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째 되는 해이다. 2015년에 들어서 다수의 개인이나 단체들이 70년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고 분단 청산과 통일을 언급하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는 인정하나 문자적 적용은 위험하다. 이는 경계해야 한다. 성경의 남북 분단 시대는 북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약 208년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history)와 하나님의 역사(working)는 하나님의 주권이며 사람과의 협력의 역사이다. 베데스다 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을(요 5:1-9) 생각하며, 38선에 의해 분단된 이 나라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단된 지 70년, 이를 성경의 바벨론 포로 생활과 일치시키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그러나 유의미한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현 시점을 영적으로 바벨론 포로 종결로 보아야 할지, 시작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따라 관점의 차이는 크다

한국의 분단과 통일의 기간이 바벨론 포로기와 같이 70년과 동일한지, 애굽 430년 기간이 될지, 광야 생활 40년의 기간이 될지, 아직 바벨론 포로의 전 단계인지, 성경의 기준과 무관한 역사적 통일의 해가 전개될지 인간의 지혜로 판단할 수가 없다. 다만 한국의 역사나 분단과 유사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영적인 교훈과 의미를 찾자는 것이고,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순종, 이를 대비한 준비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통합과 분열

사울 왕 이후에 다윗 시대(BC 1010~970)에도 통일 왕국을 유지해 왔으나, 40년 뒤인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분열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120년)은 사울(40년), 다윗(40년), 솔로몬(40년)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사울-다윗-솔로몬 시기의 통일 왕국에 이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BC 931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다.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나라가 분열되어 분열 왕국 시대라 한다.

분열의 근원적인 원인은 솔로몬에게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은 율법을 거역하고 이방 여인들을 취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유혹으로 인하여 우상숭배에 빠졌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죄를 범한 솔로몬에게 나라를 빼앗아 그의 신복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비 다윗을 생각하여 그 나라를 모두 빼앗지는 않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남겨 두고 그것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왕상 11:11, 12). 하나님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이방 신전을 짓고 이방신을 섬기자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켰으며 마지막에는 솔로몬의 심복 중 한 사람인 여로보암을 대적하게 하셨고 12지파 중 10지파와 많은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주전 930년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 국가가 되었다. 722년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군대에 의해 먼저 망할 때까지 208년 동안 북쪽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통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남유다에도 겨우 6명뿐이었다. 남북의 적대 관계는 계속되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는 시대였지만, 내적으로는 각 지파들 간의 갈등의 심화와 솔로몬 때부터 쌓였던 세금과 부역 등으로 인한 수많은 불평들이 백성들 안에 잠재해 있었으며, 우상숭배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진리를 떠난 죄악, 정치, 사회적, 종교적 타락으로 인한 결과로 민족 분열을 겪게 된다.

결국에는 남쪽에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유다왕국이 섰고, 북쪽에는 세겜을 중심으로 하여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왕이 된, 북이스라엘이 들어섰다(왕상 11, 12장).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자였고, 솔로몬의 심복이었다. 그는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할 때 그의 성실함이 솔로몬에게 인정되어 그의 심복이 된 것이다(왕상 11:26, 28).

하나님은 솔로몬의 부패가 극에 달하였을 때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어 여로보암에게 다윗 집에서 열 지파를 떼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은 120년 만인 BC 931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역사는 남북 왕조로 나뉘어 진행된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두 개 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후에 레위 지파는 우상숭배에 반발하여 남쪽으로 이주하게 된다.

남유다는 르호보암의 즉위로부터 바벨론에 패망할 때까지(BC 931~586) 약 345년간 존속하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으로부터 앗수르에 의한 패망까지(BC931~722) 남북 분단 시대는 북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한다.

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약 135년 후, 바벨론 포로로 간다. 그리고 70년 동안 그곳에서 포로 생활(BC 586~444)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 이스라엘에서 멀리 1,500km나 떨어진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은, 율법적 관점에서 '언약의 땅에서 추방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바벨론 포로기와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엘리야, 미기야, 엘리사, 요나,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미가)을 통해 회개하도록 선포한 것으로 알 수 있으며, 유다가 망하기 전에는 나훔(BC 686~612), 스바냐(BC 640~621), 예레미야(BC 626~584), 훌다(BC 621), 하박국(BC 608~598), 에스겔(BC 593~571) 등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으나 반역을 행하고 불순종한다.

그 결과 강대국인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거치게 된다. 이방 강대국가의 강점기를 거친다. 본토의 백성들, 외국에 포로 생활로 '남은 자'들로 백성들은 고통과 신음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70년, 하나님의 때가 차자 조국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된다. 성전이 재건되며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이 회복된다. 새롭게 영적 이스라엘, 선민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민족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선민 유다 백성이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최대의 비극이요 수치였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거룩하신 뜻을 멸시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의 표현이었다(대하 36:21, 렘 34:8-16).

포로 후 바벨론에서까지도 선지자들, 다니엘(BC 586), 오바댜(BC 580), 요엘(BC 539~531), 학개(BC 520), 스가랴(BC 520~514),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BC 500~450)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것을 예언하게 하신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다니엘과 에스겔서는 하나님나라가 재건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는 영원할 것 같았던 강대국인 바벨론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멸망하게 하시고(50:3,9, 41-46, 51), 이스라엘 백성이 본토로 귀환하도록 하셨다. 바벨론 왕국은 느부갓네살의 손자인 벨사살 때에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만다. 앗수르는 주전 612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다. 남북 왕국 모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바벨론은 메대, 바사 연합국(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한다. BC 538년에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공동체는 BC 515년에 성전을 건축하고, BC 445년에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잡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지 않았고 그의 왕가는 7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통치하게 된다. 메대 사람 다리우스는 바벨론을 정복하고 나이가 많음으로 바사의 고레스에게 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것처럼 70년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고레스를 택하시고 그에게 오늘 이스라엘을 돌려보내도록 하신 것이다.

70년 바벨론 포로기와 한국의 현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국내에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대립이 첨예해 갈 때에 미소 양군이 각기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삼아 남북으로 갈라서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출했다. 2015년은 광복-분단 70주년, 건국 67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다. 70년은 완전수이며, 성수(聖數)인 7의 10배수인 70은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기대할 의미 있는 숫자이다. 하나님의 카이로스, 포커스와 타이밍은 중요하다.

한민족은 676년 신라가 외세(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한 이후, 1945년 광복까지, 후삼국 35년을 제외한 1,000여 년 동안 단일민족을 형성해 왔다. 세계 역사상 드문 통일국가의 역사이며 통일은 한민족의 정체성이다.

세계사를 보면 이 70년은 의미가 있는 사건이 있다. 바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공산주의가 70년 후인, 1987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 사건이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 질서와 구도가 변했듯이,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한반도에도 휴전선이 사라지길 소원하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한국을 돌이켜 보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분단과 외세라는 바벨론 포로의 해방과 통일의 기쁨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평화적 민족 통일이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죄악으로 왜곡된 분단의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복음화 통일의 가치 창조가 올바른 통일 운동이다.

바벨론 포로기는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교훈과 지혜를 제공해 준다. 조지 바나는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 갈 영적 리더십이란, 첫째, 사람을 이끌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소명),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이끄는 자(성품), 셋째, 리더십을 위해 기능적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능력)라고 한다. 통일 시대를 대비하고 이를 실천하고 하나님나라 건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소명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복음으로의 무장과 성령의 역사, 탁월한 실력과 안목도 겸비해야 이상적인 크리스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경의 텍스트와 현존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통해서 국가를 치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국제정치와 민족국가와 열강 간의 역학 관계, 경제·사회·역사적 문제까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지혜와 신앙의 원칙과 경험을 통해서 과거를 아는 지혜,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를 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사람이 해야 할 사명과 그 방향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할 때 자기 시대를 개혁하고, 자기 시대의 부흥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애굽의 430년간 노예 생활, 바벨론 70년간 포로 생활, 로마의 티토 장군에게 AD 70년에 멸망하고 약 2,000년에 이르는 유랑 생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에 의해 600만 명이 학살당한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알고 믿음으로 행했기에 오늘날 이스라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게 되었다.

바벨론 포로는 이사야가 예언한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이 구현되었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파기와 불순종으로 인한 민족의 파국 상황에도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을 베풀고, 소수의 '남은 자'를 구해 주시고, 이를 통해서 존속하게 하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파멸이 아닌 자기 백성의 구원이며, 정화와 회복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백성들로 선택한 것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환난과 역경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대망하는 자를 가리켜 '남은 자'로 정의했다(롬 9:27).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와 귀환 이후에도 이방 국가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고 로마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잠시 독립하였으나(마카비 시대), 다시 로마의 통치하에 있게 된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독립이 안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영적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있다.

지상 국가의 한계이다. 이스라엘의 성전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이다. 건물인 교회도 영원하지 않다. 복음만이 영원하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영적인 현실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구속사적 진행, 어거스틴이 말한 '하나님의 도성'과 그 완성이 온전한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는 영토적 개념에 국한되기보다는 이보다 더 포괄적인 영적 개념임을 알 수가 있다. 재림 예수님의 지상 출현이 온전한 하나님나라의 완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적 바벨론과 한국교회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는 바벨론 패망과 하나님나라 완성의 자세한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음녀 바벨론, 오늘날 타락한 도시 문명은 영혼들의 사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시록에서는 바벨론을 큰 음녀, 어미, 귀신의 처소, 가증한 것,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음녀와 연합한 땅의 임금들, '음행'과 '사치' 등으로 묘사하였다. 이것은 정신적,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영적 타락상을 의미한 것이다. 계시록에서 말한 바벨론은 구약성경의 지상 국가인 바벨론과는 다른 차원의 영적 비밀이 있다. 계시록은 '문자+상징'을 융합해서 조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인간이 전부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먼저 어떤 영적 바벨론 포로에 잡혀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과 회개도 요구되어 진다. 교회의 맘몬이즘, 성경 말씀 훼손과 소멸, 헌금 강요와 빚으로 얼룩진 매머드 교회 건물, 교회의 영적 권위 상실과 교회 내 폭력과 하나님 경시 풍조, 교권주의와 분열, 교회의 정치권력화, 목회자들의 타락, 세속화의 포로, 그리고 통일을 가로막는 남북 갈등에 못지않은 동서 갈등, 정치적 패권주의와 죄악과 부패, 소수의 부의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죄악인 사치와 방종이나 타락 등이 한국교회와 국가와 시대를 사로잡고 있는 영적인 바벨론 포로기일 수도 있다.

바벨론 포로 70년은 개인과 민족적 회개의 시기였다. 한국교회도 과거 일제시대 신사참배와 우상숭배, 교권 다툼과 자기 역할 상실 이후에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이러한 시대를 보고 성경적 교훈을 삼아야 한다. 개인과 집단, 한국교회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들로 현시대에도, 한반도의 통일 시대에도 귀하게 쓰임받길 소원한다.

다니엘은 조상들의 죄악을 회개했다. 동일시 회개인 것이다. 다니엘은 BC 605년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나라를 제1차 침공했을 당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 한사람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15세였다. 나중에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다. 다니엘서 9장에서 다니엘은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던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온 지 70년 만에 해방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오던 때에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가 한 말이 기억났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여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는 것과(렘 25:11,12),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올 것(렘 29:10)을 예언했다. 예레미야의 말씀을 응하게 하신 것이다. 예레미야의 시간(Jeremiah's Time)이다.

"다리오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이렇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를 예언하였고, 동시에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귀환도 예언하여(단 25:12) 포로 된 백성들에게 그의 예언은 유일의 소망이 되었던 것이다(단 9:2).

다니엘에게 임한 기도 응답이 지금 한반도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에도 응하기를 소망한다. 해방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 해에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세계는 소통(communication)과 융합(convergence)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가고 있다. 사유 없는 지식, 통찰 없는 이성, 메마른 지성이나 향방 없는 신학적 지식과 교회는 통일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전략적 민첩성도 요구되어진다. 급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세속화와 종교다원주의나 혼합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통일 운동은 영적 전투이다. 그래서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교회 내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나 준비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서 교회, 국가와 시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교수인 클링턴은 "리더십이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나아가도록 영향을 끼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선명한 목적은 선교의 명령이다. 2015년, 한국교회에 평화적 통일과 북한복음화 사명을 감당하는 결단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길 기대한다.

황준배 / 신학박사, <카리스마적 리더십>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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