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미선 씨는 광화문광장에서 1년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업무는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는 일이다. 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인 그는 광장에 외국인의 모습이 보일 때면 유창한 영어로 서명을 받아 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서명운동대. 광화문광장 사거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다. 그곳에서 1년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미선 집사(51)다. 조미선 집사는 광화문광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다. 대학교 영어 강사이자 대형 교회 집사인 조미선 씨는 강의가 없는 날에는 낮 12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서명운동대에서 봉사한다. (관련 기사: "세월호 현장에서 단기 선교 중이에요")

조미선 씨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 교회에 출석한다. 젊었을 적부터 35년째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모든 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회 청년부에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했다. 남편은 장로가 됐고, 슬하의 세 자녀 역시 같은 교회에 나간다. <뉴스앤조이>는 조미선 씨를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평신도의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는 어떤 의미였는지, 한국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 서명운동의 주목적이었던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서명운동은 어떤 목적인가.

요즘에는 세월호 인양에 초점을 맞춰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서명 자체보다는 세월호 사건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600만 명 서명을 가지고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특별법이 제정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특별법이 제정된 건 대단한 일이다.

어렵게 제정한 특별법이었지만, 정부는 3월 27일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했다. 그것을 폐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600만 명이건 1,000만 명이건 정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다. 광화문광장을 통해, 간담회를 통해 유가족들이 시민들을 만나고, 정부를 긴장시킬 수 있다.

- 광화문광장 분위기는 1년 전과 비교해서 어떤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광화문광장과 일상이 다르다. 아무래도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싸늘하다. 교회가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교에 강의하러 나가도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어쩔 수 없다. 학생들의 현실을 이해한다. 각자 학업이 있고, 당장 취직도 해야 한다. 개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들이 많다. 그런 것들에 허덕이면 세월호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속한 곳에서는 끊임없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얘기한다. 나의 얘기를 통해 그들이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예전 인터뷰에서는 교회 안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현재는 어떤가.

여전히 뻘쭘하고 어색하다. 35년 동안 다닌 교회다. 청년부에서 남편을 만났고, 남편이 작년에 장로가 됐다. 모든 걸 교회 중심으로 생활했다. 교인 몇 명과는 친척들보다도 친하게 지냈다. 서로 생일도 챙겨 주고 그랬다. 지금은 서로 서운해졌다. 교인 중 한 명의 사촌 조카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다. 그분도 교회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교회에서 세월호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통한다. 교인들과 세월호 얘기는 하지 않는다.

- 교회에서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인식한다는 말인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이들이 다수다. 교회가 왜 이렇게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아프다. 교인들과 얘기를 나눠도 공감하지 못한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세월호 참사가 생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당시 이런 설교를 들었다. "그런 걸(세월호 참사) 통해서 사탄이 틈탈 수 있다. TV를 끄고 밖에 나가서 햇볕을 쐐라.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해라."

그렇게 지내다 작년 5월에 봉사자가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진상 규명은 될 줄 알았다.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주신 마음이었다. 그런데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이 거짓말이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활동의 바탕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신앙이 바탕이었다. 하지만 바탕이 되었던 교회가 나를 굉장히 정치라든가 세상일에 과도하게 빠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에는 서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담담해졌다.

▲ 조미선 씨는 광화문광장에서의 봉사 활동을 전도에 비유했다. 전도할 때처럼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시민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잦은 강의로 목이 아플 만도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 교회를 옮길 생각은 하지 않았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남편이 장로가 아니었다면 쉽게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장로가 된 것 같다. 남편과 많이 상의했다. 남편은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남편이 막아 주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별다른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남편에게 감사하다. 남편이 교회를 옮기기 싫다고 하면 옮기지 않을 것이다. 같이 봉사 활동하는 이들 중에 교회2.0 목회자 분들 교회로 옮긴 사람이 많다. 나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막으셨다. 그 안에서 싸우고 영향력을 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 활동을 하다 보면 악에 받칠 때가 많다. 지나가는 일간베스트 회원, 어버이연합 사람들. 나도 모르게 그들과 싸우고 있다. 그럴 때면 다른 봉사자들이 "집사님 왜 그러세요" 그런다. 신앙이 없는 분들이 그런 말을 하면 순간 민망해진다. 1년 동안 신앙 공급을 못 받았다. 교회에서 말씀은 듣는데 뒤돌아 나올 때는 잊고 나온다.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 영광만 강조한다. 답답하다. 최근에는 매주 금요일 2시에 광화문광장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하고 있다.

- 유가족들은 교회가 기도만 하지 말고 행동해 달라고 한다. 평신도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 후 한국교회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다. 유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 유가족이나 봉사자 중에서 다른 종교로는 가지 못하고 가톨릭으로 간 분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한 한국교회에 너무 실망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회를 떠난 이들이 많다. 현장에 있는 우리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직접 느낀다. 목사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왜 못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전도라는 명목으로 기독교인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 근처에서 십자가 들고 앰프 켜 놓고 기도하고 찬송한다. 스스로 목사라고 집사라고 자처한다. 도움은 못 줄망정 오히려 방해한다. 봉사자들, 유가족들이 뭐라고 하겠나. 다 개독이라고 욕한다. 솔직히 숨고 싶다. 가슴이 아픈 건, 나같이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부르는 찬송을 따라하고 있다.

▲ 조미선 씨는 광화문광장에서 한국교회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교회 안에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지난 1년간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 세월호 참사 후 교회에 대한 실망이 큰 것 같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교회가 어떻게 행동하려 하는 것보다 바뀌는 게 우선이다. 3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것도 몰랐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목사가 새로 오면서 1만 성도 비전을 세웠다. 그것만을 가지고 기도했다. 이제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바라보게 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바라보니 세상과 교회가 얼마나 고장 났는지 보였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기복적이고 정치적인지 알게 됐다. 교회 지도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 놓고서는 국가 조찬 기도회는 다 간다. 국가 조찬 기도회는 정치적인 게 아닌가?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말 한마디 못 한다.

여기로 인도한 것도, 지금까지 버티게 한 것도 '신앙'

한국교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조미선 씨였지만, 여전히 '교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리멤버0416' 회원인 강영희 집사와 특히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관련 기사: 평범한 '집사'가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국민 언니') 또 '세월호 파란 바지 의인'이라고 불리는 김동수 집사의 가족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김동수 집사가 자살 기도를 한 사건, 김동수 집사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얘기하면서 마치 제 일인 양 힘들어했다. 김동수 집사가 세월호에 끝까지 남아 학생들을 구조한 것도 신앙의 힘이고, 자신이 1년째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신앙의 힘이라고 했다.

조미선 씨는 1,000명이 넘는 교회에서 자신 혼자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부르짖는 것처럼, 한국교회 전체가 아니더라도 교인 개개인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 주길 바랐다.

▲ 4월 10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만나러 가기 전이었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선체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철저한 진상 규명 등을 요구했다. 유가족들은 이완구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삼청동 총리 공관까지 도보로 이동하려 했으나 경찰에 막혔다. 유가족들은 시민들의 이동을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길만 막아섰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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