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발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발언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 온전한 선체 인양을 호소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4월 16일 참사가 발생하고 저희 부모님들은 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그리고 목숨까지 걸고 단식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특별법 제정해 달라고. 특별법 제정하면 왜 죽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힘들게 어렵게 11월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하늘에서 웃었을 겁니다. 행복해했을 겁니다. '엄마 아빠 고생해서 그래도 특별법 제정했네.'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이번 3월 27일 특별법 시행령 나온 거 다 아실 겁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시간으로 다시 돌려놓고 있습니다. 다시 침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서 웃을까요? 엄마 아빠들이 머리 깎고 다시 차가운 길바닥에 나와 있습니다. 아이들 통곡하고 울 겁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아이들 하늘에서 행복하게 지내게, 웃고 살게 해 줍시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무겁고 단호한 어조로 발언했다. 머리는 하얗게 깎여 있었다. 그와 함께한 다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4월 2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48명은 광화문에서, 4명은 진도 팽목항에서 머리카락을 밀었다.

오후 1시부터 진행된 기자회견과 삭발식에는 유가족 150명과 취재진 100여 명, 시민들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모두들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삭발하는 사람 중에는 희생당한 단원고 아이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들의 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잘려 나가자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취재하던 기자들도 카메라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머리카락이 없어지는 동안 유가족들은 흐느끼기도 했고,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3가지를 요구했다. △4월 9일 입법 예고되어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 △정부가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배상·보상 절차 중단 등이다. 이 중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시행령 폐기다. 지난해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던 유가족들이, 이번에는 시행령 폐기를 외치며 다시 한 번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

▲ 유가족 150명은 4월 2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과 삭발식을 했다. 3월 30일부터 노숙 농성을 하며 1주기를 맞으려 한다. 한 맺힌 절규가 다시 울려 퍼진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했을까. ⓒ뉴스앤조이 구권효

특별법 시행령, 무엇이 문제인가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시행령 폐기'다. 시행령이 어떻기에 이를 원천 철회해야 한다는 것일까. 시행령의 내용을 간단하게 짚어 보자.

해양수산부는 3월 27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이변이 없는 한 4월 9일 차관 회의를 거쳐 1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해수부가 내놓은 시행령을 '쓰레기 시행령'이라고 부르며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행령이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구성되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먼저 해수부의 시행령은 특조위의 주요 직책을 모두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이 맡게 했다. 해수부 시행령에 따르면, 사무처 아래 기획조정실과 진상규명국, 안전사회과, 피해자지원점검과를 둔다. 기획조정실장을 보좌하는 기획총괄담당관이 있는데, 이 기획총괄담당관이 진상 규명, 안전 사회 건설, 피해자 지원 대책 전체를 기획하고 조정하게 돼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괄담당관은 정부가 파견하는 일반직 고위 공무원이 맡게 된다. 이외에도 진상규명국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1과장도 정부 파견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다.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이 정부를 상대로 조사하겠다는 말이다.

진상 조사 범위도 터무니없다. 해수부의 시행령에 따르면,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의 업무는 "4·16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다. 정부가 조사한 것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거면 특별법을 왜 만들었을까.

편제 자체도 특별법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게 구성됐다. 진상 규명 파트는 '국'의 형태를 갖췄지만, 안전 사회 건설과 피해자 지원은 '과'로 격하됐다. 특별법에 따라 특조위에는 진상규명소위원회와 안전사회소위원회, 지원소위원회라는 상설 위원회가 있는데도, 이 3개 소위원회가 진상규명국과 안전사회과, 피해자지원점검과와 업무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업무를 기획조정실에서 관리 감독하는 셈이다.

이외에도 해수부 시행령의 맹점들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발표한 성명서에서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가기: [성명] 세월호 특별법 무력화하는 정부의 시행령안 즉각 폐기하라) 특조위원 중 여당 추천 위원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도 해수부의 시행령을 반대하고 있다.

▲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제작한 피켓.

내용도 그렇지만 해수부가 시행령을 내놓은 과정도 지적받고 있다. 특조위는 이미 한 달 열흘 전인 2월 17일에 특별법 시행령(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정부 부처에 제출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특조위의 시행령에 대해 어떠한 응답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지난 3월 27일에 갑작스럽게 시행령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특조위의 시행령은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이라는 특별법의 목적에 부합한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특조위의 모든 주요 직책에 민간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게 했다.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의 업무도 "4·16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조사"다. 편제도 체계적이다. 진상 규명뿐 아니라 안전 사회 구축과 피해자 지원 부분도 모두 '국'의 위치다. 각 국은 각 상설 소위원회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특조위의 시행령이 진상 규명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더욱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치 작년 유가족들이 제안한 세월호특별법안을 끝내 무시했던 정부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부활절을 맞으려고 하나

▲ 이날 저녁 광화문광장에서는 촛불교회 기도회가 열렸다. 최헌국 목사(사진 위)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한 이때, 그리스도인들이 유가족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작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이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을 알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소원에 한국 사회는 둘로 나뉘었다. 유가족들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며 떼 좀 그만 쓰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와 실종자를 위해서 기도는 했지만 특별법 제정에는 시큰둥했다. 교회는 유가족들과 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특별법 제정'만큼 중요한 '시행령 폐기'가 이슈로 떠올랐다. 작년과 상황이 비슷하다. 정부는 이 시기에 희생자에 대한 배상·보상 기준을 발표하며 교묘한 수를 쓰고 있다. 주요 언론들도 이를 1면으로 장식하며 거든다. 일부 시민들도 시행령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유가족들을 돈을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참담한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3월 30일부터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비닐 몇 개로 비를 피하며 노숙하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4월 2일 저녁 열린 촛불교회 기도회에서 기독교인들에게 간청했다.

"월요일에 광화문에 다시 나앉았는데, 그 이틀 전에 꿈을 꿨습니다. 유민이를 안는 꿈이 나오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었는데) 유민이가 슬퍼서 온 것 같습니다. 엄마·아빠들이 이렇게 길거리에 다시 앉을 걸 알았기 때문에 제 품에 안겼나 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우리 아이들 정말 슬프게 울고 있을 겁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비 맞고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데 어떤 아이가 안 울겠습니까. 천국도 못 갑니다. 지옥도 못 갑니다.

저는 무교입니다. 하지만 종교 단체는 생명을 제일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생명이 없습니다. 돈을 중시합니다. 이번 시행령, 생명보다 돈을 중시해서 안을 내놨습니다. 진상 규명뿐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걸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재해·재난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산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선박, 해양 사고에만 한해서 적용한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닙니다.

제발 이곳에 오셔서 시행령 철회해 달라고 외쳐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아이들 평생 웃으며 행복하게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이곳에서 한 달이 아니라 1년, 평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나라가 될 수만 있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안전한 나라는 저희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일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같이 만들어 봅시다, 안전한 나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날 촛불교회 기도회에 참석한 100명의 기독교인들은, 때로 거센 비바람이 불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설교를 전한 새민족교회 황남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설교문 바로 보기)

"예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내 제자가 될 것이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정의를 세워야 사랑도 할 수 있고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 없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 없이는 이 시대에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예수님은 지금 가장 고난받는 사람들, 억울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얼굴로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1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는 억울함, 원인조차 밝혀지지 못하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의 맺힌 한과 절규 속에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십니다. 그 고난 중에 크리스천들이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저 자연사한 '죽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세력이 억울하게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사한 죽음에 대한 부활로 바꿔놨습니다만, 사실은 고난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 십자가의 본뜻입니다. 부활은 죽임에 대한 저항이요, 죽임을 극복한 것입니다. '지금 누가 가장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가' 우리가 보고 거기 연대해 죽임의 세력을 극복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과 광화문에서 노숙하고 있는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한국교회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행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정부의 시행령안은 특조위의 독립성·중립성·객관성을 훼손하고, 한편으로는 세월호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법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계는 이런 잘못된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바로 알고, 생명과 안전으로 가는 특별법 가동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고 있는 지금은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 촛불교회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농성장까지 순례했다. 사진은 세종대왕상 앞에 있는 김영오 씨의 농성장. 비가 세차게 오는데도 돗자리 하나 깔고 비닐로 대충 지붕을 만들어 지낸다. 다른 유가족들은 광장 북쪽 끝에 있지만,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일반인들은 다가갈 수 없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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