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멘토링사역원 소식지 2호를 발간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에서 하는 다양한 사역 소식도 전하고, 김영봉·유기성·김기석·박득훈·박대영 목사 등 여러 분들의 글도 실었습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소식지에 실린 글을 하나씩 게재해 <뉴스앤조이> 독자들과 나눕니다. - 편집자 주
▲ 목회멘토링사역원이 기획한 '멘토와 함께하는 설교 학교'는 설교에 대해 정직한 고민을 하고 있는 말씀의 일꾼들에게 소중한 조언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목회멘토링사역원 자료 사진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교회가 타락한 시대에 교회를 가장 핍박하는 대상은 다른 교회이고, 성도를 가장 핍박하는 것은 다른 유사 성도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가장 불온한 사람은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이었고, 심지어 그 말씀을 사실이라고 믿고 그대로 살려고 고독한 싸움을 자처하며 기득권을 버리고 기성의 세계관으로부터 고립과 유배를 자취하는 '거룩한 바보들'이야말로 생계형 직업 종교인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자들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생경한 것은 원음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은 들은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든지 이 시대가 미쳤다고 생각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변혁은 성도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전하고 믿고 사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해도 그건 알 바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이 시대의 균열은 만들어 냈고,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자들에 의해서 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루터가 보름스 공의회 앞에서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설교의 두려움, 설교의 즐거움

이런 때에 설교자로 산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 되든지 사람을 미치게 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자는 욕망과 폭력이 견고하게 지배하는 광기의 사회를 격파하는 첨병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명과 메시지를 감당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왜소하고 보잘것없으니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만을 가장 두려워하여 거침없이 그분의 말씀을 대언할 때 세상 어떤 힘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생생한 말씀 사건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을 바꾸고 살리는 일이기 전에 설교자 자신을 새롭게 하고 살리는 길입니다. 설교의 위기를 말할 때 그 핵심에는 메시지의 변질과 설교자 자신의 변질이 있습니다. 둘은 한 동전의 양면처럼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가장 절망스러운 일이 되고, 가장 거룩한 일이 가장 거북한 일이 되고, 가장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 가장 배신을 자행하는 일이 되고, 가장 즐거운 일이 가장 질겁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설교입니다. 

아들이 말을 배울 때 성구를 암송시켰는데, 아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가르쳤더니 "네 부모를 공격하라"로 알아듣고 외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지어 전한다 해도 본문을 왜곡하고 설교자 자신이 변질되면 우리의 설교는 금세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격하는 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엔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설교하기를 두려워하다가, 철이 들면 청중을 해치고 교회를 어렵게 만들지 몰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느새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내 양을 먹으라"는 말씀으로 겁도 없이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 될지 몰라 두렵습니다. 묵상과 씨름을 거치지 않고, 공감과 통감의 마음이 없이 너무 수월하게 흘러나온 말들에, 사람들이 너무 신속히 반응하는 것을 보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흐뭇해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말씀이 스스로 그 능력을 드러내어 청중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부복하는 것으로 즐거워하기보다는 설교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즐거워하여 가만 두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내가 말씀을 지어내기보다는 말씀이 내게서 흘러나오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습니다.

소중한 조언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

단시간에 이런 갈증과 갈망을 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은 사실일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는 만큼, 내 안에 성경 본문이 새겨지는 만큼, 청중과 시대를 향한 공감과 통감의 마음이 내 안에 스며들고 번지는 만큼 아주 서서히 그것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수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고전(苦戰)하지 않고 고독(孤獨)하지 않고 이를 수 있는 고전(古典)은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셰르파가 있다면 고산준령을 넘어 볼 엄두를 낼 수 있습니다. 이정표가 있다면 처녀림이라도 가 볼 만할 것입니다.

이번 목회멘토링사역원이 기획한 '멘토와 함께하는 설교 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설교에 대해 정직한 고민을 하고 있는 말씀의 일꾼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편의 설교가 나오기까지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데, 이번 설교 학교는 특별히 각 단계, 각 요소들에 더 먼저 그리고 더 나중까지, 더 오래 천착한 멘토들로부터 소중한 조언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3학기로 구성되는데, 1학기는 설교란 무엇인가, 2학기는 묵상과 해석의 과정, 3학기는 원고 작성에서 설교까지를 각각 그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결국 설교는 설교자의 문제이고, 본문의 문제인 만큼 사람의 문제라는 데에 이르면 그것이 얼마나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길을 같이 가자고 이끌어 주시는 믿음의 선배들이 계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13회 모두 참석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특별히 관심이 있는 주제에 관하여,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곳에 찾아가 듣는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강사들이 이론적인 강의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강의한 내용이 반영된 설교 원고를 직접 참가자들에게 제공하여 좀 더 깊이 맛을 보고 감을 잡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운동을 배울 때 전문가의 원 포인트 레슨 한 번으로 크게 나아진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시행착오를 거친 자만 말할 수 있고 많은 임상을 거친 자만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적인 식견을 통해 우리 자신의 설교를 잘 진단받아서,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설교,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반영하는 설교, 그리하여 설교자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기적을 낳는 설교의 길에 우리 모두 들어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설교가 여전히 두려운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즐거이 기다려지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대영 / <묵상과 설교> 편집장, 광주소명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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