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오전 11시, 진도 7.8의 강지진이 세계 최빈국 네팔을 덮쳤다. 네팔 정부 발표에 따르면 5월 22일 현재 사망자 8,648명, 부상자가 1만 6,808명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한 달 넘게 상당한 규모의 여진이 발생해 추가 피해는 늘어나고 복구는 더뎌지고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은 3만 명 정도다. 이들의 대부분은 서울과 안산, 수원, 의정부 등에 거주하는 공장 노동자들이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지진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네팔인들의 모습을 취재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봤다. 네팔 현지의 상황은 어떤지,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번 지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주한 네팔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 진도 7.8의 강진은 네팔 일대의 얼기설기 지어진 가옥들을 전부 뒤흔들었다. 부실한 가옥들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건물에 깔렸다. 8,6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다쳤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든 재산을 날려 버렸다. (사진 제공 월드비전)

대부분 가족들 생사는 확인…시골 피해 막심

지진 발생 2주 후, 먼저 서울 원남동 '네팔하우스'를 찾았다. 보통은 나라마다 그 나라의 문화나 언어도 배우고, 홍보도 하는 '문화원'을 주로 두지만 특이하게 네팔인들은 '네팔문화원'이라는 이름 대신 네팔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장소를 만들었다. 이름만큼 이곳은 네팔인들에게 쉼터, 마을 회관의 역할을 추가적으로 하고 있다. 지진이 나고는 분향소를 설치해 추도할 수 있도록 했다.

네팔하우스는 원남동사거리 인근 한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했다. 1층 건물 입구에 추모 깃발이 꽂혀 있지 않았으면 찾기 어려울 만큼 낡은 건물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네팔인들이지만 주한네팔인협회를 통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어렵사리 얻은 건물이다.

네팔하우스를 관리하고 있는 비노드 주한네팔인협회 회장을 만났다. 종로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국말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피해는 얼마나 되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극을 당했나" 하는 질문도 하기가 조심스러워 머뭇거리던 차에 비노드 회장이 먼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는 "현지와 직접 연락은 못 해도 건너 들어서 근황은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 가족의 생사 정도는 확인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비노드 회장은 피해를 입은 네팔 시골 마을을 걱정했다. 카트만두는 대도시고 사람도 많아서 나중에라도 복구할 수 있지만 외곽 지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성금을 모아 우선 외곽 지역 구호부터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시골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번 지진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이 복구가 안 되면 사람들이 다시는 시골로 안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금을 정부로 보내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성금이 이리저리 손을 타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주한네팔인협회도 2,000만 원 정도의 성금을 모았지만 이 돈을 정부에 전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네팔에 이 돈을 가지고 직접 들어간다는 비노드 회장은 외곽 지역 재건을 위해 쓸 것이라고 했다. 

외곽은 복구 미흡…예배 시간에 난 지진으로 교회도 피해 심각

다음으로 네팔 기독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네팔인 교회를 찾았다. 그중 한 곳이 서울 창신동의 초원교회다. 창신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네팔 타운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네팔인들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토요일 오후의 창신동은 대단히 적막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찾을 수 없었고 네팔 식당과 식료품 가게도 한산했다. 한산한 거리를 빙빙 돌아 올라가니 언덕 꼭대기에 초원교회가 있었다. 마침 토요 모임 중인 네팔 기독교인들의 얘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아모스와 마태, 촉 세 사람은 '다딩'이라는 지방 출신이다. 셋은 네팔에서부터 기독교인이었다. 고향이 지진으로 피해가 컸다. 다딩은 4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인데 건너 들은 바에 따르면 파악된 사망자만 25명 정도라고 했다. 아모스는 외삼촌 두 명과 조카를 잃었다.

이들은 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어 구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마을을 걱정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산에서 깨끗한 물이 내려와 식수는 구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이 심각했다. 도로는 완전히 파괴됐고, 전기 공급은 끊겼다. 가족들과 주민들은 집도 다 무너져서 맨바닥에 얼굴만 천 같은 걸로 가리고 잠을 잔다. 걱정이 큰데 그마저도 전화가 끊겨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천 주안장로교회에도 30명 남짓의 네팔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주로 인근 부평 지역 공단 노동자들이다. 절반 정도는 신앙인이지만, 나머지는 지역 센터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오는 이들이다. 교회에 네팔 사람도 많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니 오는 사람들이 많다. 주안장로교회의 네팔 공동체를 맡고 있는 파비트라 목사는 공단 생활로 힘든 이들을 위로하다 보니 조금씩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라고 했다. 주안장로교회 네팔 공동체에는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다.

파비트라 목사도 구호 활동에 대해 초원교회 교인들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파비트라 목사도 수도 카트만두는 빠르게 복구되고 있지만 시골과 외곽이 많이 열악하다고 했다. 외곽 지역은 지진과 잦은 여진으로 아직도 도로를 복구하지 못한 실정이고, 헬기로 구호품만 전달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파비트라 목사는 이번 교회에 한국교회가 발 벗고 나서서 네팔 구호에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성금을 보내려면 네팔 정부를 통해서 보내지 말고, 교회가 직접 사용처를 정해 달라고 했다. 성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큰 이유도 있고 한국교회가 구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모습을 네팔인들에게 보여 달라는 이유도 있었다. 파비트라 목사는 한국교회가 구호에 적극 동참해서 기독교인 비율이 2%에 그치는 네팔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계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는 현지 동료 네팔 목사들 얘기를 했다. 하필 지진이 발생한 시간이 토요일 예배(네팔은 토요일이 공휴일이다) 시간이어서 교회들의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어느 교회는 지진이 나서 60명이 죽었고, 어느 교회는 17명이 죽은 교회도 있다. 그는 "한 동료 목사는 어제 장례식장에 다녀와서는 너무 힘들어서 예배 시간에 설교도 못 하고 있다"고 현장의 참상을 전했다.

▲ 김포 세계인 큰잔치 행사에서 성금을 모금하고 있는 네팔인들. 이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국어 공부를 하느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온 지 3년 된 라이(사진 맨 왼쪽)는 한국에 와서 김포이주민센터 이학산 목사(왼쪽 두 번째)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학산 목사에게 한국어를 배웠다는 그는 어설픈 한국말로 "시간이 많으면 교회에 나와서 (네팔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국어 배우느라 고향 걱정할 시간도 없어

지진 이후 네팔인 주 거주지인 안산, 인천, 의정부 등을 중심으로 네팔인들의 자발적인 모금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5월 17일, 김포에서 모금을 하고 있는 김포이주민센터의 네팔인들을 만났다. 

이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날인 '김포 세계인 큰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왁자지껄한 행사장 한 구석에서 "네팔인들을 도와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팔인 6명과 김포이주민센터 이학산 목사가 피켓을 들고, 지진 피해 복구 성금을 모으고 있었다. 한 어린아이가 5,000원권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모금함에 넣자, 네팔인들이 환하게 웃었다. 

네팔인들 중 한국어가 되는 라이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는 그는 김포의 한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 문화와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한다. 고향은 지진으로부터 괜찮은 네팔 서부 지역이라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일 때문에 정말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일요일만 쉬고 주 6일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고 나서 잠깐 숨을 돌리고,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라이는 김포이주민센터 이학산 목사의 인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회 다닌 지는 1년 반 정도. 처음에는 이 목사의 전화로 교회를 나오게 됐다. 지진이 일어나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매 주일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 진앙지인 럼종에서 살다 온 아넌더는 이번 지진으로 살던 집이 완전히 무너졌다. 다행히 부모님은 무사하지만 그것뿐이라고 했다. 살림살이를 다 잃게 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형편이라고 했다. 구호단체에서 텐트를 설치해 줘서 부모님은 현재 거기서 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 우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난 5월 9일, 한국 구호단체 굿피플(조용기 총재) 소속 의료진이 네팔 이재민들에게 비타민과 성경을 배포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굿피플 의료진은 네팔 주민들에게 "힌두교를 믿어 지진이 일어났으니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전도를 했다. (관련 기사: 네팔 대지진, 힌두교 믿어 벌어진 일", 한국 구호단체 전도 논란)

<뉴스앤조이> 기자가 만난 네팔인들은 이번 지진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초원교회에서 만난 네팔인들은 이번 일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연재해로 받아들이자는 게 자신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일부러 이런 일을 일으켰다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초원교회의 아이티 전도사는 "하나님이 네팔을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이런 일을 하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지진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믿음으로 강하게 이겨 나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네팔은 종교 간에 이런 일로 인한 갈등이 없다고 했다. 전 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고, 석가모니가 태어난 나라라 기독교가 배척당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네팔의 기독교 신자는 2%대에 불과하지만 말썽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다. 김포에서 만났던 라이는 "네팔은 종교 때문에 서로 적대시하거나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네팔 현지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힌두교인들도 누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뭐라고 안 한다고 했다. 현지 친구들 중에도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이 몇 있다고 전했다. 

비노드 주한네팔인협회 회장도 "네팔인들은 힌두교가 대부분이지만 불교를 동시에 믿는 사람도 많다"면서 타 종교에 관대하다고 했다. 종교가 무엇이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네팔하우스에는 불상이 놓여 있지만 기독교인들도 자주 찾는다는 말도 했다. 

희망 사항 1순위, 모금 잘되도록, 제대로 쓰이도록 한국인들이 도와주는 것

▲ <뉴스앤조이> 기자가 만난 네팔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모여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고국을 위해 모금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네팔인들은 한국인과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네팔인들은 대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고국과 고향이 큰일을 겪어 당연히 걱정도 되고, 집에도 가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얘기다. 대부분 공장 노동자인 이들은 일을 그만두고 집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 각 사업장에 고국에 다녀오기를 원하는 네팔인이 있으면 최대한 배려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하긴 했지만 네팔인들에게는 1인당 110만 원에 이르는 왕복 비행기 푯값 마련이 엄청난 부담이다. 

대신 네팔인들은 한국에서의 모금이 잘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모금 활동하는 게 거의 전부다. 비노드 회장은 한국인들이 모금 활동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네팔인들이 자체적으로 모금하기는 하는데 외국인들만 서 있으니 못 믿는 건지, 꺼림칙해하는 건지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함께 모금 독려를 해 주면, 한층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성금을 잘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써 달라고 했다. 네팔인들은 하나같이 네팔 정부에 성금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팔인들의 정부 불신은 상당해 보였다. 교회나 구호단체가 시골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복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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