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여기저기 강연 다니고 인세에 월급 받으면서도 돈에 쪼들리는 나에게 아내가 뭐라 해서 한 말이다. 담배를 안 피우지만 내 주량은 1년에 맥주 세 병 정도, 소주는 반 병 정도다. 1년에 말이다. 귀국하자마자 십일조를 용산 철거민에게 보내겠다고 했을 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른 척하던 김 권사님이 요즘 궁해서 쩔쩔매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돈 다 보내겠지요."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다만 오늘 헌금할 곳이 생겼다. 

1.

세월호 참사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송하고 글로 남기는 일이다. 시청 광장에 수십만 명이 모였던 뜨거운 흥분이 언제 그랬냐며 식어 가는 이때에 기록해 둬야겠다. 한 명 한 명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특별한 일 아니다. 그냥 모두 내 이웃, 내 가족이니까. 오늘은 앞서 썼던 미수습인 가족 '다윤이 엄마' 이야기에 이어 한 종교인에 대해 써야겠다.  

최헌국 목사님, 그의 친구 양민철 목사님과 1년 이상 광화문에서 지내고 있다. 최 목사님은 내가 진행했던 방송에도 두 번 출연하셨다. 한 번은 '쌍용차 해고자와 함께하는 촛불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나오셨고, 다음은 '송전탑 1박 2일' 울산 송전탑 로케에 함께 갔다.

울산에 로케 갔을 때 한 방에서 여러 명이 잤는데 최 목사님이 내 옆에서 주무셨다. 그날 그가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고 가끔 숨을 멈춰 내가 깜짝 놀라 몇 번을 깼었다. 무호흡증이라고 하나. 그의 건강 상태가 아주 나쁘다는 걸 알았다. 여기다 밝히면 실례인 줄 알지만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고, 당뇨병 증세가 심한 몸으로 그는 이 나라 아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목요일 밤 촛불 예배를 인도해 왔다. 

그의 꿈은 농사짓는 것이다. 

오늘 보니 광화문 상황실 바로 앞에 꽃을 가꾸고 있었다. 이름 모를 들꽃과 마치 대화하듯 따사롭게 물을 부어 주었다. 물을 주는 저 짧은 순간에 그의 꿈이 설핏 엿보였다. 누가 그를 투사로 만들었는가.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그는, 이제 촛불교회를 그만두고 농사지으며 공동체를 일구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은 용산, 쌍용차, 세월호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때 조금 벗어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오늘도 유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을 보라. 

"용산참사대책위에 있을 때 돌아가셔서 냉동고에 계신 다섯 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304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어요. 까마득합니다. 그래도 영향력 있는 분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시면, 경찰의 대책 자체가 달라져요. 용산 때는 그래도 계획이 있었는데, 제가 보수적인 교회에 더 찾아갔어야 했는데 게을렀습니다. 게을렀어요." 

2.

그가 곧 감옥에 끌려간다.

목사란 직업의 업무는 본래 슬픔 곁에 가는 것이다. 입으로만 설교하기 전에 발과 몸이 먼저 가야 진짜 목사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 따라, 설움 곁을 온종일 찾아가 발로 손으로 몸으로 설교하는 그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가.

▲ 오늘 헌금할 곳이 생겼다. 용산 철거민, 쌍용차 해직자, 세월호 등 모든 현안에 참여해 온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에게 벌금 1,500만 원이 떨어졌다. 설움 곁에 함께했다는 이유로 매겨진 벌금이다. 그의 활동이 조금이라도 여유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돈을 보낸다. (사진 제공 김응교)

용산 철거민 문제, 쌍용차 해직자 문제, 세월호 문제 등 모든 문제에 참여했던 최헌국 목사에게 누적된 벌금 1,500만 원이 떨어졌다. 집시법은 한 번에 50만 원 벌금인데, 도로교통방해법은 액수가 많아 도로교통방해범으로 갇힌다고 한다. 그래도 감해져 남은 금액이 200만 원인데 그 돈을 거부하고 싶어, 20일간 구류를 살겠단다. 

그래도 돕는 손길이 있어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님께서, 감방 갔다 오는 최헌국 목사님이 제주도에서 쉬실 수 있도록 비용을 전달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이 뭐 흥부 시대도 아니고 벌충하러 감방까지 가면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 유족분들과 식사 마치고, 내가 "200만 원 구해 드릴 테니 감옥에 가지 마세요" 하니까. 최 목사님은 그냥 씨익 웃으신다. 헛된 돈 내기 싫다는 표정이다. 까짓 것 바울이든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감방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니지 않았던가.

국민은행 533301-01-127067 최헌국 (촛불교회)

안해님께 늘 죄송한 나는 10만 원을 송금하려 한다. 김 권사님은 아셔도 화내지 않고 모른 척하실 분이다. 나는 김 권사님을 믿는다. 내 안해는 그런 분이시다.

담배값 커피값 한 번 아껴서 우리 대신에 험한 곳을 찾아가 위로하는 촛불교회에 1만 원이라도 헌금하시면 좋겠다. 큰 돈 보내면 교만해질 수 있다. 10만 원 이하로, 1만 원이라도 헌금해서, 최헌국 목사님과 촛불교회 활동하시는 분들이 조금 여유 있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다. 

그가 곧 감옥에 끌려간다. 

나는 그를 감옥에서 농토로 보내 드리고 싶다. 

물론 그에게는 감옥이든 농토든 광장이든
그가 존재하는 모든 곳이 이미 교회다. 

(2015. 5. 21.) 

※최헌국 목사는 21일 저녁 촛불 기도회를 마치고 종로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습니다. 출두에 앞서 그가 쓴 글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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