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앤조이>가 2015년 4월 출간한 열 번째 바른 신앙 시리즈 <세월호, 희망을 묻다>의 머리글입니다. 이번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신앙의 풀리지 않는 질문을 싣고, 그 질문에 6명의 목회자·신학자가 위로와 희망의 편지로 답한 것을 엮은 것입니다. (관련 기사: <뉴스앤조이>, <세월호, 희망을 묻다> 출간)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참변을 당한 아이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살아 있으면 이제 대부분 고3 수험생이 되었을 것이고, 이토록 화려한 봄날에 기껏 교과서 나부랭이에 머리를 파묻고 지내기에는 이 팔팔한 청춘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며 스마트폰으로 친구들끼리 조잘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카톡질로 밤을 새운 덕에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부모 몰래 화장품으로 얼굴에 떡칠을 하고, 이성 친구에 빠져서 천지 분간을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부 스트레스에 짓눌려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무엇을 하면서 살까, 막연하게나마 자기만의 꿈을 꾸다가 다시 등을 의자에 바짝 붙이고 책을 펼치겠지요.

공부 스트레스에 짓눌려 허덕거리더라도, 부모 말 징글징글 안 듣고 청개구리처럼 굴더라도, 학교 성적이 바닥을 헤매는데도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더라도, 이성 친구 사귄다고 부모 속을 박박 긁더라도, 살아서 우리 곁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감사덩어리밖에 더 되겠습니까. 살아서 우리 곁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내 아이들에게 바랄 것이 더 무엇이겠습니까.

제 큰딸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 같은 학년입니다. 그 아이도 4월 초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며칠 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정신이 아찔하고 기가 탁 막혔습니다. 방송사의 뉴스 속보는 진실이라고 믿고 볼 만한 가치가 별로 없었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건 관련 동영상은 심장이 뛰고 정신이 어지러워서 클릭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식이 변을 당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될까요?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셔서 우리 가정에 이런 재앙이 임하지 않았다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도 될까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1년이 다 된 지금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현장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안산, 진도로 기자들을 보내어서 취재하도록 했습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여기에 기자 여러 명을 투입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취재 현장 곳곳에는 높고 커다란 담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일반 언론사도 희생자들의 엄청난 분노와 불신의 장벽에 막혀서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데, 개신교 분야를 주로 다루는 우리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훨씬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우리 기자들도 겪어야만 했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의미 있는 기사가 나오지 않으니 기자들도 답답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근처 청운동주민센터에 기자 한 명을 붙박게 했습니다. 그곳으로 출근해서 그곳에서 퇴근하도록 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분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특종을 보도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고 정체성에도 딱 맞는 역할은 아닙니다. 다만 로마서 12장 15절 말씀대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심정을 가지고 그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우리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그분들과 같이 먹고 자고, 같이 울고 웃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 합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이분들과 함께 몇 번 맞으면서 차츰 신뢰가 쌓여 갔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기자를 챙겨 주고, 다른 기자들에게 잘 얘기해 주지 않는 일정도 알려 주고, 먼 곳을 갈 때는 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먼저 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고, 기자는 그제야 그분들 중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분 한 분을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가 질문하면 그분이 대답해야 하는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분들이 질문하고 기자는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었습니다. 긴 침묵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인터뷰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희생자 가족 중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분들도 억장이 무너지겠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은 더 답답할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 물음에 누군가 대답을 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답 강박증'이라는 질병이 개신교, 특히 목사들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쉽게 답을 내뱉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답을 알려 주어야 할 권한과 의무를 마치 자기들이 독점한 양 너무 빨리 답을 내뱉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망발, 망언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정답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 나왔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콱 막힌 가슴을 뻥 하고 시원하게 뚫어 주는 대답이 아니라, 그분들의 심장을 두 번 세 번 찔러 죽이는 정답들이었습니다. 아픔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대답이 아니라, 깊은 상처에 고통을 더하는 소금 같은 정답들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지천에 깔린 정답들은 이처럼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했습니다.

▲ <세월호, 희망을 묻다> / <뉴스앤조이> 편집국, 강호숙·김형국·박득훈·백소영·오세택·차정식 공저 / 뉴스앤조이 펴냄 / 210쪽 / 8,000원

이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위로해 주는, 공감 깊은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을 넉넉히 품고 공감해 줄 수 있을, 믿을 만한 분들에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총신대 강호숙 교수님,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님, 새맘교회 박득훈 목사님,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님, 두레교회 오세택 목사님,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님이 기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분들이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아 주신 덕분에, 참사 1년을 앞둔 지금 이 작은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읽는 글마다 저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을 위한다고 한 행동이 자칫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에 용기를 내어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해서 더 깊이 묵상하고, 우리는 오늘 어떤 삶을 살아가야 마땅한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올해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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