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아려 본 세월〉/ 이만열 외 10인 지음 / 포이에마 펴냄 / 232쪽 / 1만 원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시점이네요. 그날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 아니 304명의 별과 세계가 푸른 바다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자연재해도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도 아니었죠. 엄밀한 의미에서 '참사'였습니다.

승객을 구할 수 있는 3시간 정도의 '골든 타임'도 놓쳤고, 선장과 선원들은 퇴선하면서도 승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7차례나 되풀이했죠. 퇴선 명령만 내렸어도 그들 모두가 갑판 위까지 오르는 데 30분이면 충분했다고 해요. 그런 것조차 없었으니, 누군가의 말처럼, 그들은 '학살'당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지났으니 애도의 물결로 나라 안팎의 사람들을 달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면서 말이죠.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살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과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염증과 도덕 불감증이 팽배한데도 배 속의 아이들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식이면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도 되풀이할 수 있죠. 사회 통합과 안전을 위한 국가 개조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게 진상 규명입니다.

모압 왕 발락의 초청을 받은 거짓 선지자요 종교장사꾼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일곱 차례에 걸친 그의 예언은 모두 축복의 예언으로 그쳤죠. 물론 그 예언조차 새로울 게 전혀 없었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한 언약은 결코 변개치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떼를 서서 기도해도 바꿀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면 이제는 아브라함(창 18:33)이나 바울(고후 12:9)처럼 돌아서야만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나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물고 있을 때 바알 앞에서 음행하도록 조장한 게(민 31:16) 그것이죠.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 사회에 염병이 돌기 시작했죠.

바로 그때 그 모든 부패의 고리를 끊어 버린 인물이 등장했죠.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민 25:7)가 그였죠. '비느하스'(פִּינְחָס)란 '뱀의 입'(mouth of serpent) 또는 '놋의 입'(mouth of bronze)1)을 뜻하는데, 뱀의 입에선 '지혜로운 나팔수'를, 놋의 입에선 모세가 매단 '놋뱀2)의 모습'(민 21:9)을 떠올릴 수 있죠. 그가 지혜로운 나팔수로 백성들의 정곡을 찌르든지 혹은 놋뱀을 쳐다보게 하든지 간에, 그는 죄악으로 침몰한 이스라엘 사회의 난파선을 건져 올리는 데(요 3:14) 충실하고자 한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는 입이나 형상을 그려 내는 시늉만 한 게 아니었죠. 이스라엘 사회에 책임 소지가 분명한 주동자와 이방 여인을 창(槍)으로 찔러 처단한 행동 요원(시 106:28-31)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나님의 질투심' 곧 '의로운 분노'(마 21:12)로 여겼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속죄'로 간주해 주셨죠. 그때 비로소 2만 4,000명이 죽어 나던 돌림병도 멈춰 섰죠. 그의 창은 시대의 염증을 도려내는 메스이자 민족을 살린 '활인검'(活人劍)과 같았습니다.

물론 그런 모습만 보면 사회적인 분노로 가득 찬 인물이라고 단정해 버리겠죠. 하지만 그는 사회 통합에 힘을 기울인 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요단강 동편에 속한 세 지파가 '큰 제단'(수 22:10)을 쌓았죠. 그때 요단강 서편에 사는 다수의 지파들은 그들의 행위를 배역으로 간주하여 진멸코자 했죠. 그런데 그들의 진상을 바르게 파악하여 사회 통합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비느하스였던 것이죠.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알량한 성금으로 위로하지 말고 그들의 정수리에 고여 있는 억만 톤의 눈물에 공감해 주어야 한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호소에 공감해 주어야 한다. 유가족들과 희생자가 요구하는 진상 규명의 목적은 징벌과 복수에 있지 않다. 세월호 갑오 참변의 영원한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다. 304명의 안타까운 죽음은 단지 애도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절대 안전 대한민국 창조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191쪽)

이만열 외 10인이 쓴 〈헤아려 본 세월〉에 나오는 김회권 교수의 이야기에요. 이 책을 쓴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걸 원합니다. 세월호특조위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돼야 한다는 것 말이죠. 세월호 참사가 '미필적고의'에 의한 수장 살인 사건이기 때문에, 최초의 사고 발생 후 수습 과정에서 일어난 책임 규명을 바르게 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를 통해서만 안전한 사회는 물론 사회 통합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 일본에선 그런 말이 나돌았다고 하죠. '일억 총 참회'라는 말 말이죠. 그 당시 1억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 모두가 전쟁 책임을 자기들 몫으로 돌리며 참회하고자 했다고 해요. 하지만 전쟁 중에 내린 모든 명령은 천황이 책임진다고 해서 멈칫했는데, 미국은 그 책임을 천황에게 묻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은 누구 하나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죠.

세월호 참사를 그렇게 덮으려고 하는 걸까요? 문제는 한국 개신교 일각에서 그 책임을 교인들에게 돌리며 'n분의 1 책임 분산' 논리로 비약시키려 한다는 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각성이 필요하겠지만 우선적으론 책임 규명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 후에 국민들의 타락을 부채질한 한국교회가 책임을 지며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줘도 늦지 않을 테니 말이죠. 한국 개신교가 비느하스처럼 정의로운 나팔수와 행동 요원이 되지 않으면 세월호의 항로는 앞으로도 자꾸 되풀이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샬롬.

각주)

1) www.blueletterbible.org/lang/lexicon/lexicon.cfm?Strongs=H6372&t=KJV
2) www.torahresource.com/Parashpdfs/115CommentsT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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