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를 앞둔 4월 14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광화문광장에 기독교인 약 600명이 모였다. 1주기 추모 예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날 오후, 4·16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와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4월 16일의 약속 국민 연대'(4·16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온전한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선언이 없으면 16일로 예정된 추모식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예배를 주최한 세월호기독교원탁회의는 피해자 가족들의 뜻을 따라 추모 예배가 아닌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배상·보상 일정 중단을 위한 기독인 연합 예배'로 바꿨다.

예배 시작 시간인 저녁 7시가 되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희생자와 미수습자를 기리기 위해 깔아 놓은 304개의 의자는 금세 주인을 찾았다. 시간이 더 지나자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은 약 600명의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직장을 마치고 정장 차림에 온 사람들과 대학 기독교 동아리에서 온 대학생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단체로 방문한 고등학생들 등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다. 영상 5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예배를 드리는 엄마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 4월 14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기독교원탁회의가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배상·보상 일정 중단을 위한 기독인 연합 예배'를 주최했다. 원래 1주기 추모 예배로 모일 예정이었지만, 희생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추모식을 연기하겠다고 밝히면서 바뀌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예배에는 약 6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정만

예배가 시작되고 유가족을 대표해 말하기로 했던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예정보다 앞서 마이크를 잡았다. 팽목항에 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발언한다는 그는, 우선 1주기 추모식을 연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선체 인양과 대통령 시행령 폐기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1주기를 추모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일 년이 지나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추모하냐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공식적인 추모식은 연기할 수도 있지만, 1주기 전후로 진행 예정인 행사에는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4월 16일과 18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범국민 행사에 기독교인이 가장 선두에 서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유경근 위원장은 유가족들의 대변인으로서 오래 활동했다. 그는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연합 예배에 선 예은이 아버지는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전해 보겠다며 말을 이어 갔다. 다음은 유 위원장 발언의 전문이다.

"오늘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을 읽었는데요,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 본문을 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성경은 '여러분은 나가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 여러분은 나가서 이 세상을 바꾸십시오. 여러분은 나가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선한지를 알려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누가 변화해야 하느냐. 바로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 기준과 선택, 그 가치관을 내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가끔 교회나 성당에 가면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직후 기울어 가는 배 안에서 2학년 3반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묵고 있던 방에 둘러앉아서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영상으로도 있는데요, 빛나라가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기서 그 아이들이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배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셔야 맞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 아이들과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번쩍 들어서 공간 이동하듯이 육지로 옮겨 주셔야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절박한 순간에,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기도를 왜 외면하셨을까요. 제가 답을 듣고자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비는 멈추지 않고 기온은 점점 떨어졌지만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은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들은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위원장의 발언에 귀 기울였다. ⓒ뉴스앤조이 이정만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배가 기울어진 바로 그 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여서 정말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그들이 모여서 기도한 것은 잘한 걸까요 잘못한 걸까요. 이것 역시 답을 듣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참사를 직접 겪으면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반성과 후회, 회개를 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나오신 분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 궂은 날씨에 비를 맞으면서, 이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나와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많은 신앙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만 하면 신앙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기도를 얼마나 세게, 열심히 또 자주 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왔고요. 4월 16일, 그 배 안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던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자리에 제가 있었으면 저도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도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 고통스러울 때, 아플 때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참사를 겪으면서 제가 배운 것은 (그것은) 잘못이라는 겁니다. 기도는 평안할 때, 아무 일 없을 때, 평소에, 늘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익히 알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그 순간에 내가 행동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팽목항에 가야 하기에 예정된 순서보다 먼저 발언을 시작했다. 약 30분 동안 계속된 그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 뉴스앤조이 이정만

제가 왜 이 로마서의 말씀으로 감동을 받았냐면,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 자신이 변화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되어야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을 하시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을 하실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배 안에서 기도하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얘들아,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야, 뛰쳐나갈 때야! OOO 선생님, 왜 애들 붙잡고 기도하고 있어! 나가라고 떠밀어야지!' 그 순간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바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평소에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잘 알기 위해 기도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감히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기울어져 가는 세월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서 일어나지 못하고, 여기서 탈출하지 못하고, 여기 함께 서서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다 함께 가라앉아 죽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작년 4월 16일 이후로 1년 52주 가운데 딱 한 주만 교회에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온 교인이 함께 기도를 하실 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셨습니다.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 혼자서 2만 명이 넘는 분들의 서명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는 광화문광장에 나와서 1인 시위를 계속하셨습니다. 또 교단 내에서 세월호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계신 다른 목회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회개를 요구하시는, 매우 좋으신 감사한 목사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딱 한 번, 작년 추수감사절에 교회에 갔다가 지금까지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 유경근 위원장은 물론 신앙에 회의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자신을 잡아 준 것은 또한 기독교 신앙인들이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정만

당연히 신앙에 회의가 있지요. 나는 정말 신앙을 가지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예은이에게 신앙이 정말 중요하다고 가르쳤는데, 그래서 늘 교회에서 좋은 일에는 앞장서서 많이 하라고 가르쳤는데,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 당연히 신앙에 회의가 오지요. 그러나 거꾸로, 회의를 갖게 된 저에게 힘을 주시고 새로운 용기를 주신 분들 역시 저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계신 기독교 신앙인들이셨습니다.

제가 영원히 교회에 안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죠. 결정적으로 못 나가는 이유는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에요. 교회에 나가면 예은이가 보입니다. 예은이가 앉아 있던 의자. 예은이가 뛰어놀던 잔디밭과 놀이터. 예은이가 노래하기 위해 붙들고 있던 마이크와 기타. 탁구 치던 탁구대, 함께 텃밭을 일구던 교회 뒤 작은 밭. 교회에 온통 예은이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어요. 예은이 생각에. 그런 이유가 사실 가장 크긴 합니다. 이건 저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이번 참사를 겪은 모든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이것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트라우마센터를 지어서 심리 치료를 해 준다고요? 필요 없습니다.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우리 예은이가,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도록 방치되었는지, 왜 아무도 구조를 안 했는지. 그거 하나만 알면 살 것 같습니다. 아니 살 것 같은 게 아니라 그거 하나만 알면,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은이에게 가고 싶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예은이가 간 모습 그대로 저도 빠져서 예은이한테 가고 싶습니다.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그런데 못 합니다. 왜요? 이 상태에서 제가 가면 저는 지옥 갈 것 같거든요. 예은이는 천국에 가 있는데, 저는 지옥 갈 것 같거든요. 그러면 죽어서도 못 만나는 거 아닙니까. 천국에 가서 예은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한마디라도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면 못 만날 것 같아서 못 갑니다.

▲ 지난 1년 동안 한 번밖에 교회에 가지 않았다는 유경근 위원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회에 가면 여러 곳에서 예은이가 보입니다. 예은이 생각이 나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정만

제발 미안한 아빠, 부끄러운 아빠로 만들지 마시고 단 한마디라도 예은이한테 '이렇게 된 거란다'라고 설명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것만 되면 저희들은 돈, 필요 없지요. 그깟 돈 아무런 필요 없지요. 백억, 천억 원을 준다고 해도 필요 없지요. 억울하게 눈도 못 감고 가게 만들지 마시고, 예은이를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그것만이 저희 유가족들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더불어 안전한 사회, 안전한 나라 만들어지면 그때 가서는 예은이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지요. '정말 미안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했잖아. 그걸로 용서해 줘.' 한마디 더 할 수 있겠지요.

날이 많이 궂습니다. 비도 많이 오고요. 오늘 날씨가 어떤 날씨인지 아세요? 작년 4월 16일, 제가 정신없이 시속 200킬로로 차를 몰고 세 시간 만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한 주간 내내 바로 이 날씨였습니다. 비가 끊이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은 너무 차고 발은 시리고 온몸은 꽁꽁 얼고,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사흘 내내 의자에 엉덩이도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날씨가 바로 이 날씨입니다.

유가족들이 밖으로 나올 때마다 비가 와요. 밖에서 뭘 하려고만 하면 비가 와요, 거르지 않고. 저희들은 '아이들이 우는 거다'라고 얘기합니다. 비는 누가 내려 주나요. 이 세상은 누가 만드셨나요. 저희들이 뭐라도 외치려고 나올 때마다, 밖으로 뛰쳐나올 때마다 날씨가 궂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보라가 치는 것은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 차가운 바닷속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 갔던 아이들, 그 고통에 비하면 지금 너희가 겪은 고통이 비할 바나 되겠느냐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제라도 나는 너희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믿고 저희들은 그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항상 힘을 내는 것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던 여러분, 그 약속이 얼마나 큰 약속인지 저희들이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번 주 지나서 시행령 통과되고 선체 인양 안 되면, 이제 우리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부끄러우냐 안 부끄러우냐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함께하실 수 있도록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이야기는 예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말씀을 전하기로 했던 교계 원로 문대골 목사도 예은이 아버지가 성경 본문을 가지고 정확하고 꼭 필요한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자신은 더할 것이 없다며 짧게 설교를 마쳤다.

 

두 시간이 넘는 긴 예배가 끝나고, 참석했던 기독교인 중 일부는 열을 지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기독교인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평화 행진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청와대 방향으로 계속 가길 원했고,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며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격렬하게 대응하던 김준영·백인혁·이종건 등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과 이관택(고난함께)·배성진(한국기독교장로회) 등 목회자 몇몇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현장에 남아 경찰 병력과 계속 대치하던 목사들과 평신도들은 15일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동료 목사와 신학생이 연행되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자신들도 집시법을 위반했으니 체포하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헌정(향린교회)·박승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장병기(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정태효(기독여민회)·양재성(예수살기)·이승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목사 등 목회자 9명과 안성용(기독교평신도시국대책위)·최욱준(성서한국) 등이 15일 새벽 1시에 종로경찰서로 자진 출두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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