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아들 임요한 군을 잃은 임온유 목사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4월 21일이었다. 침몰 6일째였지만, 임 군은 물속에서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임온유 목사는 담담했다. 그는 기자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다 맡겼어요"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세월호에서 아직 아들 못 건진 어느 목사의 기도)

임온유 목사는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 목사다. 그는 쉽게 말해 '부흥사'다. 교회에서 매주 금요일 '치유 집회'를 열고, 다른 교회에 부흥회와 기도회를 인도하기도 한다. 흔히 그릴 수 있는 부흥사의 이미지처럼, 그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괄괄하다. 또 한국교회 부흥사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7일 <뉴스앤조이> 기자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임온유 목사는 교계 언론들이 대형 교회 욕하는 것보다 이단 대처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세습이 뭐가 문제냐며, 자꾸 그런 걸 지적하니 기독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것이라고 했다.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4월 7일, 유가족 임온유 목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아들 임요한 군 이야기를 하면서 격하게 흐느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 목사는 기자와 많은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언론사에 대한 불신이 상당했다. 취재한다고 난리를 쳐놓고 제대로 보도하는 곳은 한두 군데밖에 없다며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기자는 임 목사에게, 교회와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임온유 목사는 휴대폰으로 <뉴스앤조이> 기사를 읽어 보더니 서서히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부는 자기들 선거나 당리당략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요.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잖아요. 인간 이하예요.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고 했더니 그때 배상‧보상 기준 발표했잖아요. 사람의 탈을 썼다면 그럴 수는 없죠."

그의 마음속에는 언론과 정부, 교회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 있었다.

"큰 교회 목사님들 한두 분만 얘기해 주면 되잖아요. '우리가 한번 강도 만난 자들을 위해서 힘을 보태 주자'고. 그러면 교인들이 유가족들을 도와주지 않겠어요? 맨날 신도 10만, 20만 얘기하면 뭐하냐고. 무슨 놈의 종북 종북, 세월호 참사에 정치적인 세력이 개입했다는 둥, 아니 지금 자식 죽었는데 무슨 정치가 개입합니까.

우린 강도 만난 사람들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지치고 쓰러져서 겨우 숨 쉬고 있어요. 내가 지금 약을 몇 개 먹고 있어요. 지금까지 병원에 한 번도 안 다닌 사람인데, 몸이 항상 피곤하고 잠도 설치고, 신경 쓰니까 소화도 잘 안 되고…. 예수님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교회가) 좀 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 임온유 목사가 직접 제작한 긴 현수막이 강단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이 현수막을 등에 매고 도보 행진을 하기도 했다. 임 목사는 한동안 현수막에 있는 요한이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아들 임요한 군에 대해 얘기할 때, 임온유 목사는 무너졌다. 아들이 목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어렸을 적부터 엄격하게 가르쳤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지 않았을 거라며 울부짖었다.

"오늘도 하늘공원에 있는 내 아들 보러 가서 많이 울다 왔어요. 시간 되는 대로 가서 기도해요. '하나님, 우리 아들이 왜, 어떤 것 때문에 그 차가운 물속에서 숨도 못 쉬고 죽어야 했는지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고 괴롭고 힘들어요.

내가 내 아들 5살 때부터 금식시켰어요. 정말 진실한 목사 만들어 보려고. 교인이 많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부드러운 진짜 목사로 만들기 위해서. 파지 팔아서 500원, 1,000원 받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목사 만들게 하기 위해서…. 고아, 과부와 함께하는 건 몸에 배어야만 나올 수 있는 거니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러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그 어린놈 1년에 3일씩 금식시켰다고. 지금도 그 생각하면…. 그 어린놈이 뭘 알겠어. 지금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금식시켰겠냐고. 지금도 그 말이 생각나요. '아빠, 배가 너무 고파요.' 꼭 성경을 하루 한 장씩 읽어야, 시편을 한 편씩 써야 밥을 먹게 하고…. 내가 하늘공원 갈 때마다 아들한테 미안하고. 좀 컸을 때 시켜도 됐는데, 그 어린 나이에 너무 혹독하게 한 거 같아 가지고….

하나님한테 억울한 건 없어요. 그러나 내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우리 아들한테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너무 미안하고, 우리 아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너무 미안해서 갈 때마다 내가 그 자리에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아빠로서 너무 너무 미안하고, 너무 힘들어요."

미안하다는 말이 두서없이 쏟아졌다. 참사 직후 처음 만났을 때 담담했던 임온유 목사의 모습은 없었다. 그 순간은 목사도, 부흥사도 아닌 그냥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다. 어렸을 적 혹독하게 가르친 것에 가슴이 찢어졌지만,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건 참사 1년 동안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는 점이었다.

"정부에서 뭐라도 진행이 됐으면 조금이라도 덜할 텐데, 얼마 안 있으면 1년이잖아요. 정부가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다고 목사가 욕할 수도 없고 그놈들을 저주할 수도 없고. 가슴이 아파, 가슴이 아파."

신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자식을 잃은 슬픔에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유가족들 중 진보적인 사람들만 투쟁하는 게 아니다. 참사 이후 1년간 정부의 태도를 생각하면, 임온유 목사처럼 보수적인 사람도 폭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 목사는 정부에 대한 기대도, 교회에 대한 기대도 버렸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깨지는 말아야 할 거 아니야!" 그의 말에서 세월호 참사 앞에 선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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