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물은 (사)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의 칼럼입니다. 기경원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경영함으로 기업 현장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을 희망하며 설립한 단체입니다.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올리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경영이나 리더십에 관련한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몇 해 전 미국 휴스턴의 한 비영리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팸플릿을 읽고 놀랐다. 석유 재벌의 후원으로 세워진 그 갤러리는 "예술은 한 사회가 본질을 지향하도록 하는 힘을 공급한다"고 주장하며 당당히 후원자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가끔씩 나는 "시민·사회 단체가 밥 먹여 준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비영리 섹터가 사회에 공급하는 긴 안목의 경제적 가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영리단체 모금 컨설팅을 업으로 하는 회사를 12년 운영한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비영리 현상은 생동감 있는 언어가 확산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에게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라는 말씀을 들어 비영리 현상을 설명한다. 사회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일하면서 비영리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명분, 사명(mission)'이 사회에서 힘을 얻는 과정을 중심으로 비영리단체의 역동성을 설명한다. 비영리단체는 우리 사회가 크고 작은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한국의 기업들은 당황하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으로 밀려오는 윤리, 인문적 경쟁력, 새로운 자본주의, 공유된 가치(shared value)에 대해서 우리는 덜 준비되어 있다. 환경, 인권, 윤리, 투명성의 요구가 이제 기업 생존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글로벌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렵다.

안으로부터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중추인 직원들이 피로하다. 직원들의 삶이 조용히 무너져 간다. 가정들이 위태롭다.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과 인격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 말 못하는 이들이 많다. 건전하게 놀 줄 모르고, 자기 세계가 없는 이들이 가정과 삶을 소진하면서 만들어 내는 서비스와 제품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많은 것들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유예해 왔다. 바른 것, 아름다운 것,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추구에서 멀리 있었다.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 싸우는 이들을 무시했고, 인권에 집착하는 이들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이들이라고 가볍게 여겼다. 이제 세상은 한국 사회에게 추상적인 가치에 대한 성찰과 일상적인 매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갈등이 걱정스럽다. 해결의 실마리는 정치적인 것에 있지 않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가치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무력화하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질문과 해답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비영리 섹터는 말씀의 사회적 생장점이다. 작은 것에 대한 치밀한 집착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더 본질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생명력을 가진 비영리 섹터가 우리 사회를 살찌우는 방식이다.

작은 도움을 요청하는 한 화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그 화가의 전셋집 아틀리에 바닥에는 뜯어낸 유화 작품들이 널려 있었다. 나무 프레임을 재활용하려고 완성한 작품을 벗겨 내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왜 사느냐?'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러나 그가 독일 유학 시절부터 그린 그림들을 쭉 살펴보던 중 내 생애 처음으로 한 예술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의 삶과 내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가들의 고독한 작업이 실은 사회의 모든 무게를 지고 궁극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신선하고 맑은 언어의 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 있는 언어의 힘이 필요하다. 곳곳에서 말의 힘을 찾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야 한다.

최영우 / ㈜도움과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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