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쓰는 글 주제 가운데 하나는 변화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주제는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반드시 들어야 할 주제이고 들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변화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는 단지 구호뿐이고 실제로는 강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그 콘서트라는 TV 프로그램의 '라스트 헬스보이'라는 코너에서는 홀쭉이 이창호는 "찌고 싶습니다"를 외치며 몸짱이 되어 가고 있고, 반면 뚱뚱이 김수영은 "살고 싶습니다"를 외치며 다이어트를 시도해 이젠 두 자리 수 몸무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들은 변화를 마음속으로만 갈망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전국적인 방송망 앞에서 자신들의 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내가 변화에 대한 글을 써서 SNS에 올렸을 때, 그 글을 읽고 수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었다. 특히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공감을 해 주었다. 교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변화하기 위해서 고쳐 나가려고 하면, 그것만은 바꿀 수 없다고 버틴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결국 바꾸어야 한다는 총론은 모두가 공감하는데 정작 고치기 위해 각론에 들어가면 모두가 목숨을 걸고 바꾸지 못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물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이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린다. 38년 동안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낫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38년 된 그 병에서 낫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구걸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질병 때문에 구걸하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건강한 몸을 얻게 되면 더 이상 구걸하는 것은 어렵고 이제부터는 열심히 일을 해서 자신의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한다. 땅 한 평도 없는 그 사람에게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울까? 그래서 그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예수님에게 정말 자신이 낫기를 원하는지 대답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변화를 원하는가? 만일 그 변화가 자신이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우리는 변화를 원하는가? 만일 그 변화가 지금까지 내가 익숙해져 있는 모든 것과의 작별을 의미하고 전혀 낯설고 새로워서 불편한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우리는 변화를 원하고 있는가? 만일 그러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면 아주 편할 것이다. 편하게 망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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