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보다는 부채감이 가슴 한가운데를 짓눌렀다. 4월 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2015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세월호 참사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흐느끼며 말을 이어 갈 때였다.

▲ 세월호 참사 실종자인 다윤이 어머니 박은미 씨가 4월 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실종자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세월호 속에 제 딸 다윤이가 있습니다. 은화,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이영숙 님, 권재근 님, 어린이 혁규. 아직 9명의 실종자가 세월호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잔인한 4월, 1년을 맞고 있습니다. 저희는 아직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가고 있고요. 저희가 엄마인데 아빠인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와서 내 딸을, 내 아들을, 내 남편을, 내 가족을 찾아 달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제 딸 다윤이… 가정 예배드릴 때…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했던 딸입니다. 1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실종자 가족들 하루하루 피가 마르면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가족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이 제 딸 다윤이, 그리고 실종자 9명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도해 주시고 함께 싸워 주세요. 저희가 실종자가 아니라, 저희도 유가족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윤이 어머니는 힘겹게 말을 마치고 허리를 구부린 채 한참을 울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결국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단상을 내려갔다. 부활절 찬양이 이어졌지만 이 땅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예배에 참석한 5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은 눈물을 삼키며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차마 기쁨을 얘기할 수 없는 자리였다. 다윤이 어머니의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년과 다르게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중고생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기자가 대화한 참석자들은 대부분 각자 다니는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린 후 거리로 나온 것이었다. 한성원 씨(29)는 "부활절이라 교회 안에서는 기쁨을 이야기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죄송스러웠다. 유가족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남윤국 씨(30)는 "부활절이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우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각자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하고 나서 광화문광장으로 나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도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소망이 '부활'이라고 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며 기뻐한다. 그가 첫 열매가 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활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도 희망으로 다가올까. 교회가 말하는 기쁨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날 예배에서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예수의 말씀을 따라서 고난당한 자와 아픔을 나누어야 할 기독교 지도자들의 무자비한 말들, 교회의 무관심과 싸늘한 시선, 피해자인 유족들의 인권이 마구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외면했던 교회의 무개념을 보면서, 저는 한국 기독교가 과연 예수를 믿는 존재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략) 진실을 가둬 놓으려는 악한 무리들이 저렇게 공공연하게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살아있는 자처럼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죽은 자처럼 침묵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시간은 지금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무덤, 아노미와 같습니다. (중략)

부활은 진실이 거짓을 이긴 사건이며 생명이 죽음을 이긴 사건입니다. 자기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던 성전 중심의 유대 지도자들이 로마의 권력과 결탁하여 죄 없는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를 살리심으로 거짓이 진리를, 불의가 정의를 이길 수 없음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예수 떠난 빈 무덤 같을지라도 제가 여러분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시며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사실 때문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소외된 갈릴리를 먼저 찾으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자녀들이 죽어 갈 때 내가 함께 죽었다. 너희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을 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다. 권세자들은 나를 죽여 무덤에 가둠으로 자기들이 이긴 것이며 진실은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다시 살지 않았느냐.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어둠의 세력들이 너희를 무덤에 가둬 놓고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 내 손을 잡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으며 너희는 나와 함께 승리할 것이다.'" (설교 전문 바로 가기)

▲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가 설교했다. 화정교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와 어머니 박은희 씨가 다니는 교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예배 중간 성찬식도 진행됐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 끝까지 함께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며 살아갑시다." 박득훈 목사가 파송의 말씀을 전하고 축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고통당한 자들에 대한 부채감은 결단으로 이어졌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부활의 희망을 부여잡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고 유가족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곁에서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향해서는 "진실 규명을 방해하지 말고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예배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비가 와서 쌀쌀한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자, 4일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한 유가족 도보단이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왔다. 유가족들은 상복을 입고 자녀들의 영정 사진을 손에 든 채 1박 2일을 걸어왔다.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과 지나가던 시민들은 박수로 도보단을 맞이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예배 이후 진행되는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 유가족들이 자녀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안산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왔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촛불 집회를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다음은 예배에서 선언한 결의문 전문.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 결의문

하나님, 새봄이 되었습니다. 남쪽 땅으로 아주 떠날 줄 알았던 새들도 돌아오고,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꽃들도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다 못해 그들을 따라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들이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 중 그 누구도 이들의 희생과 실종을 바라보며 분노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건져 왔지만 그들이 죽어야만 했던 원인은 건져 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 숫자는 가져왔지만, 왜 아직까지 실종된 채 저 차가운 바다를 떠다녀야만 하는 이유는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2000년 전 당신의 아들이 죽을 때도 사람들은 그 죽음의 이면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의 몸뚱이만을 죽이면 그의 말씀과 정신까지 함께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죽이면 죽일수록 말씀과 정신은 살아났습니다. 그를 따르겠다는 제자들과 사도들은 밀물처럼 밀려 왔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끝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는 죽음이 새로운 시작임을 아셨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도 똑같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장사 지내고 실종자들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면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줄 압니다. 세월호 정신은 세월호 유족들만의 것이라 치부합니다. 세월과 함께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는 영원히 묻히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아픔 곁에 머물렀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아파했습니다. 진실을 목말라하며 함께하겠다는 약속 위에 서 있습니다. 진리는 죽음보다 강합니다. 정의는 돈 몇 푼에 굴하지 않습니다. 죽음보다 약하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돈 몇 푼에 묻힌다면 그건 정의가 아닙니다. 세월호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잃었는데 세월호의 진실까지 잃을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로 안타까운 생명이 실종됐는데 세월호의 원인과 책임까지 실종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기울여 온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소리는 대충 흘려듣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들의 소리가 어떤 소리입니까?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자들의 소리이며,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며 정부를 철석같이 믿은 죄밖에 없는 자들의 소리가 아닙니까?

정부는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위해서 하는 소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국민들만 있다면 정부는 언제나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간접 고용, 비정규직 문제로 사투를 벌이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분단 모순으로 공안 탄압에 시달리며 갈 곳을 잃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제주 강정에서, 월성에서, 밀양에서, 평택에서, 서울에서, 방방곡곡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면 그 정부는 결국 국민들에게 버림받을 것입니다. 저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한 번도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군림한 위정자들은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언합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민들을 외면하면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특별 조사를 약속했으면 조사받아야 할 사람들이나 부처는 배제해야 합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 꾸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특별조사위원이 된다면 누가 비웃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우습게 여기면 국민은 이 정부를 반드시 우습게 만들 것입니다.

그 어떤 억압과 불의에도 부활은 죽은 자의 몫으로 반드시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함께 살아나셨듯이 세월호는 진리와 함께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 진실을 은폐하면 할수록 진실은 더욱 확연히 살아납니다.

이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에 참석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활의 함성으로 외칩니다.

하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방해 말고 진실 규명에 협조하라.

하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정부 시행령을 철회하고 특조위 요구를 수용하라.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의사만큼 의혹과 진상은 규명되며, 우리의 단결만큼 조사는 성역 없이 실시되며, 우리의 확신만큼 선체는 온전히 인양되리라 확신합니다. 아울러 한국교회와 함께 세월호의 진상이 밝혀지고 유가족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곁에 머물며 기도할 것이며 유가족들과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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