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사)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의 칼럼입니다. 기경원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경영함으로 기업 현장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을 희망하며 설립한 단체입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올리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경영이나 리더십에 관련한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인류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institution)은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대학·병원·교회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기관들이 이런 고상한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고상하지 못한 목적을 추구하기도 하고, 혹은 이런 고상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기도 하여 궁극적으로는 고상한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슬픈 사실은 특정 그룹 사람들의 삶을 피폐케 하는 것으로 다른 그룹 사람들의 삶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던 자베르는 형무소에서 점을 치던 어머니와 죄수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였다. 그는 불법자와 법의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을 일찍부터 접하면서 마침내 법을 어긴 자를 단죄하고 정의를 위해 법을 지켜 내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자베르는 불행히도 감정 없는 법 수호를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장발장의 선의에 갈등하고 지나간 삶에 대해 뉘우치고 한탄한다.

자베르는 그래도 갈등하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호르크하이머가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운전자가 파란불이라고 운행하다 길 건너는 아이를 치어 죽이고 난 후 "나는 신호등을 충실히 지켰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통법규가 존재하는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윤리적 이성이 마비된, 도구화된 이성만 남은 상태를 여실히 보여 준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 대한 목격담을 서술하고 있다. 아이히만이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한 것은 윤리적 이성의 작동이 마비된 전적 무사유의 상태에서 이성이 도구화되고 맹목적이 됐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업의 경영 현장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포드사의 소형 자동차인 핀토(Pinto)는 1970년대에 가장 잘 팔린 모델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충격을 가하면 쉽게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결함을 안고 있었다. 이로 인해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리콜을 하지 않고 계속 판매를 하였다. 그 이유는 가스탱크 안전장치를 부착하는 것보다 사망과 화상에 대한 배상을 해 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당시 리콜 책임자였던 자는 '포드사에서 훈련된 관점'에 따라 결정하다 보니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예들은 모두 기관의 고상한 목적을 위해 그 속의 사람들이 기계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들이 경영학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킨다는 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주장, 시소디아 교수 등이 주장하는 사랑받는 기업에 대한 관심, 마케팅의 구루 필립 코틀러 교수의 마케팅 3.0의 화두로 영혼을 내세운 점, 폴 애들러 교수가 기업을 협력적 공동체로 규정한 점 등이 그 예들인데, 이전에는 인문학에서나 다루던 인간·영혼·사랑·사회·공동체·공유 등의 가치가 경영의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저술들과 논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적 틀을 제공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능한 기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기업의 핵심 역량을 키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이제 '선한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편적 가치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고자 하는 보편적 목적에 대한 정열 없이는 시장도 고객도 그리고 일반 사회도 외면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산업 현장 개량 운동, 1930년대의 인간관계 학파와 복지자본주의의 대두, 1980년대에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시행된 기업 문화와 인간 존중 경영 등은 이미 작금의 큰 경영 화두와 맥을 같이하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단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물론 이전에 갖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보다 완결성 있고 진전된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한때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손해 보고 정직하게 경영하려고 하다가 고난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묘하게도 앞장서서 보편적 가치의 추구를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앞서 창조·책임·배려·공의·신뢰의 가치를 추구하여 차별화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치고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 수단적 접근을 하는 기업도 있는데, 이런 흐름이 대세이고 이렇게 변해야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전환하는 경우이다. 다른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생각하여 규범적 접근을 한다. 

이런 변화가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기독교인의 진정성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나중에 이런 대세가 바뀌어 다시 합리적 패러다임이 대두될 때에라도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경영에 꾸준히 임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자베르의 슬픔'에 빠져 있기만 하거나, 슬쩍 위장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가 취할 태도는 아닐 것이다. 모든 임직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개발하고 발휘하며 전인적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때 비로소 그 기업은 인류의 삶의 보존과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변화는 진정성을 가진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 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배종석 / 고려대 교수, 기독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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