그 한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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