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7일, 제주 강정마을의 상징 구럼비 바위가 부서졌다. 그렇게 서두를 일도 아니었다. 당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격한 마찰이 우려돼, 제주도지사가 공사 일시 정지를 요청한 상태였다. 그러나 해군은 기어코 화약을 들여와 발파를 강행했다. 주민들은 공사 차량 바퀴에 드러눕고 목에 쇠사슬을 감고 버텼지만 공권력은 무자비하게 이들을 몰아냈다.

당시 급박했던 상황은 SNS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이 된 강정마을의 소식을 퍼 날랐다. 기자도 서울에서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며 참담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몇 년 전 밟아 봤던 그 장엄한, 사람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던 구럼비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 한편을 짓눌렀다. 무엇보다 일찍이 파괴된 마을 공동체와,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의지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 걱정됐다.

▲ 2011년 9월, 구럼비 바위 사진. 이제 이런 풍경은 볼 수 없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렇게 공사는 진행됐다.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히고 펜스가 쳐졌다. 이후 강정마을 이야기는 예전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몇 번의 행정대집행 소식이 간간이 들렸다. 경찰과 용역 수백 명이 강정마을회의 농성 천막과 망루를 강제로 철거했다는 내용이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싸움은 여전히 치열했지만, 육지에서 느끼는 온도 차는 컸다.

구럼비 발파 후 3년, 지금 강정마을은 어떤 상황일까. 지난 5월 17일, 여행 차 들른 제주에서 강정마을 지킴이(활동가) 최혜영 씨(28)를 만났다. 최혜영 씨는 2009년 대학 시절, 선교 단체 학생신앙운동(SFC)과 기독청년아카데미(기청아)가 주최하는 제주 평화 기행에 참여했다가 강정마을을 알게 됐다. 시위도 모르고, 공권력과의 마찰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는 지금 3년째 강정에서 살고 있다. 시원하게 흐르는 강정천에 앉아 현재 강정마을 상황과 함께 최혜영 씨의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 강정마을 지킴이 최혜영 씨를 만났다. 예부터 물이 풍성한 강정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해군기지 완공, 올해 말 예정…환경 파괴, 공동체 분열 지속

최혜영 씨와 공사 현장 입구에서 10분 정도 걸어 강정 서쪽 해안가인 '멧부리'에 도착했다. 강정의 풍경과 해군기지 공사 현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철조망과 펜스 너머로 크레인 여러 대와 포클레인, 거대한 공사물이 보였다. 세계 최대의 너럭바위가 있었던 곳은 시멘트로 덮여, 거기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킴이들은 지금도 매일 공사 현장을 모니터링한다고 했다.

해군은 올해로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1월 말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군 관사를 지어야 할 곳에 강정마을회의 천막과 망루가 있다는 이유였다. 해군·경찰 및 공사 업체와,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회와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매일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는 건 아니지만 언제 또 부딪힐지 모른다.

"해군이 마을에 600세대가 넘는 군 관사를 짓겠다며 설명회를 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어요. 설명회 없이 가능한 72세대 군 관사를 밀어붙였죠. 군인 아파트를 해군기지 밖에 지을 필요가 없어요. 긴급 출동이라는 명목이었는데 기지 안이 더 빠르고 편하죠. 예정했던 부지보다 훨씬 넓혀 가고 있어요. 마을 삼촌(주민)은, 4·3 때는 사람을 죽여도 땅은 남아 있어 자손들이 살 수 있었는데, 해군기지가 들어오니 땅도 뺏기게 됐다고 했어요. 군 관사는 못 들어오게 지키겠다고 하셨어요."

▲ 멧부리에서 해군기지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올해 말 완공을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붕괴된 마을 공동체도 그대로다.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반목한 지 벌써 9년째다. 이쯤 되면 지난 일일랑 묻고 살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제사가 많은 작은 마을에서 형제끼리 제사를 따로 지내고, 마주쳐도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다.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찬성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산다. 해군기지는 이미 마을 하나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우려했던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회의원 장하나 의원실, 제주해군기지건설저지를위한전국대책위,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 강정마을회, 녹색연합이 함께 '연산호 군락' 생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 강정 앞바다는 세계 최대 연산호 군락이 있었던 곳이다. 최혜영 씨도 지난 11월부터 다이빙을 배워 바다에 뛰어든다. 연산호 군락의 생태는 해군기지 공사 전인 2008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관련 기사: 연산호 꽃밭 죽인 바다가 사람 잡을 뻔 <한겨레>) 강정을 방문한 하와이 평화 활동가는, 기지가 들어오면 물과 땅의 오염이 가장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지킴이들은 여전히 '해군기지 반대', '생명과 평화의 섬 제주'를 외치고 있다. 매일 아침 7시 공사장 정문에서 100배를 하고, 오전 11시에 가톨릭 미사를 드린다. 개신교에서는 개척자들, 고난함께, 새벽이슬, 섬돌향린교회 등이 참여하는 강정개신교대책위원회가 매월 한 번씩 제주로 내려가 기도회를 연다. 매달 넷째 주 금요일에는 제주에 사는 개신교인들이 기도회를 연다.

▲ 매일 오전 11시에 공사장 입구 앞 천막에서 미사를 드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미사를 드리는 동안, 지킴이들은 공사장 입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다. 경찰은 입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들어서 옮긴다.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순진한 기독 청년, 교회 떠나 강정으로

강정마을에는 주민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정착하게 된 20~30명의 지킴이들이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나 개척자들처럼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온 사람도 있지만, 그냥 한번 들렀다가 아예 삶의 터전을 강정마을로 옮긴 사람도 있다. 최혜영 씨는 후자의 경우다.

"대학생 때 SFC 활동을 했는데요. 2009년 SFC와 기청아가 주최하는 제주 기행을 왔어요. 그때 강정마을을 알게 됐죠. 그러고 나서는 또 한 2년 정도 관심 없이 살았어요. 2011년 말에 트위터하면서 다시 강정마을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때 저는 서울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강정에서 누구라도 좀 와 달라고 하니까, 2012년 구럼비 발파 전후로 몇 번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다가 2013년 여름에 아예 강정으로 이사를 왔죠."

털털하게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최혜영 씨는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평범한 고시생의 삶을 살던 그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가족들은 언제 올라올 건지, 언제 다시 공부를 시작할 건지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정마을에서 겪었던 일들이 인생의 기반을 옮길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동안의 신앙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경찰이 저 같은 사람들을 자꾸 '외부 세력'이라고 하니까, 아예 주민이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어요. '증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저는 경찰과 맞서는 일 같은 건 잘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구럼비 발파한다고 한 날, 어떤 상황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냥 누구라도 와 달라고 하니까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하고 온 거예요. 그런데 그날 공권력의 횡포를 경험했죠. 주변 사람들에게 겪었던 일을 얘기하고 다녔어요. 이후 용산, 밀양, 쌍용자동차 등 국가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강정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어요. '평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과 해석들이 있더라고요. 교회만 다녔을 때와는 다르게 생각도 넓어지고 많이 배웠어요. 당시 제가 자꾸 강정에 왔다 갔다 하는 걸 안 좋게 보신 교회 목사님이 '네가 강정에 관심 갖는 이유를 성경적으로 얘기해 봐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목사님은 고아와 과부를 꼭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로 한정해서 얘기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 목사님에게 성경도 배우고 사이가 좋았는데 점점 멀어지게 됐어요."

최혜영 씨는 자연스럽게(?) 제도권 교회와도 멀어지게 됐다.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담아 주고 이해해 주는 교회는 찾기 어려웠다. 강정에 와서도 따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는 현재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강정친구들은, 강정 생명 평화 운동에 참여하고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및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강정마을회와 지킴이들을 지원하는 공식 단체다. 매주 화요일 제주시에 나가 마을 신문 <강정이야기>를 나눠 주고, 후원 물품들을 판매하고, 강정 후원자를 모집한다. (강정친구들 후원 신청 바로 가기)

이미 끝난 싸움? 아니다!

▲ 해군기지가 들어와도 '비무장 평화의 섬'에 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비무장 평화의 섬'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떻게라도 막자는 목표가 있었지만, 이미 막을 수가 없게 돼 버렸는데 무슨 목표가 있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고, 행정대집행으로 계속 밀려나는 일만 남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같이 살아 보려고요. 비록 해군기지가 들어서지만, 강정을 생명 평화 마을로 만든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어요. (행정대집행으로)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여기 사는 주민이니까요. 사실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강정마을은 군사 마을이 돼서, 주민들이 아이들 교육 문제나 더 이상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해 떠날 것 같아 걱정돼요. 그러면 마을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는 거죠. 그래서 더욱 저희들은 여기 주민으로서 같이 살아 보려고 해요."

최혜영 씨는 제주 음식을 배우고 있고, 제주 신화나 무속에 관심이 많아 공부도 더 해 볼 참이다. 강정마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언젠가 강정에서도 생명 평화 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무장 평화의 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 모습을 꿈꾸고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미군 기지로 고통받고 있는 오키나와와 대만, 제주를 잇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작년 여름, 각각의 활동가들이 강정에서 모였다. 제주보다 훨씬 오랜 기간 투쟁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올해 9월에는 오키나와에서 '비무장 평화의 섬, 해상 캠프'가 열린다. 매년 각 나라를 돌아가며 모임을 열 계획이다.

예전처럼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강정마을회와 지킴이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자세한 소식은 온라인 카페 '구럼비야 사랑해''강정친구들', 페이스북 그룹 '강정 사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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