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만 미국 22개 주에서 동성 커플 결혼식이 허가됐다. 동성 결혼에 대한 의식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동성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과 지지하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종교를 빌미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미국 기독교계, "마음껏 차별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 논란)

지난 2주 동안 미국 뉴스에서 자주 접한 소식 중 하나가 이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는 종교자유회복법(Religious Freedom Restoration Act)이다. 지난 3월 26일, 미국 인디애나(Indiana) 주 마이크 펜스(Mike Pence) 주지사는 주 의회를 통과한 종교자유회복법을 승인했다. 이 법안은 '사업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특정 그룹에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운영하는 결혼식장을 동성 커플에게 빌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 '사업주가 종교적인 양심에 따라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한 인디애나 주 종교자유회복법. 마이크 펜스(Mike Pence) 주지사가 이 법안을 승인하자, 인디애나 주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이들은 '인디애나 주민 모두에게 자유를'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성 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안에 반대했다. (Freedom Indiana 페이스북 갈무리)

주지사가 법안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디애나 주와 미국 전역에서 성 소수자 그룹과 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다. 법안이 명시한 '특정 그룹'이 성 소수자를 지칭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인디애나 주를 포함한 다른 주의 정치인들도 차별을 정당화한 법을 승인한 펜스 주지사를 비판했다.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시 그레그 밸러드(Greg Ballard) 시장은 이 법안이 인디애나 주 주민들 사이에서 합법적인 차별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코네티컷(Connecticut) 주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시 등에서도 소속 공무원들이 인디애나로 출장을 가지 못하도록 행정 명령을 통해 금지했다.

펜스 주지사가 보수 기독교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법안을 승인했지만, 교계에서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미국의 대표 진보 교단인 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는 3월 30일 성명을 발표하고 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교단 중 하나인 그리스도인의교회[The Chrsitian Church(Dsciples of Christ)]도 인디애나 주지사의 종교자유회복법 승인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교단은 4월 1일 배포한 보도 자료를 통해 인디애나 주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2017년 교단 총회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교단 대변인은 새로운 법안이 '특정 그룹의 사람은 인디애나 주의 사업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내용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교단 대표인 샤론 왓킨스(Sharon Watkins)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로서 종교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사실 우리 교단이 믿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두를 식탁에 초대하신 것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라고 했다.

시민사회, 정치·종교계는 종교 자유와 관련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따금씩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이번 인디애나 주의 종교자유회복법은, 기업들도 법안의 부당함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인디애나 주에 본사를 둔 여러 기업들과, 애플·갭·나이키·리바이스 등 대형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나서서 차별을 허용하는 종교자유회복법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은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서 자신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자로 커 왔다며 자신도 종교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한 번도 종교를 차별을 허용하는 도구로 이용해도 괜찮다고 배운 적이 없다며, 소수자 차별은 정치나 종교적 이슈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문제라고 했다.

다각도에서 들어온 압박 탓인지, 4월 1일 펜스 주지사는 법안을 수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전국에 생방송된 인터뷰에서 "나는 차별을 혐오한다. 종교자유회복법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면허증이 아니다. 명백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법안이 특정 그룹 차별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 미국 인디애나 주 마이크 펜스(Mike Pence) 주지사는 신앙을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안을 승인했다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인디애나 주 종교자유회복법은 사업주가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안 여러 기업가들이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서면서 펜스 주지사는 이미 통과된 법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가디언> 동영상 갈무리)

보수 기독교계를 등에 업었던 펜스 주지사가 법안을 수정하겠다고 밝히자, 이번에는 그를 지지했던 기독교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인 전미가족협회(American Family Association)와 가족연구위원회(Family Research Council)는 법안을 반대했던 기업들을 상대로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바탕 논란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아칸소(Arkansas) 주에서도 인디애나 주의 종교자유회복법과 비슷한 법안의 승인 여부를 놓고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특히 아칸소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월마트가 법안을 반려하라고 주지사를 압박했다. 4월 2일, 아사 허친슨(Asa Hutchinson) 아칸소 주지사는 '사업주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삭제된 종교자유회복법에 서명했다.

인디애나와 아칸소 주의 경우처럼, 미국에서는 종교 자유와 차별 금지에 관한 싸움이 본격화 될 움직임이다. 2016년 대선 출마를 예고한 텍사스 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Ted Cruz)는 이번 일이 미국의 수정헌법 1조를 공격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치 전문 잡지 <폴리티코>는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막지 못한 보수 기독교계가 '종교의 자유'를 무기로 새로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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