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고는 이야기 안 하지만 굳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뭐 일반 국회의원들처럼 야한 동영상 본 것도 아니고."

4월 8일 경남도의회 임시회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한 말이다. 그는 지난 임시회에서 노동당 여영국 의원이 발언할 때 의원석 모니터로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있었다. 여 의원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묻자 홍 지사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여영국 의원은 기가 막혀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홍준표 지사는 외려 "그런 거 가지고 시비 거는 게 잘못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관련 기사: 홍준표 "야동 본 것도 아닌데 굳이 잘못했다 생각 안 해" <NocutV>)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물어봐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도지사는 절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4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도지사까지 하고 있는 사람이 사소한 잘못 하나 인정하지 못하는 걸 보면, 가방 끈 길고 출세했다고 양심까지 살아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곧 죽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생각난다. 처음부터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면 사랑의교회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뉴스앤조이 구권효

홍준표 도지사의 영상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목사 한 명이 오버랩된다. 박사 학위 논문 2편과 석사 학위 논문 1편을 표절해 놓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다.

지난 4월 17일, 사랑의교회가 MBC PD수첩을 고소한 건에 대한 두 번째 증인신문이 있었다. (관련 기사: 판사가 걱정하는 사랑의교회 15억짜리 재판) 이 자리에는 사랑의교회 개혁파 권 아무개 장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권 장로는 작년 5월 방영된 PD수첩 '법원으로 간 교인들, 사랑의교회에 무슨 일이'에서 오 목사의 논문 표절 사태를 설명한 사람이다. (관련 기사: PD수첩,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집중 조명) MBC와 교회 측 변호사들이 논문 표절 사태에 대해 물었다.

권 장로는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의 최측근이라 할 정도의 인사였다. 오 목사가 2006년 '정감운동'을 전개할 때 권 장로가 이 사역을 맡았다. 정감운동이 무엇이냐고 MBC 측 변호사가 물었다. 권 장로는 '정직'과 '감사'로 세상을 바꾸어 보자는 취지의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교회의 직분자, 목사와 장로 등이 먼저 정직하고 감사하자는 운동이라고 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이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2013년을 전후해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내용과 같았다. 2012년 6월, 한 신학교 교수가 페이스북에 한 대형 교회 후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및 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사랑의교회 이야기라고 눈치챈 고 옥한흠 목사의 아들 옥성호 대표(도서출판 은보)가 당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관련 내용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회 차원에서 조사위원회가 구성됐고, 권 장로가 위원장이 되었다.

중요한 사건은 2012년 7월 6일, 조사위원회와 오정현 목사가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 권 장로에 따르면, 오 목사는 "그 교수의 페이스북 글은 굉장히 악의적이다. 내가 작성한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이나 대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나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떳떳하게 내가 작성한 논문임을 밝힌다. 만약 추후에라도 나의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그 어떤 부정직한 증거라도 나온다면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겠다"며 펄펄 뛰었다. 이 내용은 조사위원회가 7월 13일 당회에 제출한 활동 보고서에 그대로 적혀 있다고 했다.

이후의 내용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오정현 목사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가 1998년 남아공 포체프스트룸대학에서 받은 신학 박사 학위(Ph.D.) 논문은 표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2005년 미국 바이올라대학에서 받은 목회학 박사 학위(D.Min.) 논문도 표절한 자신의 논문을 베낀 것이었다. 작년에는 그가 1988년 쓴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석사 학위(Th.M.) 논문도 표절인 사실이 알려졌다.

표절 자체도 남의 것을 훔쳤다는 문제가 있지만, 진짜 문제는 오정현 목사의 반복되는 거짓말이었다. 신학 박사 학위 논문에는 바이올라대학 마이클 윌킨스 교수의 저서를 베낀 부분이 많았다. 오 목사는 윌킨스 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썼다고 했지만, 윌킨스 교수는 허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금세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나서도, 오 목사는 바이올라대학 총장이 윌킨스 교수에게 허락을 받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조차 거짓이었다. 그는 포체프스트룸대학에 논문 수정을 요청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사망한 교수의 서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그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증거는 명백했다. 포체프스트룸대학도 오 목사가 표절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오 목사는 표절 증거가 드러나면 사임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자신이 표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3년 2월 교인들 앞에서 사과할 때는 "참고 문헌을 쓰는 과정에서 일부 미흡했던 것은 인정한다"고 말한 후, 눈물을 흘리면서 "사임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교회 측 변호사는 오정현 목사의 거짓말에 비해 지엽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 목사의 논문을 조사위원회 차원에서 조사한 것인지 권 장로 개인이 조사한 것인지, 권 장로가 2013년 1월 27일 오 목사와 만난 자리에서 허락을 받고 녹음했는지, 그날 오 목사에게 24시간 내에 사임하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는지, 왜 하필 오 목사가 가장 바쁜 일요일에 만났는지, 표절에 대한 연구 윤리 규정은 2005년 이후 정교해졌는데 그 기준으로 옛날 논문을 검토하는 건 부적절한 것이 아닌지 등을 물었다.

권 장로는 변호사의 질문에 조목조목 대답했다. 그는 사안이 민감하고 실제로 의혹을 제기한 신학교 교수가 압박을 당하는 상황이라 드러나지 않게 조사했다고 했다. 당시 녹음한 것은 오목사가 하도 거짓말을 하니 나중에 자신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으려는 목적이었다고 했다. 오 목사에게 24시간 내에 사임하라고 말한 적 없으며, 단지 교계 한 원로목사의 뜻을 전달한 것이었다고 했다. 오 목사는 평일에는 뭐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일요일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연구 윤리 규정이 최근에 정교해졌다고 해도, 오 목사의 표절은 그런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교회 측 변호사가 자꾸 주변적인 것들만 질문하자 권 장로가 말했다. "2012년 7월 6일, 조사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정현 목사님이 '내가 잘못했다', '당시 교회도 담임하고 있을 때라 바빠서 실수했다', '부족한 사람이니 장로님들이 잘 처리해 달라' 이 정도로만 얘기했어도 지금 사랑의교회가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랑의교회를 떠나거나 개혁을 외치며 따로 떨어져 있는 교인들은 오정현 목사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 아니다. 잘못을 거짓으로 덮고, 그 거짓 위에 또 거짓을 덮고, 결국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말을 바꾸는 태도.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절망하고 질려 버린 것이다.

한 신학자는 논문 표절이 제8, 제9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학위, 즉 명예를 하나님보다 소중히 여겼으니 제1, 제2계명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굳이 십계명까지 갈 것도 없다. 표절이 잘못이라는 것은 어떤 신학적 분석이 필요한 게 아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건 초등학생 아이에게 물어봐도 안다. 역시 가방 끈 길고(박사 학위 2개) 출세했다고(강남 대형 교회 목사) 양심까지 깨끗한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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